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초청장을 받았다. 일곱 살짜리 외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 원생들의 재롱잔치 초청장이다. 하늘사람 큰잔치란 무슨 의미일까? 궁금한 마음을 안고 그 잔치에 참석했었다.
겨울바람이 매서웠지만 어린이회관 공연장에는 수많은 관람객들로 열기가 가득했다. 관람객들은 대부분 원생가족들이었다. 원생의 수에 비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인 걸 보면, 가족들이 집단으로 참석한 듯싶었다. 13명 가족이 모두 참석한 집도 있으니 잔치는 가족들의 성원으로 성황을 이룰 수밖에 없었다. 어떤 여인은 강원도에서 한 걸음에 달려왔다고 했다. 평범한 가정주부처럼 곱고 가냘프게 보였는데 육군사관학교 출신 육군 대위라 했다. 네 살 딸의 재롱잔치를 보려고 특별외출로 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학부형들의 기대와 관심 속에 열리는 잔치여서 훈훈한 열기는 당연한 분위기였다.
원생들은 나이에 따라 씨앗반(3살), 새싹반(4살), 잎새반(5살), 꽃잎반(6살), 열매반(7살)으로 편성되었다. 반별로 연출이 계획되어 있었다. 공연무대는 커다란 휘장으로 전면이 가려졌고, 잔잔하고 감미로운 멜로디만 흐르고 있었다. 무대 안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준비하는지 몹시 궁금했다. 사회자의 구수한 진행에 따라 휘장의 틈새로 동화 속의 동자처럼 곱게 단장한 세 아이가 나왔다. 다섯 살 잎새반아이들 중에서 관람객들에게 인사말을 하려고 나온 것이다. 아이들은 많은 관람객 앞에서 말문이 막혔는지 준비된 인사말을 못하고 두리번거리기만 하였다. 사회자의 끈질긴 회유(懷柔)에도 아이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말 못하는 아이들을 격려하려는 박수가 공연장을 흔들었다.
이어서 휘장이 거북이의 걸음처럼 느릿느릿 올랐다. 휘황찬란한 네온과 함께 다섯 아이가 다구(茶具)를 앞에 놓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중앙에 내 외손녀 혜준이가 앉아 있었다. 비단에 수놓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다소곳이 앉아있는 아이들은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동자와 선녀 같았다. 어찌나 곱고 귀엽게 보이던지 나는 ‘어!’ 하고 소리를 지를 번하였다. 집에서는 응석만 부리던 아이들이지만 어린이집 구성원으로서 집단훈련 성과가 확연하게 보였다. 아이들의 다도(茶道)연출은 관중의 감탄을 자아냈다. 다구를 정돈하는 동작, 차를 달여서 손님께 권하는 손은 곱고 예뻤다. 찻잔을 들어 마실 때의 동작 하나하나는 예술이고 다문화였다. 다섯 아이들이 한결같은 동작은 신선하고 정갈했다. 어디 흠잡을 데 없는 세련된 동작이었다. 지도하신 선생님들의 노고가 보이는 듯했다.
공연은 첫째마당과 둘째마당으로 짜여 있었다. 첫째마당의 ‘다도’(열매반)에 이어 ‘오빠 한 번 믿어봐’(꽃잎반). ‘터치 미’(잎새반), ‘곰돌이 송’(씨앗과 새싹반)의 공연은 관중의 감탄과 흥미를 끌어냈다. 곰돌이 송을 공연할 때는 아기 티를 벗지 못한 3,4살의 귀여운 몸동작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what do you when do be'(꽃잎반)의 영어 놀이는 그 발음과 몸짓이 영락없는 서양 어린이들의 놀이 같았다. 조기교육의 효용성을 실감할 수 있는 놀이였다.
둘째마당의 국악공연(열매반)은 성인 수준이었다. 꽹과리와 징, 북과 장고를 치는 솜씨와 그 손놀림이 민첩하고 숙달해 보였다. ‘내 마음은 별과 같이’란 단막극은 꽃잎반 어린이들의 연출이었는데, 폭소와 눈물을 동시에 이끌어냈다. 씨앗 새싹반의 ‘캐롤 눈사람’에서는 천진한 어린이들의 진면목이 보여, 천국에 가려거든 어린이를 닮아라 하는 말을 실감나게 하였다. 열매반의 'The gas contest', 꽃잎반의 ‘라틴댄스’, 잎새반의 ‘어부바’ 등의 재롱잔치는 모두가 상상을 초월하리만큼 웃기고 울리는 공연이었다.
원아 전체의 합창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릴 때까지 장장 3시간의 공연은, 귀여운 꿈나무들의 재롱잔치로 가족들의 감탄과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은 ‘효도합시다!’라는 구호를 목청껏 외치며 막을 내렸다. 실로 천국을 옮겨놓은 듯 순박하고 신선한 잔치였다. 하늘사람! 그 구호는 자유와 평화, 믿음과 사랑만이 흐르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하늘나라에는 미움이 없고 고통과 슬픔도 없으며 탐욕도 없는 곳이라 한다. 그러기에 오직 서로 믿고 사랑을 나누며 돕고 사는 곳이다. 그 곳이 우리가 염원하는 하늘나라가 아니던가? 끝까지 관람하고서야 하늘사람 큰잔치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저 아이들이 장차 어떤 모습으로 자랄까? 눈물이 핑 돌만큼 천진하고 순박한 재롱잔치에서 아이들의 밝은 앞날을 보았다. 청아한 목소리와 초롱초롱한 눈망울에서는 진실성이 보였다. 발랄하고 활달한 몸동작에서는 내일의 희망이 보였다. 천상의 보석같이 깨끗하고 빛나는 저 아이들이 구김 없이 자라서 밝고 정의로우며 사랑이 넘치는 세상의 주역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유년기는 인격형성의 태동기다. 인간성 형성의 중요한 시기인 것이다. 천진난만한 유년기 아이들에게 걸맞은 지도가 필요하다. 그 일은 우리 어른들이 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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