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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이수홍
ㆍ작성일	2009-01-17 (토)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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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고희 잔치
친구의 고희 잔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이수홍

새벽 4시에 잠이 깨어 일어나보니 눈이 살포시 쌓이고 벚꽃 꽃잎처럼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잠을 자는 사이 눈이 살며시 내리니 무척 반갑고 마음이 설렌다. 하지만 오늘 아침 눈은 미안하게도 그렇게 반갑지가 않다. 군산친구 김성중 님의 고희잔치에 가서 축하공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기예보를 들으니 서해안지방에 많은 눈이 내렸고 계속 눈이 오겠다고 했다. 전화 131번으로 확인하니 오전 강설확률은 60%라고 했다. 운전을 하고 갈 일이 은근히 걱정되었다.
밖에 나가보니 자동차가 하얀 가운을 입듯 눈으로 덮여있었다. 일단 그 눈을 털었다. 길에는 내린 눈이 녹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차가 다니고 있어 마음이 놓였다.

아내와 함께 차를 몰고 판소리 창을 같이 할 최정순 님과 고수 임성래 님을 태우고 군산을 향해 달렸다. 평소 눈이 많이 내리는 서해안인데다 일기예보에 눈이 많이 내린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눈이 전주보다 적게 내려 편하게 운전을 했다. 눈이라기보다는 나비가 날다 차창에 앉는 듯해서 우리 네 사람은 모두가 신바람 나고 즐거웠다.
37년 전 군산에 있을 때부터 가끔 다녔고 옥산면 입구로 옮긴 뒤에도 미식가인 여수친구 차기술 내외와 함께 갔던 ‘압강옥’에 가서 우선 나와 동갑인 여 사장님에게 내가 쓴 《노래하는 산수유 꽃》수필집을 한 권 선물했다.
“옛날 그대로시네요!”
책을 받고 감사하다며 보답으로 그냥 단순히 하는 칭찬의 말일지라도 기분이 좋았다. 행사장인 2층에서 리허설을 했다. 집에서 혼자 하는 소리만 듣고 춘향가 중 ‘사랑가’를 여자 창자와 입체 창으로 부르는 것을 처음 본 아내가 손장단을 쳐주었다.
박철영 시인이 사회를 담당하여 중국 두보의 곡강시(杜甫의 曲江詩) “주채심상행처유(酒債尋常行處有)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 외상 술값은 예사로 가는 곳마다 널려있네만. 에라! 인생 칠십은 예로부터 드물거늘.” 에서 고희라는 말이 시작되었다는 설명부터 구수하게 이끌어나갔다.

1부 행사로 예배를 보면서 아코디언반주에 맞추어 부른 찬송가가 장수를 기원하는 기도여서 좋았다. 젊어서부터 경찰가족으로서 남편을 내조하느라 고생을 많이 한 아내에게 박수를 보내달라는 주인공의 인사말이 감명 깊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오늘의 주인공 김성중 님은 덕인으로서 경찰서장까지 지내고 오늘까지 내외분이 건강하게 멋진 삶을 엮어가고 있다는 초등학교 동창 한기학 님의 축사가 멋졌다.
주인공 내외의 만수무강과 그 가족의 건강 그리고 여기 모인 모든 하객들의 행운을 빈다는 건배제의를 내가 했다. 항상 하듯이 ‘위하여!’라고 내가 선창을 할 테니 여러분이 복창을 하되 개개인의 소리가 내 소리보다 작으면 다시 한다고 전제하고 선창을 했더니 2층 홀이 쩌렁쩌렁 울리게 큰소리로 모두 외쳤다.
2부 행사는 먼저 공태규 님이 ‘만수산 만수동’이란 시조창을 했다. 만수산 만수동에 있는 만수정에서 떠온 물로 빚은 술을 마시면 만수무강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사회자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하는 명창이 판소리를 한다고 잔뜩 불려서 유머러스하게 우리를 소개했다. 나는 판소리를 세계에서 제일 잘 하기도 하지만, 주인공과 35년 전부터 친구로 지내고 지금도 모임을 세 개나 함께 하는 사이라 이 자리에 섰다고 운을 뗐다. 판소리 5바탕 중 가장 유명한 춘향가 중에서 백미로 꼽히는 ‘사랑가’를 부르는데 앙코르 송은 열 번만 받겠다고 말하고 시작했다.
춘향가 중 ‘사랑가’는 부르면 부를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좋은 곡이다.

“둥둥 내 사랑 어허 둥둥 내 사랑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로다 아마도 내 사랑이야~”
신나게 불렀다. 고희가 된 주인공이 이 도령과 춘향이가 처음 만나 사랑을 할 때처럼 젊고 멋지게 살라는 내용이어서 분위기에 딱 맞는 내용이었다.
6·25 때 군산으로 피난 와서 쟁반음식을 개발하여 3대째 이어 이름을 날린 압강옥정식을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다.
3부 행사는 성화봉송주(폭탄주 글라스를 빈맥주병을 거꾸로 세운 위에다 올려놓고 맥주병목을 잡고 입을 떼지 않고 단숨에 마시는 술)를 마시면서 가요 노래판이 벌어졌다. 주인공의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에 이어 ‘에레나가 된 순이’는 차려진 메뉴였다.
나는 벤치코트 자락을 허리에 감고 엉덩이춤을 신나게 추고 ‘못 잊어서 또 왔네’란 내 십팔번도 뽑았다.
축의금과 화환은 사절하고 주인공이 촬영한 사진을 넣어서 제작한 달력과 떡 상자를 선물로 안겨주었다. 화려하지 않고 자녀들의 정성과 효(孝)가 잔뜩 배어있는 좋은 잔치였다.
마음껏 축복하고 나오니 해님도 눈발을 헤치고 벙글벙글 웃고 있었다. 주인공의 사모님이 준 세 개의 흰 봉투 속에는 수표가 한 장씩 들어있었다. 2009년의 첫 공연인데 시작부터 좋았다. 99·88이라고 하지 않던가! 백수(白壽)잔치에는 더 멋진 공연을 하리라.
[2009.1.10.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