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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이대영
작성일 2009-01-19 (월) 07:23
ㆍ추천: 0  ㆍ조회: 2596      
2008년 우리 집 10대 뉴스
                    정년퇴직의 두려움을 딛고 일어선 한 해  
                             -2008년 우리 집 10대 뉴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과창작 수요반 이대영

 

1. 정년퇴임을 하다

전주교대를 갓 졸업한 나는 전라북도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장수대성초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다. 그 때는 1968년 3월 1일이었다. 마침 3월 8일 입영통지서를 받은 터라 오전에 부임인사를 하고, 오후에 휴직원을 내고 떠나야만 하는 처지여서 동료들 보기도 민망하고 나 자신도 서먹한 마음으로 그렇게 교직에 첫발을 디뎠다. 35개월의 군복무를 마치고 임실과 전주를 거쳐 진안에서 교사로 근무하다 교감으로 승진되어 장수에서 근무했다. 임실 신덕초등학교와 전주서신초등학교에서 교장 8년을 마치고 교직생활 40년 6개월이라는 참으로 긴 세월동안의 교직생활에서 물러났다. 교육에 큰 족적은 남기지 못해 아쉽지만 어려운 일 없이 긴 여정을 마무리하게 된 것은 그동안 같이 근무했던 모든 동료와 내 가족 그리고 하나님의 덕이라 여기고 감사를 드린다.

2. 황조 근정훈장을 받다

내가 황조근정훈장을 받다니,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정년퇴임을 하는 공직자에게 수여하는 여러 종류의 훈장 중에 두 번째 등급인 귀중한 훈장을 받고 보니 과분한 마음이 앞서지만 한편으로는 고맙고 기쁠 뿐이다. 조금의 흠결만 있어도 받기 어려운 상인데 그동안 공직자로서 바른 길을 걸어온 것이 자랑스러울 뿐이다.

  황조근정훈장 제14674호
                                  훈장증

                                                 전주서신초등학교 교장 이 대 영


 귀하는 교육자로서 재직하는 동안 헌신적으로 봉사하여 국민교육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므로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따라 다음 훈장을 수여합니다. 황조근정훈장

                    2008년 8월 31일 대통령 이명박

 

3. 큰아들 기술사시험 합격

대학을 졸업하고 건설회사에 취직되어 몇 년 동안 열심히 근무하던 큰아들 명승이가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고 기술사 시험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더 큰 뜻을 이루기 위하여 통과해야할 관문이니 어쩔 수없는 선택이라는 것이었다. 실로 난감한 일이었다. 이제 장가도 가야하고 그게 그렇게 쉬운 시험도 아닌데 말이다. 덜컥 사표를 냈으니 걱정이 태산 같았다. 속 타는 마음을 억누르며 따를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이렇게 시작한 공부를 서울 학원에 가서 또 대학도서관에서 날마다 열심히 한다고 하나 그리 쉽게 합격이 되겠는가? 마음이 타지만 본인의 마음은 오죽하겠냐 싶어 눈치만 보고 있는데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1월 7일 대우조선 해양건설에 합격하여 서울 본사에 근무하게 되니 이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는가?

4. 내가 교회에 나가다

나는 어릴 때도 교회에 다녀 본 일이 있다. 전주신흥고등하교를 다녀 매일 채플 시간이 있어서 설교를 들었고 일주일에 한 시간씩 성경공부를 하면서 목사님께 엉뚱한 질문을 해 곤혹스럽게 한 일도 있었다. 결혼해서는 아내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바람에 나도 따라다녔으나 어쩐지 마음에 닿지 않아 그만두고 말았다. 아마도 유교와 불교적인 집안에서 자란 환경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아니면 성격 탓인지도 모르겠다. 고요하고 적막한 산사에 가면 착 가라앉는 분위기와 고풍스런 웅장한 건물에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있는 석가모니불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그만 흠뻑 빠져들곤 했었다. 그렇게 동경하는 종교지만 포교활동도 적은 데다가 매일 가까이 접하기도 어려워 망설이던 차 아내가 열심히 믿는 기독교에 귀의하는 것이 평생을 동고동락한 배우자에 대한 예의이며 앞으로 함께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하여 어느 날 갑자기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5. 잊혀져가는 옛말 모음집 발간

