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운조루(雲鳥樓) 공식 홈페이지 ▒

ㆍ작성자	김상권
ㆍ작성일	2009-04-06 (월)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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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원짜리 여행
만 원짜리 여행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김상권

출발시간보다 좀 이르게 공설운동장 남문에 도착했다. 버스가 보이지 않아 아침 바람이 차가운 공설운동장 주변을 서성거렸다. 버스가 도착했다. 그런데 버스번호판이 경남소속이었다. 이상한 느낌이었지만 해군사관학교에 간다고 하여 올라탔다. 나는 신청기간이 지난 뒤에 삼락회에 연락하여 동참허락을 받았다. 관광코스가 해군사관학교라고 해서 마음에 끌리기도 했지만 속내는 수필 소재를 얻기 위해서였다. 60대 후반이 4명, 나머지는 70이 넘은 노 선배님들로서 모두 35명이 탔다.
진해로 가는 도중 경남 진주 어느 사슴농장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나는 그때서야 관광버스의 속셈을 알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버스에 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일행은 어쩔 수 없이 넓은 방으로 들어가 장판에 앉았다. 사슴농장 주인은 큰 사슴뿔을 들고서 녹용에 대한 설명을 했다. 농장주인은 50대 초반으로서 진지하고 솔직한 표현을 하면서 우리 일행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슴뿔을 직접 믹서로 잘라 맨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먹어보도록 했다. 그런가하면 녹용 술을 한 잔씩 마시도록 권했다. 이어서 아가씨들이 돌아다니며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녹용 두 냥(75그램)에 30만 원으로 1년 분할상환이라 했다. 나는 사고 싶었지만 꾹 참고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를 대고 방을 나왔다.
녹용을 산 사람이 열세 분이었다. 한 사람도 사지 않을 경우 그들에게 왠지 미안한 생각이 드는데 산 사람이 많아 다행이었다. 운전기사와 안내양도 감사하다며 좋아했다. 좀 달리다 어느 음식점에 들러 관광버스에서 제공한 점심식사를 했다.
오후 1시경 진해시에 접어드니 도로변에 아직 활짝 피지 않은 벚꽃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해군사관학교에 도착하여 바로 박물관을 찾았다. 나는 박물관과 모형거북선도 대충 둘러보았다. 사실은 해군사관학교와 박물관을 주제로 글을 쓰려고 먼 길을 왔는데 소재를 얻을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돌아오는 길에 사천시에 있는 어느 건강보조식품공장을 들렀다. 그곳은 홍삼과 천마를 혼합해 만든 홍삼천마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우리 일행은 안내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홍보 담당자가 나와 홍삼과 천마의 좋은 점을 비디오를 보여주면서 설명했다. 10만 원, 33만 원, 63만 원짜리를 소개했다. 우리 일행은 엑기스 한 봉지씩을 받아 마셨다. 종업원들이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속이 쓰린 사람에게는 효험이 있다는 말에 나도 마음이 솔깃했다. 그러나 꾹 참고 사지 않았다. 물품을 산 사람은 한 분뿐이었다. 63만 원짜리를 샀는데 33만 원짜리, 10만 원짜리를 하나씩 덤으로 받았다. 그 분은 횡재를 한 셈이다. 버스 안에서 또 안내양이 과자를 팔았다.
몇 년 전에 중학교 동창모임에서 여수를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버스 안에서 스쿠알렌을 선전했었다. 여러 친구들이 시기에 나도 덩달아 샀다. 이런 걸 군중심리라고 하며 충동구매라고도 하는 것인가? 덤으로 무좀에 좋다는 목탄액도 받았다. 무엇인가 효험이 있겠지만 나는 전혀 효과를 느끼지 못했다.
한 번은 내가 근무하는 B초등학교에 방문판매원이 찾아와 유황오리 즙을 팔았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겐 특별히 좋다는 말에 나를 비롯해 선생님들도 구입했다. 덤으로 비누와 우산도 받았다. 그런데 그 즙을 먹기 전과 먹은 뒤의 효과는 전혀 차이가 없었다.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해에 한두 번은 방문판매원이 찾아와 물건을 팔고 간다.
국내여행은 물론 해외여행에서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강매란 느낌이 드는 물품구매요구다. 내가 물품을 구입하거나 일행 중에 물건을 많이 사면 왠지 마음이 편하지만 구입하는 사람이 없으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한다.
나는 황당한 경험을 한 적도 있다. 1998년도 진안 J초등학교 교장 때의 일이다. 전주시 H초등학교 교감 때 자모 회장이었던 L씨의 유혹에 넘어가 SMK 다단계회사에 발을 들여놓았다. 활동을 잘 하면 한 달 수입이 오백만 원 이상이라는 말에 나는 홀딱 넘어갔다. 250만 원의 물품을 구입하고 회원이 되었다. 전주에서 서울까지 매주 버스 두 대가 다녔다. 내가 탄 버스에는 전직 경찰관, 교회 집사, 농협을 그만둔 사람, 퇴직 공무원, 가정주부들로 늘 빈자리가 없었다. 나는 먼저 아내를 설득하여 회원으로 가입시켰다. 주마다 한 분씩 여섯 분을 꼬드겨서 서울로 모시고 갔다. 그러나 회원이 된 사람은 L씨와 나, 둘뿐이었다. 둘이 열심히 활동했지만 결국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중도하차를 했다. 나의 어리석은 행동을 돌이켜 보면 지금도 쓴웃음이 절로 나온다.
나는 귀가 여리고 남의 말을 잘 믿는 편이다. 그리고 우유부단한 성격이다.
여행은 무엇보다 즐거워야 한다. 그리고 여행비용이 정당한 가격이어야 한다. 정당한 가격보다 턱없이 싸다면 거기에는 틀림없이 함정이 있기 마련이다. 여행사가 손해 볼 일은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심장이 두둑한 사람은 오늘 같은 여행을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2009.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