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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윤석조
작성일 2009-11-30 (월) 14:32
ㆍ추천: 0  ㆍ조회: 3036      
거북이걸음으로
거북이걸음으로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윤석조
                                                           

 
  가을의 끝자락이 보여주는 빛깔과 낙엽들의 속삭임, 남쪽 바다가 일구는 바람 소리도 듣고 싶었다. 만류하던 아내가 새벽부터 만든 도시락과 물병, 간식을 배낭에 넣어주며 들려주는 주의사항을 또 건성건성 들었다. 작은 달력에 기록된 등산안내를 확인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경기장 정문 앞에서 전남 고흥 팔영산으로 가는 관광버스를 찾아 승차했다. 출발시간은 넉넉한데도 빈자리를 찾아 앉아야 했고, 그 때서야 봉우리산악회의 등산가는 차임을 알았다. 무등산을 다녀온 일과 고흥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삼년 전이었다. 무등산 정상까지 등반할 수 있다는 안내를 보고, 기린로에서 승차하였는데 이 산악회의 산행 차였다. 광주 증심사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회원들은 준비운동도 없이 그냥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을 따라가다 심장마비라도 올 것 같아, 뒤에 혼자 처져서 올라갔다. 이런 산악회는 처음이었다.
 세인봉과 누런 억새풀로 이어지는 중머리재를 지나, 큰 돌기둥과 바위들이 누런 억새풀 속에 숨어있는 것을 보았다. 무등산에 너른 너덜지대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돌을 깎아 세운 것 같은 입석대를 보고, 그 신비함에 놀라고 있는데 사진을 찍어준다는 여자가 있었다. 이 산악회원도 아니면서 사진을 찍어주고 친절을 베풀어 주던 소나무님이 고맙기만 했다. 선돌바위들이 병풍을 쳐 놓은 듯한 서석대도 보았다. 정상을 먼눈으로 보고 내려오는데 억새밭을 만들고자 50여 년 전에 심었던 오리나무를 전기톱으로 마구 잘라내고 있었다. 돌의 흔들림이 없는 긴 덕산 너덜길을 걸었던 일이 추억으로 남았다.
 차는 어느새 벌교를 지나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눈길이 창밖으로만 가는데 옛 모습은 어느 것 하나 찾을 수 없었다. 하기야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밭 자락의 초록색 나무에 노랗게 익은 유자만이 이곳이 고흥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40여 년 전 고흥농고에서 근무했던 아스라한 추억이 살아났다. 학교 근처의 땅촌 부락에서, 결혼 신접살림살이를 꾸몄고 그곳이 큰딸의 쌈터가 되었다. 학생들은 온순하고 인심이 참 좋아 오래 살고 싶은 곳이었지만 2년 뒤 아쉬운 마음으로 떠났었다. 가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소록도와 거문도, 백도를 가고 오면서 고흥농고와 땅촌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차안에서 팔영산에 대한 산악대장의 간단한 설명이 있었다. 팔영산은 고흥반도에 솟은 산으로 소백산맥의 맨 끝자락에 8개의 봉우리가 남쪽을 향해 일직선으로 늘어서 있다. 산은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지만 산세가 험하고 변화무쌍하여 아기자기한 바위능선의 산행을 즐길 수 있으며, 위험한 곳에는 철 계단과 철 줄이 설치되어 있다. 힘든 사람들은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능가사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 하산하면 된다고 하였다. 우리들은 강산리에서 산에 오르고 깃대봉(608.6m)에서 능가사로 하산하고 오후 5시에 전주로 출발한다 하였다. 무등산에 오를 때의 봉우리산악회는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산기슭에 차를 세웠다. 각자 산행준비를 하고 시멘트 길을 삼삼오오 오르다가 한 줄이 되어 산길로 접어들었다. 뒤로 처져 한참 오르다보니 바위절벽이 앞을 막는데, 강산폭포라 하였지만 흐르는 물줄기는 없었다. 능선을 따라가는 길은 너덜을 밟고 가야 했다. 뒤를 내려다보니 바다가 골짜기로 쑥 들어와 있는데 좁은 주변은 경지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란 생각으로 따라 가지만 갈수록 선두와의 거리는 멀어지고 있었다. 뒤에 따라 오는 사람들이 등산을 잘 한다고 추겨주었다. 몇 살이냐고 물으면 쑥스러웠는데 알려주면 다들 놀랐다. 어렵게 신선봉을 지나 갈대밭으로 내려가는데, 앞서가던 일행들이 양지쪽에 모여앉아 점심식사를 하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식사도 안 끝났는데 벌써 출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식사 후 쉴 시간이 없이 거북이걸음으로 나 홀로 바위들을 오르내리며 한 줄로 늘어선 바위능선에 다가갔다. 바위 봉우리마다 등산객들이 서성이는데, 어디로 어떻게 올라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능선에서 오른쪽에 1봉 유영봉(491m)이 있었다. 2봉으로 가도 된다하였지만 1봉부터 오르기로 했다. 옛날에 설악산의 공룡능선과 용아장성릉도 지났고 지리산 종주를 했던 나를 믿을 뿐이었다.
 암벽에 붙어있는 쇠줄과 발판, 철계단을 이용하여 어렵게 1봉에 올랐더니 너른 바위가 솟아 있었다. 서쪽과 북쪽을 내려 보는 눈길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오던 길로 돌아서 바위능선을 오르내리며 점점 높아지는 2봉(성주봉 538m)에서부터 차레로 8봉(적취봉)을 거쳐 깃대봉(608.6m)에 올랐다. 신선봉까지 10개의 바위봉우리들을 넘었다.  온산에 퍼져 있는 늦가을 단풍이 쉬어가라는 듯 붙잡았다.
 능가사 쪽 하산 길은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기분이 좋았는데 그것도 잠시 너덜 길로 이어졌다. 이정표에 2,8Km라 하였지만 너무나 힘들어서 먼 길이 되었다. 위안이 된 것은 산악대장과 몇 사람이 그때서야 빠른 걸음으로 나를 앞서가며 천천히 잘 내려오라 하였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중봉 싸리봉을 거쳐 몇 시간을 자갈길만 걸었던 일이 생각났다. 주차장에 도착하였을 때는 하산주를 나누려는지 몇 사람이 자리를 펴고 있었다. 3년 전의 봉우리산악회는 아니었다. 내가 못 가본 산행을 한다면 또 따라가고 싶었다.    
 봉우리들마다 힘들게 올랐지만 남해안에 점점이 떠 있는 그림 같은 섬과, 어느새 기운 해가 만드는 금물결로 어울린 풍광은 이곳이 아니면 보지 못할 것 같았다. 더구나 능가사 쪽 단풍잎은 아직도 활활 타는 불꽃으로 일렁이며 오는 겨울을 밀어내고 있었다. 참 좋은 산이었다. (2009.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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