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지만 아무리 가치 있는 일도 실수 하나로 한 순간에 모든 인상을 그르치는 일이 있다. 어린이는 움직이는 빨간 신호등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이와 함께 할 때에는 점검하고 또 점검해볼 일이다.
지난해에는 날씨가 추워서 곤욕을 겪었기에 올해에는 봄과 여름 사이에 '가족 산책의 날'을 잡았다. 참으로 한 가지 행사를 추진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준비가 따르는 일인지 모르겠다. 어린이로부터 노인까지 함께 산책할 수 있는 장소를 정하려고 교사들은 몇 번이나 산에 다녀와야 했다. 또 산책길에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을 마련하려고 머리를 맞대고 고심해야 했다. 정식교사가 7명인 우리 유치원은 7가지 활동을 펼쳤다.
산 속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생각하려니 제약이 많이 따랐다. 자연과 어울리는 소재를 찾되 자연을 훼손해서는 안 되었다. 또 행사자체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실적물이 남는 것을 찾다보니 돌을 소재로 한 활동을 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고향의 길에선 비만 와도 돌이 튀어나오곤 했는데 요즈음 시골길엔 돌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돌을 마련하려면 어디론가 찾아 나서야 했다. 전주 시내에 살고 있는 나는 돌을 마련하려고 남편과 함께 고산천으로 갔다. 각각의 손에 들려진 비닐봉투엔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돌을 100개씩 골라 담기로 했다. 아이들이 100명이니 한 가족 당 2개씩 나누어줄 계획이었다. 한참 고르고 골라 겨우 2백 개를 마련했는데 안타깝게도 다시 돌을 쏟아야 했다. 그림과 글씨를 쓰려면 바탕이 흰색 돌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은 군소리 없이 내 말을 따라주었다.
내가 추진할 활동의 제목은 '소망의 돌 꾸미기‘다. 가족의 소망,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 가훈 등을 적어 그림과 함께 꾸며보는 것이다. 산책코스는 어린이회관에서 출발하여 소리문화의 전당을 거쳐 돌아오면 다시 출발지로 오게 되는 '건지산'이었다.
손수레에 돌을 실었으나 혼자서 경사진 곳을 오르려니 숨이 찼다. 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이 이상한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깃흘깃 나를 쳐다보았다. 쉬엄쉬엄 10분쯤 올라가니 정해둔 장소가 나타났다. 그곳은 큰 나무둘레에 벤치가 있어 굳이 책상이 없어도 활동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장사를 하려고 간판을 붙이는 사람처럼 먼저 나무에 제목 판을 붙였다. 아니나 다를까, 제목 판을 붙였더니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한 마디씩 물었다.
"뭐하는 거예요?, 어디서 나왔어요?"
준비된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진열하는데 어디서 왔는지 시커먼 벌이 윙윙거렸다. 그러다 가려니 했지만 벌은 가지 않고 자꾸만 나를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엄지손가락만큼이나 크고 야무진 그 벌에 한 방이라도 쏘인다면 아마도 그대로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갈 것 같았다. 아무리 행사가 중요하다지만 귓가에서 윙윙 거리는 벌 때문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멀찍이 떨어져 벌을 지켜보며 다급한 마음에 원감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홈 키퍼 가져왔나요?"
그러기를 2,3분쯤 지났을까! 내가 없어 흥미를 잃었는지 벌은 주변을 맴돌더니 멀리 날아가 버렸다. 서둘러 준비물을 진열하는데 부모와 함께 와야 할 아이들이 경사진 길을 뛰어 내려왔다. 그리고는 엄청난 소식을 알리는 소식통마냥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요, 선생님! 수화가 다쳤어요. 세준이 형이 들고 가는 막대기에 얼굴을 긁혀서 아빠랑 병원에 갔어요."
아, 이게 웬일인가? 이제 막 시작인데 벌써 사고라니……. 결국 예상치 못한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잠시 뒤 몇몇 가족이 한꺼번에 밀려오더니 아이들과 협동작품을 만드느라 부산하였다. 이윽고 본부에서 마지막 가족이 출발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그 가족은 유모차를 밀고 온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재확인하며 기다리는데 드디어 기다리던 손님이 도착하였다. 이제야 도착한 부모들은 땀을 닦으며 긴 숨을 내쉬었다. 유모차까지 밀고 오느라 몹시 힘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서로 도와 함께 참여한 가족의 모습은 인간이기에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 같았다.
산책길에서 펼쳐지는 제1마당에서는 아이의 이름으로 ‘삼행시 짓기’였다. 2마당에서는 퀴즈 맞추고 몸으로 표현해 보기, 3마당은 소망의 돌 꾸미기, 4마당은 간식 먹기, 5마당은 마카로니로 목걸이 만들기, 6마당은 가족사진 찍기, 7마당에서는 풀잎씨름과, 풀각시 만들기였다. 이제 막 3마당을 거친 그 가족은 모든 활동을 마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마지막 가족을 보냈으니 짐을 정리해야 했다. 가져온 물건들을 다시 정리하는데 이미 출발지로 갔어야 할 어머니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모든 활동이 끝나면 출발지에 도착하게 되어 있으나 길을 잃은 모양이다. 잠든 아이를 업고 코스대로 간다는 것이 무리였다. 나와 함께 주차장으로 돌아가는데 거기에는 또 다른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서 유모차를 밀고 가려니 힘이 들어 중도에 포기했다는 것이다.
중간에 낙오된 가족들과 함께 본부로 돌아오니 벌써 도착한 가족들이 간식을 먹으며 기념품을 받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차에서 내리자 간식을 먹던 아이들이 쏜살같이 달려오더니 또 저희들끼리 즐거워 장난을 쳤다.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 살랑살랑 불어대는 봄바람! 사고만 없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 없이 좋은 날씨요, 장소이련만 사고 하나로 먹구름이 낀 얼굴들이다.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지만 좋은 일을 해놓고도 돌아서는 교사들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저, 아이의 얼굴에 큰 흉터가 남지 않기를 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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