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운조루(雲鳥樓) 공식 홈페이지 ▒

ㆍ작성자	이의
ㆍ작성일	2008-11-28 (금)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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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자락에서
가을의 끝자락에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이의

어제(11. 18)까지만 해도 그토록 곱던 잔치마당이 망나니가 훼방을 놓은 듯 스산하다. 환하던 은행 나뭇잎은 몽땅 떨어져 바람에 밀려 이리저리 뒹군다. 아직 푸른 나뭇잎들도 밤새 내린 눈에게 계절을 내주듯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있다.
어제 오전 열시 운동센터에 가려고 아파트를 나섰을 때만해도 따사로운 햇빛이 밝은 빛을 비추고 있었다. 내가 혹시 다른 세상에 온 것은 아닌지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화단에도 놀이터에도 단풍나무, 감나무, 그리고 잎들이 속이 드려다 보일 듯이 생생하고 밝게 빛나고 있어서 나는 넋을 놓고 한참 휘둘러봤다.
아파트 울타리를 벗어나자 가로수 은행잎이 노란 리듬을 타고 하늘하늘 춤을 추며 아래 보도로 내려앉고 있었다. 올 가을 유난히도 가뭄이 심해 잎이 쪼그라드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하던 그 어느 날, 단비가 내리더니 이토록 화려한 가을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찾아온 한파가 서둘러 가을을 쫒아버리는 듯싶었다. 이 허허로움을 무엇으로 달랠 수 있으려나! 속절없이 내년 가을을 마냥 기다릴 수밖에…….
계절이 봄, 여름을 지나 가을에 이르듯이 우리 인생도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를 거쳐 노년기에 이른다. 계절은 자연의 질서에 어김없이 순응하건만 인간은 본연의 임무에 충실치 못하여 자연이 싫어하는 일들을 잘못인지도 모른 채 저지르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봄가을이 짧아지고 겨울과 여름이 긴 아열대성 기후를 닮아가고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였는데 그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 봄이 왔나하면 어느덧 여름으로 바뀌고, 단풍이 들기 시작하여 가을이 왔구나 싶으면 어느 날 기온은 영하권으로 떨어져 쓸쓸한 계절로 바뀐다. 그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못 보던 아열대성 식물이 자라고 바다에도 어종이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인구는 늘어나고 땅은 한정되며 더 많은 생산이 필요하다보니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그에 따른 공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런가하면 강대국은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을 침략하고, 더러는 지구의 평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무서운 무기가 사용되며, 생활편의시설들이 내뿜는 각종 공해와 지구오염이 결국은 지구를 병들게 하고 있다. 결국은 인간의 필요악으로 인해 자연생태계가 바뀌고 있다. 계절이 제대로 굴러가야 인간의 삶도 안전하게 영위될 것이 아닌가. 이 아름다운 가을이 제대로 설 곳을 준비해야할 의무가 지구인의 책임이지 싶다.

인생 70고개가 이왕이면 곱게 물든 가을이길 바란다. 사계절 중 가장 알차고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는 가을이 인생 4단계와 닮았다. 젊어서 길러 놓은 자식들은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으니 퇴직과 더불어 제2의 인생을 새로이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복지제도의 발달은 노인들에게 또 다른 인생을 설계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해 볼 의지만 있으면 돈 없이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곳곳에 널려있다. 그래서 나이에 상관없이 노인들이 바쁘다. 나도 노인복지회관에서 컴퓨터를 배워 컴퓨터 좌판을 두드려 글을 쓰고 있다. 예전 같으면 이 나이에 무엇을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할 테지만 학창시절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에서 글쓰기를 열심히 배우고 있다. 이렇게 글을 엮어나가노라면 시간이 가는 줄도, 허리가 아픈 줄도 모르니 이것이 아름다운 가을 인생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찾아든 좌골신경통이 자유롭던 행동을 방해하고 있다. 의사는 오랜 시간 앉은 자세가 나빠서라고 하지만 허리 디스크를 앓아본 나로서는 정확하게 앉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오른쪽 다리가 저려오고 엉덩이 쪽에서는 불편하다고 아우성이다. 양방과 한방병원 문을 두드려보지만 신통한 효과가 없다. 아마도 통증과 함께 타협하며 동거해야 할 때가 온 듯싶다.
기계도 오래 쓰면 닳아서 교체를 하듯이 사람의 몸도 인공으로 만든 장기들을 마음대로 교체할 수 있는 때가 쉬 올지도 모른다. 가끔 세계 처음으로 어떤 장기를 성공적으로 교체했다는 뉴스를 듣노라면 반갑기보다 공짜로 지하철을 이용하는 노인들이 떠오른다.
세상에 태어나면 가야하는 것이 또한 자연의 이치다. 그런데 갈 때가 되어도 생명의 줄이 늘어나니 할일 없이 하루하루를 힘들게 이어가고 있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명줄이니 조물주의 생사 기록부에 역사적인 개혁을 단행해야 할 일이 닥칠지도 모른다. 어이 하리, 내 몸 여기저기서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는데도 이 역시 자연의 섭리로 알고 그도 내 안에 껴안아 다독거리며 사랑해야지!
화려한 색채를 뽐내던 잎들을 미련 없이 떨어뜨리고 당당히 겨울을 맞이하는 나목에서 의연함을 엿본다. 이렇듯 한살이를 마감하고 자연으로 되돌리듯 인간의 죽음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변환할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저런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노년을 구가할 수 있지 않을까!

(2008. 1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