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나는 풍물놀이에 한 번 푹 빠지고 싶었다. 바쁜 직장생활을 마치고 이제는 내가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을 찾던 중, 그야말로 우리의 신토불이인 풍물을 알고 싶어 회관에 찾아갔다. 유년시절, 시골 마을에서 신명나는 풍물놀이를 구경했었다. 꽃 고깔을 쓰고 빙글빙글 도는 현란한 농악대를 마을사람들이 모두 나와 구경하며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문화회관 3층 넓은 홀에서 풍물을 배우려는 30～40여명의 선남선녀가 처음 만나 좀 어색한 가운데 통성명도 없이 풍물의 기본인 장구부터 배우기 시작하였다. 아담한 키에 유머가 풍부한 미인 강사님은, '정통으로 우리 음악을 배우며 행동하는 문화인'이라고 우리를 추켜세우며 반겼다. 첫째마당의 휘몰이와 질굿을 배울 때는 초보자도 그럭저럭 따라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같은 음정도 강약이 다르고, 길고짧음이 조금씩 달라 익히기가 쉽지 않았다. 둘째 마당에 들어가니 머리 속이 뒤죽박죽이 되어 앞뒤가 혼동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결석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20여명은 우리가락에 맛이 들어 힘이 나는지 계속해서 더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처음 낯선 얼굴도 이제는 눈빛이 익어 서로 인사를 나누며 친구가 될 만하니 벌써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덩따따 궁따궁 따구궁따궁타궁”
오방짓굿의 가락이 좋아 계속 장구를 두드리고 싶다. 이제는 TV에서 풍물놀이 장면이 나오면 가락이 귀에 들어와 고개를 조금씩 끄덕이며 바라보는 기분이 제법 쏠쏠하다.
“아! 이런 것이 배움의 기쁨이구나!”
양산도 가락과 긴삼체 가락을 구분할 줄 알아 나도 이제 우리가락을 아는 문화인이 된듯해서 혼자 빙그레 웃는다. 얼마 전 TV에서 김덕수의 사물놀이를 보았다. 온몸을 흔들고, 빠른 박자로 땀을 흘리며, 신바람이 난 모습은 마치 신 들린 듯하였다.
사물놀이는 꽹과리(번개), 장구(비), 북(구름), 징(바람)등 네 가지의 타악기로 연주하는 실내음악이다. 사물놀이는 1978년 서울의 공간 사랑소극장에서 창단하였으므로 역사가 길지 않은 우리의 소리다.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며 혼을 받쳐 연주하는 김덕수가 사물놀이의 원조다. 원래는 풍물놀이의 개인적인 기예굿에서 오늘날의 사물놀이 리듬이 나왔다. 사물이라는 용어는 당초 불교에서 나온 말이다.
불교에서 사물은 법고(法鼓), 범종(梵鐘), 목어(木魚), 운판(雲版)이다. 네 개의 악기가 각각 별, 인간, 달, 해를 상징하며, 그 소리는 번개, 비, 구름, 바람소리에 비유되기도 한다. 결국 우주의 진리를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자연의 소리를 상징하기에 변화가 많다. 그래서 사물놀이 가락을 들으면, 마치 맑은 날 갑자기 천둥치고 태풍이 불어오다가 잔잔한 실바람으로 느껴지기도 하나 보다. 사물놀이는 우리뿐 아니라 세계인에게도 대단한 인기가 있다. 국제대회에 진출한 연주자가 품어내는 폭발적 감흥의 열기와 열띤 리듬이 관람자 모두에게 기립박수를 받음으로써 세계적인 음악으로 승화하는 개가를 올렸다.
초급생인 내가 풍물놀이에 익숙해지려면 적어도 5년은 더 익혀야 할 것 같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이니 쉬지 않고 계속하고 싶다. 풍물놀이는 직장을 그만두고 내가 배우고 싶다고 스스로 찾아낸 나와의 첫 약속이니만큼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조금만 더 풍물놀이에 익숙해지면, 첫째 내 자신이 음악 속에 묻혀 살고 있으니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며 항상 기쁠 것 같다. 둘째 언젠가는 내가 다른 사람의 잔치마당에 초대되어 한바탕 신나게 풍악을 울려주는 보람의 날이 올 것이라고 상상하며 열심히 배우련다. 다만 그 날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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