2000년 9월 1일 내고향 운암에 인접한 신덕초등학교 교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생활풍습과 사용하는 언어들이 어릴 때 고향에 온 기분이어서 매우 좋았다. 울 밖으로 들리는 건지미떡, 하저꿀떡, 도마테떡, 마나동떡, 거띠미떡 하는 아낙들의 말씨들이 어찌나 재미있는지 임실지역을 중심으로 마을 이름들을 모아볼까 하다가 우선 사투리를 모아보기로 하고 사투리 수집활동을 시작하였다. 우선 내가 알고 있는 사투리를 모은 다음 고향마을과 인접한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수집하였다. 모은 사투리를 집안 행사가 있을 때 마다 꺼내놓고 다듬었다. 평소에 생각나면 바로 메모해 두고, 일부러 친구들 앞에서 사투리를 사용하면 친구들도 따라서 했다. 그때마다 나는 알곡을 주어담기를 8년 동안이나 하였다. 그렇게 임실지방을 중심으로 잊혀져가는 옛말 모음집을 퇴임 기념으로 발간하기로 하고 제목을 ‘그게 시방 무신 말이디아'로 하여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혹‘후세에 그때 그 시절 그런 말들이 있었구나!'라고 기억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보며 말이다.

6.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등록

2008년 8월 31일 퇴임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당장 내일부터 가야할 곳이 없었다. 막막하고 답답한 심정에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대체 어떻게 한단 말이냐? 문득 며칠 전 동아일보 오피니언에 실린 글이 생각났다. 95세의 할아버지가 어학공부를 시작했다는 글인데, 65세에 퇴임한 이 할아버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인을 편안히 즐기며 살자고 보낸 것이 그만 30년을 훌쩍 보냈다는 것이다.
"따져보니 인생의 삼분의 일을 허송세월한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10년 뒤 105번째 생일날 손자들에게 떳떳이 후회 없는 삶을 산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어학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라는 글을 읽고 나도 어학공부를 시작할까 생각하다가 우선 수필창작과 문학, 부자학 개론을 등록하여 공부하고 추후로 하고 싶은 공부를 더 많이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7. 둘째셋째아들 회사일에 최선을 다하다

전주KCC에 근무하는 둘째아들 중언이가 우수사원으로 뽑혀 독일 베젤시에 있는 BYK회사에서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했다. 6월 21일부터 9일 간의 연수 겸 위로출장을 간 것이다. 영어를 잘해 외국계회사인 혜인에 취직한 뒤 연이어 말레이시아와 중국연수를 다녀온 제 동생 중희를 부러워하던 차 저에게도 그런 기회가 온 것이다. 마침 돌아오며 혈액개선제 징코민을 사왔다. 애비를 생각하는 마음이 참 갸륵할 뿐이다. 마침 친구병원에 들러 먹어도 되는지 내밀었더니 보자마자 이 좋은 약을 어디서 구했느냐고 호들갑을 떨었다. 의약품은 아직까지 독일제품이 세계에서 최고라고 했다. 아들이 사온 징코민을 먹어서 그런지 혈압이 120에80 정상으로 돌아왔다.

