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문인협회 회원들과 봄 문학기행을 떠나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날씨가 어찌나 쾌청한지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발걸음도 가볍다.
지금은 산과 들에 각양각색의 꽃이 만발한 5월, 우리 회원들을 태운 버스는 시원하게 뚫린 호남도로를 달려서 전남 강진읍에 도착했다. 예부터 강진은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와 고wm넉한 문화유산을 보유한 고장이다. 오죽하면 여행자의 필독서라 할 수 있는 유홍준 교수의 《답사여행의 길잡이》는 남도답사 1번지에 강진을 우뚝 세워놓고 소개하지 않았던가!
우리 사회에 비슷한 것은 있지만 똑같은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전북 부안군과 전남 강진군은 비슷한 것, 또는 닮은꼴이 너무도 많다. 첫째는 산세다. 우리나라 3대 산맥 중의 하나인 노령산맥의 한 줄기이며 또한 같은 호남권이다. 부안은 의상봉(509m)이, 강진은 천태산(549m)이 제일 높은 산으로서 각각 그 고을을 지키고 있다.
각 지역별 대표성과 닮은꼴이 있는 부분을 확인해 보았다. 산세・강・바다・섬・군의 명칭・행정구역・인구・수산물・지석묘군・천연기념물・숲・고을민담・옛 군사기지・고려청자・실학자・근대문인・기타 등등 많기도 하다.
강진군은 월출산국립공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장흥에서 흘러오는 탐진강의 지류이다. 좁고 가느다란 강진만이 남쪽 해안을 뚫고 ‘ㄷ’자형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마치 예쁜 여인이 가랑이를 벌리고 앉은 형국이다. 강진군은 1417년에 생긴 이름이다. 지금으로부터 5백 년 전에는 강진이란 지명이 없었다. 조선 태종 17년 도강현과 탐진현을 병합하여 도강의 강, 탐진의 진을 취하여 강진이라 하였다.
대표적으로 고려청자를 들 수 있다. 5백년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는 청자문화의 산실은 강진과 부안이요 그곳에서 청자문화의 꽃을 피웠다. 두 지역이 고려청자의 본산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자기를 굽는데 최상의 재료인 고령토가 지천으로 널려 있고, 땔감도 풍부하다. 특히 가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산의 적당한 경사가 필요하다. 산기슭의 위치가 가마터로는 최적지라는 게 해설사의 설명이다. 그 오지에서 생산한 청자를 소비처인 개성과 강화도로 수송하려면 강진과 부안 두 곳은 모두 뱃길이 열려있어 편리했다.
개혁사상가이자 탁월한 과학자이기도 한 문도공 다산 정약용 선생이 학문을 연구한 다산초당(茶山草堂)을 찾았다. 다산 정약용 선생(1808년)이 18년 유배생활중 강진에서 11년을 머물렀다. 사람들은 누구나 편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보통이다. 유배생활이란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오직 어지러운 세상을 위하여 저술활동을 하였다. 지방관리가 백성을 다스리는 지침서인 《목민심서》, 종합정책건의서인 《경세유표》, 판례집인 《흠흠신서》등을 저술하였다. 속어를 고증한 책 《아언각비》, 시・서・예・역・춘추・지리・천문・의술・언어・금석학을 망라한 508권의 저서를 저술하였다.
우리나라 실학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반계 유형원 선생이 《반계수록》을 창작한 곳이 바로 부안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보다 140년이나 앞선 학자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수많은 전란을 겪은 나라로서 질서가 문란해졌을 때의 일이다. 선생은 국가의 재정과 국민생활의 안정을 위하고 특히 농민과 서민들이 균등하게 살 수 있는 체계적인 개혁안을 집필하였다. 장장 18년에 걸쳐 《반계수록》(磻溪隧錄) 26권을 편찬하였다. 선생은 현재 세계 각국이 지향하는 복지국가건설이란 이상을 제시한 위대한 실학자였다.
영랑생가에 들어서니 모란꽃들이 아름답게 활짝 피어 있었다. 멀리 부안에서 온 것을 아는지 꽃들이 웃으며 반겨 주었다. 영랑(김윤식:1903) 선생은 1930년대 박용철, 정지용, 신석정, 이하윤, 정인보 등 서정시인들과 《시문학》지를 창간하였다 <내 마음 아실 이> 같은 서정시와 많은 시문을 발표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북녘의 소월, 남녘의 영랑’이란 명성과 찬사와 독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강진군과 영랑기념사업회에서는 해마다 봄이면 영랑문학제, 영랑시문학상 수여 등의 큰 행사를 열기도 한다. 또 내년에는 시문학파기념관을 준공할 계획이다.
신석정 고택은 우리나라 현대시의 큰 맥을 이은 신석정 시인이 살던 옛집이다. 1930년대 김영랑 시인 등과 함께 순수문학을 이끌던 신석정 시인은 부안이 낳은 문인이다. 당초 이 고택은 청구원(靑丘園)이라 했다. 석정 선생은 이 고택에서 태어나 1592년 전주로 이사할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 정원은 측백나무 울타리와 은행나무, 목련, 벽오동, 산수유 등을 심어 운치가 있었다. 신석정의 전원시집인 《촛불》, 《슬픈목가》등은 바로 이 청구원에서 쓴 시들이다. 부안군에서는 신석정문학관을 내년에 준공할 계획이다. 그 문학관이 개관하면 석정문학제와 석정문학상시상식 등의 행사는 물론 문학의 요람으로 가꾸고 문학인의 연구산실이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번 부안문학회의 문학기행은 정말 뜻 깊은 지역을 택한 것 같다. 산세, 강, 지리조건, 유명한 고려청자의 발상지, 실학자, 문인 등등이 비슷할 정도로 닮은꼴이어서 더 호감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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