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갯불처럼 순간적으로 당한 사고였다. 질풍같이 달리던 버스의 정면에 부딪친 나는 공중으로 붕 떴다가 곤두박질쳐졌다. 미동도 할 수 없었다. 운전기사는 죽은 듯 늘어진 내 어깨를 붙들고 질질 끌어, 내가 파란 신호등을 기다리던 장소로 옮겨놓았다. 의식이 몽롱한 상태에서 나의 귀에는 기사의 음성이 꿈결처럼 들렸다. 기사는 경찰에 신고를 하고, 119를 불렀다. 나는 애써 우리 집 전화번호를 기사에게 말하고는 의식을 잃어버렸다.
병원 응급실, 정신이 돌아오자 칼로 후비는 듯 허리가 아팠다. 내 신음소리에 의료진은 사정없이 진통제를 주사했다. 진통제의 방어에 멎을 듯하던 통증은, 점령군의 횡포보다 강하게 허리를 쑤셔댔다. 통증과 진통제가 진퇴를 거듭하는 사이 몸은 점점 기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사고의 내용으로 보아 허리의 부상보다 머리가 더 염려스럽다고 의료진이 말했다.
정신이 들자 사고의 과정이 떠올랐다. 나는 그 날(2009. 9. 28.) 밤 9시경,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잠시 머물던 장마가 굵은 빗방울이 되어 가로등 불빛사이로 구슬처럼 떨어졌다. 6차선 도로에는 질주하던 차량이 뜸했고 인적도 드물었다. 나는 약국 집 처마 밑에서 횡단보도에 걸린 파란 신호등을 기다렸다. 파란 불이 들어오자 횡단보도를 뛰어 갈까 하다가 '에라, 속보로 걸어가자'라며 앞만 보고 걸었다. 거의 중앙선에 이를 즈음 신호를 무시한 채 쏜살같이 달리던 시내버스의 공격을 받은 것이다. 1초도 못 되는 순간에 당한 사고였다.
MRI 촬영 결과 허리의 뼈가 부서져 신경을 자극하기 때문에 통증이 심할 거라 했다. CT 촬영 결과 머리엔 이상이 없었다. 이 같은 사고에는 머리가 다치는 것이 상례인데 불행 중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불행 중 불행이라 느껴졌다. 계속되는 통증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횡단보도의 파란 신호등이 켜진 상태에서 중앙선에 내가 쓰러져 있었으니 단 1초만 내 걸음이 빨랐더라도 사고는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 1초의 순간을 피하지 못하고 중상을 당한 자신의 처지가 원망스러웠다. 얄궂은 운명이 시련을 안고 예고 없이 찾아와, 고통스럽고도 긴 투병생활이 악귀처럼 내 앞을 가로막게 되었다.
사고의 100%를 자기 과실로 인정한 기사는 하루가 멀다고 병실을 찾아왔다. 육신의 고통이 분노로 이어져 기사의 얼굴이 마귀처럼 보였다. 나는 기사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조석으로 찾아오는 기사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용서를 빌었다. 끊임없이 찾아온 기사는 때로는 눈물을 보이며 빌고 또 빌었다. 눈물에 약하고 정에 약한 인간의 본성이 내 가슴속에 일기 시작했다. 냉대에도 찾아와 용서를 비는 기사가 측은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큰아들과 비슷한 연배의 젊은 기사, 정신적 고통에 함몰(陷沒)된 기사의 얼굴에 아들의 얼굴이 겹쳤다. 내가 그 순간 그 자리에 없었더라면 사고가 없었을 것을, 단 1초의 순간을 피하지 못한 자신의 존재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계속되는 통증이 기사의 얼굴에 얽혀 곤혹스럽기도 했다. 나는 이를 물고 젊은 기사의 안타까운 모습에 연민을 느끼려고 애썼다.
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고 유익하고 행복하게 하지만, 복잡하고 위험도 따르는 사회구조가 형성된다. 때문에 지켜야 할 규제사항도 많다. 인간은 행동하는 존재인 만큼 도로를 이용하고, 신속한 교통수단으로 차량을 이용한다. 수많은 차량의 원활한 소통과 그에 따른 사고방지를 위한 규제사항이 있다. 자동차를 운행할 때에는 ‘차선을 지켜라, 중앙선을 침범하지 마라, 신호등을 지켜라, 과속하지 마라, 졸음운전 하지 마라, 음주운전을 하지 마라’ 등 규제사항을 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차선의 파란 신호등은 차량 통행을 허용하고, 횡단보도의 파란 신호등은 보행자의 통과를 허용한다. 이 같은 도로교통법의 규제사항을 때때로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어, 교통사고를 유발한다. 교통사고처럼 무시무시하고 비극적인 일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나라 교통사고의 비율이 세계의 1위라니 소름이 끼친다.
한 순간에 법질서를 무시하거나 실수로 인하여 교통사고를 일으켰을 경우, 그 비극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고를 일으키거나 사고를 당한 사람은 그 비극적인 고통을 뼈저리게 느낀다. 도로교통법을 준엄하고도 치밀하게 지키는 일은, 운전자들의 평생불행에서 행복을 유지하는 길이다. 보행자 또한 주변을 면밀히 살펴 도로를 이용할 일이다.
파란 신호등!
나는 그 신호등만을 믿고 주변 사항을 면밀히 살피지 못한 실수가 있다. 순간의 그 실수로 인하여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할 척추골절의 치명상을 입었다. 횡단보도의 파란 신호등은 교통의 파수꾼일 수 있지만, 내 인생을 방심하지 말고 주변을 면밀히 살펴 실수 없이 살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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