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대전 유성구에는 SS원이라는 대규모의 정신질환자들의 집단수용소가 있다. 이곳에서 18년째 살고 있는 동생이 있다. 오랜 세월 매달 한 번씩 이 길을 오가신 아버님의 발자취가 보일 듯 한적한 오솔길이 길게 누워 있다.
어머님은 2남 3녀를 낳아 기르던 중 오랜 병환 끝에 막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멀고 먼 길로 떠나 가셨다. 나는 병환 중이신 어머님께 많은 걱정과 실망만 안겨 드렸던 큰딸이다.
여고생이 된 그날 그시각, 한 책상에 앉아 공부해야할 짝을 만났다. 기독교 안수권사로 활동하던 그녀의 어머니가 계시를 받아 입교하여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린지 오래되지 않은 신흥종단이 있었다. 그 어머니의 딸인 그녀의 첯번째 포교 대상자가 되었다. 나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그 종단에 입문하였고, 핵심 맴버가 되어 버렸다. 주로 대학생들이 인도자가 되어 교리는 물론 영어와 수학과목 등 여러 가지 교육을 해주니 날마다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새벽기도를 비롯하여 수요일밤과 일요일의 낮과 밤 예배에 참석함은 물론 평일에도 학교 가기 전에 들러 기도를 하고 학교가 파한 뒤 또 교육을 받고 집엔 통금시간 직전에야 들어갔다. 부모님께서 내리는 꾸중과 체벌, 사랑도 이 길을 단념하기엔 효험이 없었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중에도 계몽운동이니 개척전도니 하면서 동원령이 내리면 만사 팽개치고 그 대열에 함류했다. 여고졸업과 동시 영원한 개척전도 임지를 향하여 가출해 버려 맏이로서 본분을 다하지 못한 그 자리를 둘째딸인 동생이 감당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대학생활도 버거운 와중에 투병중이신 엄마를 돌보랴, 집안 일을 하랴, 동생들을 챙기랴, 데이트까지 하느라 참으로 힘들고 복잡하게 지냈던 때였다.
나는 본부로부터 배정받은 임지를 일년 이상 사수하며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전도하던중 각혈을 하며 쓰러져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식사를 비롯하여 격리 치료를 받는 환자가 되었으니 집안 분위기는 어둡고 무거웠다. 엎친데 덮친격이랄까, 내 몫까지 책임지던 동생은 자꾸만 이상해졌다. 끝없이 중얼거리고, 희죽희죽 웃으며, 시도 때도 없이 외출하고 자꾸만 증세가 심해졌다. 아버님은 당황하여 이 병원 저 병원에서 치료도 하고 입원과 퇴원을 수시로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밤중에 일어나 울고 불고 소란을 피우면 누구라도 만류할 수 없는 날이 잦아진 어느날 저녁무렵, 날씨도 차거웠는데 아버님의 단독 결정으로 병원차에 실려 집을 떠난 그 뒤의 동생의 행적을 아버지만 아신 채 3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뒤 어머님이 내게 남은 동생들을 부탁한다면서 저 세상으로 가셨다. 끌려간 정신잃은 동생을 생각하며 8일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그대로 두 눈을 꼭 감은 채 자진하신 것 같다. 이 모든 일이 나로 인하여 일어난 우리집의 아픔인 것 같아 죄인처럼 살았다.
은행원이셨던 아버님은 직장도 그만두고 그럭저럭 지내시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둘째 딸을 면회하려고 어딘가 다녀 오신 그날밤은 혼자 술을 많이 드시고 깊은 잠에 빠지셨다.
그리고 매주 토요일 오후엔 거의 빠지지 않고 전주근교 장재동 선산에 모신 어머님의 묘를 정리하며 일상을 보고하고 신앙인보다도 더욱 진지하게 생활하셨다.
가끔 동생의 소재를 물어도 절대로 가르쳐 주시지 않고 당신 살아서는 면회를 다녀오지만 만약의 경우엔 일생을 그곳에 맡겼으니 절대로 찾지 말라고 하셨다. 잊어야 할 사람은 잊고 살아야 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주신 것이다.
그런데 칠순을 넘기신 아버님께서는 남동생이 사는 서울에 다녀 오신다고 하셨는데 그곳에서 감기기운이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한지 얼마 뒤 세상을 뜨셨다. 참으로 어이없고 허무하며 청천병력 같은 일이였다. 생전에 아버님께 잘해 드리지 못한 죄스러움에 주체할 수 없어 오랬동안 통곡을 쏟아냈다. 그래도 뵙고 싶고 아버님의 삶이 너무 안쓰러워 아버님이 자주 가셨던 어머님의 묘지에도 가보았고, 매일 정해진 시간엔 모 증권회사 의자에 앉아계시던 모습이 그리워 그 의자에서 기다려도 보았지만 모두가 허망한 일이었다.
문득 잊고 살았던 동생이 아니 오시는 아버지의 사연도 모르고 기다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조급해졋다. 나는 생전에 아버지가 자주 대전에 가신다는 그 길이 아버지가 면회를 다녔던 동생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되어 대전시청을 찾았다.
복지과에 들어가서 동생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이름을 댔더니 여자들 명단엔 없고 다행이 남자명부에 이름이 있었다. 송 계장님 차에 나를 태우고 도착한 곳이 유성구에 있는 SS정신요양소였다. 면회할 수 있도록 해주고 바삐 되돌아간 그 분을 잊을 수 없다. 참 고마운 분이었다.
