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운조루(雲鳥樓) 공식 홈페이지 ▒

ㆍ작성자	김상권
ㆍ작성일	2008-09-24 (수) 05:06
ㆍ홈페이지	http://blog.daum.net/crane43

ㆍ추천: 0 ㆍ조회: 3255

일편단심 해바라기
일편단심 해바라기
-400년 전의 사부곡(思夫曲)을 읽고-
전주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김상권

눈물로 쓴 400년 전의 사부곡을 인터넷에서 읽었다. 미이라의 주인공인 이응태의 부인이 죽은 남편에게 보낸 한글 편지 한 통이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사랑을 읊은 편지글이다. 이 편지의 몇 대목을 살펴보자.
『어찌 나를 두고 먼저 가십니까? 당신은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당신을 가져 왔었나요? 』
이런 내용에서 부부의 정답고 아기자기한 사랑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젊은 연인들의 사랑놀이가 이런 것일까.
『당신은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을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이 여인의 진솔한 사랑의 표현이 놀랍다. 부부 간에 대화가 많았으며, 잠자리에서도 사랑 나눔이 각별했으리라 짐작된다. 일상의 삶이 즐겁고 행복했으리라.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았지만 정신만은 영원히 함께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특히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는 대목은 아름다운 여인의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보통의 여인들은 남편의 죽음을 당하면 서러워하며 가슴에 묻어버리는 것이 일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자기의 사랑과 애절함을 글로 써서 죽은 남편 옷 속에 넣을 생각을 했을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편지를 읽고 그 여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녀는 학식 높고 덕망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 교육을 잘 받은 요조숙녀(窈窕淑女)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착하고 고운 마음씨를 갖지 않았을까? 글의 표현을 보아 문장력도 뛰어났으리라. 죽은 남편의 관 옆에서 당황하지 않고 편지를 써내려갔다는 것은 침착하고 차분한 성격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또 냉철하고, 당차며, 대담한 여인이 아니었을까 짐작되기도 한다. 반면 자기만 아는 여인. 주위를 살피지 않는 여인으로 비쳐질 수도 있지 않을까? 자녀 교육을 잘 시켜 성공시켰으리라 생각되고, 시댁을 잘 이끌어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대여성이 그런 경우를 당했다면 이응태 부인과 같이 사부곡을 쓸 수 있는 여성이 과연 몇이나 될까? 반대로 그녀가 현대에 태어나 그런 상황이 되었다면 그처럼 사부곡을 쓸 수 있었을까?
내 친구 Y는 5년 전 부인과 사별했다. 부부가 해외여행을 가려고 사전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가 부인이 췌장암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즉시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지만 3개월 만에 끝내 이승을 떠났다.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그 뒤 지금까지 그는 날마다 부인의 묘를 찾고, 밤이면 부인이 쓰던 베개를 안고 잔다고 한다. 내가 재혼을 권했지만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 뿐 묵묵부답이다. 나와 그는 인생관과 삶의 방식이 다르다. 그는 죽을 때까지 부인을 생각하며 혼자 살겠다고 했다. 부인의 죽음을 자기 탓으로 돌렸다. 살아생전에 못해준 것이 후회스럽기만 하다고 했다. 그는 부인이 죽었을 때 글로 사부곡(思婦曲)을 쓰지 않았지만 마음이나, 행동으는 계속 사부곡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미국에 이어 세계2위라고 한다. 이것은 여성들의 신분상승과 재력 때문이기도 하다. 황혼이혼도 늘고 있다고 한다. 결혼의 목적이 백년해로에서 만족스러운 삶의 추구로 바뀌어가는 추세다. 한편 재혼율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특히 여성재혼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흐름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400년 전 이웅태 부인이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쓴 사부곡(思夫曲)을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죽은 부인을 생각하며 행동으로 쓰고 있는 내 친구 Y의 사부곡(思婦曲)은 과연 어떻게 평가를 받을까?
(2008.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