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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김세명
작성일 2009-11-15 (일) 06:24
ㆍ추천: 0  ㆍ조회: 2581      
수필과 나의 인연
수필과 나의 인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세명













 수필이 무언지도 몰랐다. 더더욱 등단이란 절차도 몰랐다. 2001년 연말이면 강산이 네 번 변한 세월을 뒤로하고 정년퇴직을 해야 한다. 무언가 정리해야겠다는 절박감에 내가 직장에 들어온 사연과 그간의 애환을 풀지 않고는 병이 날 것 같은 생각에 '콩깍지'라는 글을 써 고하 선생님에게 내 놓은 것이 계기가 되어 <수필과 비평 5월호>에서 신인상을 받게 되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홍인호텔에서 가족과 선배 작가들의 축하를 받으며 등단패를 받아 수필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해 등단 4개월 만인 9월 1일에 '업'이란 수필집을 상재했으니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은 듯하여 부실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9월 1일을 기해 출판기념회를 연 것은 공직에 첫 발령을 받은 날이 바로 그날이었기 때문이다. 그해 말쯤에 선배문인들이 나를 축하해주기 위해 동문 네거리 어느 생맥주집에서 간소한 축하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하였다. 그날 한 친구가 일어나 그 무렵 유행하던 '칠갑산'이라 노래를 불러 주었다. 지금은 잊혀진 까마득한 옛날 얘기다. 애환은 시대가 달라져도 그대로 남는 모양이다. 지금도 그렇다. 모두가 그렇게 칠갑산이란 노랫말을 닮아간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사와는 거리가 먼 공직에서 40년을 이방인처럼 전북을 배회하며 호구지책을 하고 직장을 나오려니 되돌아보면 나 자신이 대견했다. 애써 익힌 저마다의 생업이 오래 가지 못하고 퇴출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삶의 도중에 마감할 수도 없는 문제다. 나만은 아니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나의 정년퇴직은 해탈 같은 것이었다. 더는 내가 힘겨워지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퇴직 후가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남아도는 무료한 시간을 던져볼 곳이 없고 가족들조차도 모두 바쁘고 외면하는 일이 많았다. 다른 길이 없는지 찾아보았지만 생각대로 잘 안되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죽음의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았다. 남들이야 있으나마나한 일이고 이름 없는 수필가 한 명 늘어난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겠지만 나에게는 절실한 문제였다. 개인적으로 퇴직과 맞물린 수필가로의 등단은 내게 여생의 방향을 결정적으로 바꾸어 주었다. 내게는 그랬다. 퇴직 뒤에도 퇴직이 없게 만들었다. 마치도 그것은 내가 옮긴 새로운 직업처럼 내게 나날의 시간이 비지 않게 해주었다. 내가 오래 꿈꿔왔던 나만의 일에 처음으로 매달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수필에 집중하는 동안에는 과거의 업무처럼 제약받지도 않았으며 무한히 넓고 자유로운 사유 속에서 내가 쓰고 싶고 하고자 하던 말들을 구사할 수 있었다. 남보다 특별하고 남이 나를 더 알아주게 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퇴직자였고, 천성이 내성적이어서 이웃조차도 잘 만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등단으로 인한 새로운 인연이 맺어져 선배문인들도 만나 친교를 나누면서 나의 정체성과 나만의 얼굴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다. 수필은 적당히 쓰고 내놓으며 변명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필은 나를 안에서 길들여지게 하고 초월적인 무언가를 갈구하게 해 주었다. 내게 없던 어떤 것처럼 내가 보게 그려냈을 때 수필은 나의 날개였다. 밖으로 펴는 날개가 아니라 안으로 나는 날개가 되었던 것이다.




수필은 나를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최소한 수필을 쓰고 내 생애의 한 맺힌 일들이 문득 문득 생각나 작품이 되었을 때의 보람은 잃어버린 과거를 찾은 것처럼 행복했다. 수필과 나는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 인연만 맺었지 남들이 쓴 글을 흉내 낸 정도에 불과했다. 최근에야 수필공부를 하면서 다작을 한다고 동료 문인들이 말하고 교수님이 성가실 정도라고 해도 열심히 쓰다보면 좋은 글 한 편정도는 건질 것이라는 기대 속에 쓰고 있다.  정말이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니 어찌 행복하다 하지 않을 수 있으랴?

                                                                                                           (2009.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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