부축을 받으며 단체복을 입은 채 구부정하게 디뚱거리며 오는 모습을 보니 짧은 머리때문인지 남자같기도 하고 늙어버린 노파같기도 했다. 나를 보더니 모른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언니라고 해도 25년만에 만나는 언니가 싫은 모양이었다. 마른 얼굴에 초점을 잃은 눈빛이었다. 아직 50줄도 아닌데 저런 모습이 되다니 나도 겁이 났다. 안내자의 팔을 잡고 서둘러 가버리니 어찌할 재간이 없었지만 있는 곳을 찾아낸 것만으로로 다행이라 여겼다. 처음 면회는 이렇게 끝났다.
두 번째 만난 동생은 두 손이 떨리고 입술도 경련이 일었다. 아픈 데는 없느냐고 물었더니 오래 전 발목이 구덩이에 빠졌는데 아직도 염증이 심하다고 해서 직원한테 잘 부탁했다. 같은 방 식구들과 동생의 간식을 챙겨 주었다. 아버지가 왜 안 오시느냐고 묻기에 돌아가셨다고 했더니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나도 같이 울었더니 속이 후련했다. 내가 아버지처럼 면회를 오겠다고 달래주었지만 그녀에겐 아버지가 전부였을 것이다.
아버님이 동생의 면회를 하러 긴 세월동안 다니셨듯이 앞으로 나도 면회를 다니려고 한다. 그래서 매주 한 번씩 전주에서 유성까지 버스를 타고 간다. 30분내지 1시간씩 기다려야 오는 시내버스를 타고가서 다시 20여분 걸어가야 하는 오솔길에서 나는 아버님의 눈물을 만났고, 발자국을 찾으며 아픔이란 게 이런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낄수 있었다.
그런데 세 번째 면회 때 봄빛이 따스해서 잔디밭에 나의 웃옷을 깔아놓고 그위에 앉도록 했다. 대화조차 할 수 없어 '고향의 봄'이란 노래를 조용히 불러주었다. '오빠생각'을 같이 부르자고 했더니 따라 불렀다.
손도 만지고 어깨도 안아주며 언니가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기도할까 했더니,
"내 기도 안들어 주시는 하느님은 없다."
고 힘 주어 말했다. 하느님이 없다고 생각해 본 적 없이 살아온 나였기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내가 느낀 아픔보다, 30여 년동안 흘리신 아버지의 아픔보다, 이곳에서 살아야 했던 아우의 아픔은 하늘만큼 땅만큼이나 컷을 것이다.
동생은 k여중을 다녔는데 기독교 학교여서 예배시간에 철저했고, 성경읽기 암송대회 등 여러 행사 중 암송대회에서 1등을 한 적이 있었다. 기도도 잘 했다. 즉 신앙심에 있어서는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착한 사람이다. 노래도 잘 하여 합창부활동도 했었다. 인물도 뛰어났다. 아마도 하나님을 많이 찾아 소원을 빌었고, 여러해 기도를 한 결과 하나님은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순간 나는 결심했다. 지금까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한다고 내 인생을 몽땅 던지지 않았던가?
"네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너의 하나님을 내가 꼭 찿아주마!"
살아있는 하나님을 보여주겠다. 그러기 전엔 나는 교회도 가지 않을 꺼구. 그래서 나는 봉사, 희생, 헌금, 전도를 다 중단했다. 동생을 끌어안고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매달렸다. 내 기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불쌍한 동생에게 당신의 실존과 사랑을 나타내고 싶다고 간절히 속으로 기도하고 결심했다.
동생의 소망은 인간 이하의 생활에서 인간의 세계로 돌아오고 싶은 것이다. 발랄했던 학창시절의 그 세계를 찾고 싶어 몸부림치며 매달려 얼마나 처절한 기도를 했을까? 지옥보다 더 힘든 장애인들과의 생활 속에서 장애인이 되어 살아온 그 많은 시간들을 찾아 주어야 한다. 약해진 체격, 찌그러진 표정을 하나님은 정말 외면하셨을까?
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하는 대신자가 되어 남아있은 생의 전부를 바치고자 했다. 하여 5년이란 세월을 그녀와 같이 보내며 외출을 시작했고, 3일 간씩 1주일씩 외박을 허가받아 전주까지 와서 지내다가 약속시간까지 그곳에 대려다 주곤 했었다.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한 순간 자신의 견제력을 잃어 사악한 인생길을 돌다보니 시간을 잃어버린 것은 물론 짓눌렸고 고통을 받았던 슬픔과 분노의 마음을 어떻게 다 풀어낼수 있을까만 새로운 날이 계속될수록 조금씩 웃음과 안정을 찾아갔다.
그뒤 SS요양소와의 질긴 인연을 끊고 형제들과 같이 지낸 지도 어언 10년이 지났다. 어느덧 60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나도 역시 그많은 한풀이를 받아 주기엔 힘들었고 괴로움도 후회도 많았으나 하나님과의 언약을 잊지않으려 아픔을 나누며 견뎌냈다.
문득 어린 나이에 내가 신흥종단에 빠지지 않았다면 우리 가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비록 병환중이셨지만 내 어머님은 아직 살아계셨을 것이고, 동생은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가정을 이루고 잘 살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다 옆자리 짝궁을 한 사람 만난 게 내 인생이 바뀌고 우리 집안의 가세가 바뀐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특히 아버님께서 그녀의 소재지를 알려주실 수 없었던 깊은 뜻도 이해가 된다. 늘그막에 동생보다 더 좋은 벗이 어디 있으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 모든 것이 편한 것을. 그녀는 집안 일도 도와 주면서, 독서도 하고, 피아노도 친다. 우리 자매는 건지산의 오솔길을 산책하기도 하고, 마-트에 가서 쇼핑도 하며, 대중탕에도 함께 간다.
언젠가는 아우가 근처 교회에도 함께 가자고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날은 꼭 올 것이다.
공지사항
문화 류씨 이야기
운조루 11대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