8. 산이 좋아 산에 오른다

나는 산을 좋아한다. 산촌에서 자란 나는 어릴 때 뒷동산에 올라가면 파아란 하늘을 잡을 줄 알고 올라가서 손을 들고 잡으려고 해 본 기억이 난다. 한 번도 아니고 가끔 그랬으니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지만 어릴 때의 그 순수한 마음을 이해할만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산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하는 S-2산악회와 대학동기들이 조직한 GM산악회 두 곳에 가입하여 활동하는데도 퇴임 후 매주 목요일에 등반하는 등고산악회에 가입하여 다니기로 했다. 친구들이 과도한 욕심이라고 비아냥거리지만 빼빼한 나로서는 그렇게 힘들거나 무리가 가지 않는다. 참 다행이다. 산에 오르면 정신이 맑아지고 잡념이 없어진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산에 오르는 것 자체가 즐거울 뿐이다.

9. 골프를 시작하다

이제 반년만 있으면 항시 달리던 레일을 벗어나 일반도로로 주행해야 할 처지다. 퇴임 후 할 일을 생각하니 걱정이었다. 선배들 이야기를 들으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큰 문제라고 했다. 그래서 우선 건강도 챙기고 시간도 보낼 겸 골프에 입문하기로 하고 3월 2일 퇴근과 동시에 골프연습장으로 가서 같이 정년을 앞둔 친구들을 불러 함께 등록을 했다. 퇴임 준비의 하나로 골프를 시작하고 보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10. 중국의 중심부인 중원천지를 누비다

무거운 짐을 벗었으니 모든 걸 훨훨 벗어 던지고 외국여행이나 다녀오자는 몇몇 친구들의 마음이 모아져 갈 곳을 물색하던 차, 퇴임 후 마음을 잡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본 아내가 딱했던지 자꾸 바람이라도 쐬라고 했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 3명과 함께 10월 11일 오후 3시에 자옥란이라는 여객화물선에 몸을 실었다. 인천항을 출발한 지 24시간만에 중국 연운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로 1시간 거리밖에 안될 거리였다. 이제 여유가 있는 건 시간뿐이니 배를 이용하는 것도 좋겠다는 친구들의 암묵적인 합의에 의하여 배를 탔지만 막상 배 안은 60년대 선술집처럼 온통 보따리장사들이 들썩거리고 침실에선 퀴퀴한 냄새며 신병훈련소 내무반 같은 기분이 들어 영 기분이 나지 않았다. 갑자기 신분변동을 일으켜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항공기의 깨끗한 기내 모습이 자꾸 떠오르니 그럴수밖에. 애초에 각오를 했으면 생각을 바꿀 일이지 바꾸지 못한 게 잘못이었다.
연운항에 도착하니 종류를 알 수없는 광석들이 끝도 없이 야적되어있는 어마어마한 물류유통항구였다. 새로 지은 아파트로 단장한 신도시라고는 하지만 연무에 시야가 가려 상쾌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연운항을 출발하여 중원천지로 향하는 편도 2차선 고속도로 주변에 끝없이 펼쳐지는 넓은 평원에 누렇게 익은 벼이삭이 아스라이 포플러나무 끝자락에 하늘과 속삭이고 산이 보고 싶어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산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중원까지는 산을 보기 힘들다니 과히 13억 인구를 먹여살릴 만한 넓은 평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속도로 주변에 심은 포플러나무만 끝없이 고개를 내밀며 농촌 마을도 어쩌다 보일 뿐 잘 보이지 않는다. 물류중심이며 도매시장이 많고 군사요충 도시라는 서주를 지나, 수양제가 남쪽 항주의 미인을 만나기 위해 1400년 전 1,800km의 남북대운하를 만들었다는 운하를 건너, 청렴결백한 판관 포청천이 집무했다는 포송사를 들렀다. 달마스님이 선종을 창시했다는 소림사를 지나, 징기스칸의 군대에 무참히 파괴된 용문석굴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유네스코 지정 세계지질공원 운대산의 정상 수유봉(1,308m)에 올라 큰 중국을 바라 보았다. 공자의 사당인 공묘를 거쳐, 연운항에서 여객화물선에 몸을 싫어 하루 만에 평택항에 도착한 것은 15일 오후 3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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