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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김미연
작성일 2009-09-18 (금) 16:39
ㆍ추천: 0  ㆍ조회: 2454      
할머니와 목도리
할머니와 목도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 김 미 연


이미 종영된 드라마 한 편을 보고 있노라니 배경이 대부분 한겨울이었다. 그렇잖아도 후텁지근한 날씨가 한결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채널을 돌리려는 순간, 여자 주인공이 두터운 목도리를 하고 등교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녀의 목도리, 나도 그것과 비슷한 목도리가 있었다.

내 기억 속에는 늘 할머니가 계신다. 우리 할머니는 흔히들 연상되는 푸근하고 인자한 할머니의 이미지는 아니셨다.
어릴 적의 기억으로 할머니는 늘 화장을 하셨고, 치장에 대한 욕심도 크셨던 것 같다. 계절마다 이웃집 할머니들과 여행을 즐기셨고, 어른들이 말하는‘마실’이 일상생활이셨다. 옛날 어른치고는 키가 크셔서 할머니의 별명은‘xx동 멋쟁이 할머니’이셨다. 이런 할머니가 손자들에게 자상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자상한 모습을 보여줄 시간이 없으셨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유독 나에 대한 애정은 깊으셨다. 아마 유달리 할머니를 잘 따랐던 것이 이유인 것 같다.
내가 열여섯 살, 그러니까 고등학교 1학년이던 어느 날, 할머니는 시장에서 장을 보고 오시는 길에 내 겨울 목도리를 사오셨다. 하늘색과 보라색이 섞여 있는 기하학적 무늬의 목도리였다. 언뜻 보면 인디언 부족들이 두르고 다니는 의상이라고 착각을 일으킬 만했다. 한창 외모에 신경을 쓰고 유행 브랜드에 민감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던 나는 목도리를 받아 든 순간 잠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 지 고민했었다.
결과만 말하자면 나는 그해 겨울을 그 목도리와 함께 보냈다. 교복 코트 위에 늘 할머니가 주신 목도리를 두르고 등교버스에 오르면 친구들은 나를 보며 초등학생 같다고 놀리기도 했고, 구하기 힘든 무늬의 목도리를 어디서 났냐는 비웃음도 샀다. 꿋꿋하게 이 목도리를 두르고 그해 겨울을 보냈던 이유는 한 가지였다. 할머니가 사 주셨다는 것, 그 이유뿐이었다.
할머니는 시장에서 그 목도리를 보며 손녀딸 생각을 하셨을 것이고, 그 목도리를 사가지고 집으로 오시는 발걸음은 다른 때보다 급하셨을 것이다. 그 마음을 잘 알면서도‘할머니 이게 뭐야~ 너무 촌스러워. 할머니, 나 이거 싫어, 안 할래.’라고 말한다면 할머니의 가슴은 찢어지듯 아프실 건 당연했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은 마음에 들지 않거나, 혹은 내게 필요치 않아도 웬만하면 선물 받은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선물한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최고의 답례라고 생각하니까. 아무튼 오로지 할머니가 나를 보며 웃을 수 있어야 내 마음이 편했기에 당시 유행했던 브랜드의 흰색 목도리는 옷장 서랍에서 꺼내 보지도 못한 채 유행을 넘겨야 했다.

내가 한 해 한 해 성장하면서 할머니가 사주신 목도리 또한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동시에 할머니가 시골로 내려가신 뒤부터 할머니에 대한 애틋함 또한 그 세월만큼 성큼 뒷걸음질 해 버렸다. 그러다가 TV화면 속 드라마 주인공의 목도리가 잊었던 내 목도리와 할머니를 떠오르게 한 것이다.
가끔 할머니께 전화 한 통 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손가락 하나 들어 저장된 번호를 한 번 눌러서 이루어지는 몇 분간의 통화로 내 불편한 마음을 해결한다는 것이 못내 양심에 찔려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마음이 불편한 탓일까, 어쩌다 한 번 전화를 드릴 때면 아무렇지 않은 척 되려 당당하게 할머니의 안부를 여쭙고 서둘러 전화를 끊곤 했다. 이런 못된 손녀딸의 전화가 뭐 그리 좋으신지 할머니의 첫 마디는
“아이고~ 전화세 많이 나오는데 뭐허러 전화혔어?”
하셨다. 마지막 인사는 매번 전화를 주어 고맙다는 말이었다. 목도리 생각이 떠오른 그날 이후, 그동안 말도 안 되는 게으름을 핑계로 할머니를 찾아뵙지 못한 일이 죄송스러워 며칠간 괴로워하다가 할머니를 뵈러 가기로 마음먹었다.
간다는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간 서산의 할머니. 검버섯이 수북하게 올라앉은 얼굴과 점점 여위어 가는 할머니의 왜소한 몸을 보자마자 눈물이 나와 우선 할머니 품에 안겨버렸다. 우는 모습은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으니 신나고 멋지게 포옹하는 것처럼 일부러 과장된 몸짓으로 말이다.
결혼식에 오셨을 때만 해도 거동은 충분하셨는데 이제 지팡이 없이는 걷지도 못하셨다. xx동 멋쟁이 할머니에겐 평생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지팡이가 낯설어 한참을 지팡이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밥 한 끼 차려 드리고 오겠다는 딸이 못미더워 부모님까지 인천에서 급하게 내려오셔서 갑자기 가족모임이 되었다.
식사를 통 못하시는 할머니께 백숙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잘게 잘라 입에 넣어 드리고, 영양가 좋은 재료들을 넣어 끓인 닭죽으로 한 끼 식사를 대접했다. 입맛을 잃은 할머니 때문에 엄마와 고민 끝에 생각해 낸 메뉴였다.
체리 한 알 한 알 다 드시는 것을 지켜보며
“할미, 다른 식구들 주지 말고 할미만 먹어, 알았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좋은 것 모두 당신은 드시지 않고 가족들에게 주신다는 것을 알기에 못된 말인 줄 알면서도 당부를 했다.
엄마와 내가 식사 준비를 하는 사이 아빠는 건너편 이웃집 할머니를 차로 모시고 오셨다. 내 걸음으로 3분이면 도착할 바로 코앞의 집이거늘, 할머니들에겐 그 거리가 천릿길 같아 서로 왕래도 못하신 채 한참을 지내셨나 보다. 딸과 사위, 손녀딸, 그리고 친구도 함께 하시니 할머니께는 행복한 하루가 되겠지 싶어 내심 뿌듯하다.
“할미, 한 숟가락만 더 먹자, 응?”
“할미, 이거 한 입만 더 먹자, 응?”
통 드시지 못하는 할머니는 어린 아이가 먹는 양만큼도 드시지 못했다. 고기 한 점이라도 더, 죽 한 숟갈이라도 더, 과일 한 쪽이라도 더 드시게 하려고 한참  할머니와 실랑이를 벌이다 보니, 마치 데자뷰처럼 언젠가 비슷한 상황에 내가 있던 그림이 그려져 잠시 혼란스러웠다.
“아가, 요거 한 숟갈만 더 먹자.”
“어이구, 착하지, 요거 한 입만 더 먹자, 울 애기.”
어릴 적 밥 먹을 때마다 속 썩이던 손녀딸에게 밥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 하셨던 할머니의 모습이 이제는 내가 되었고, 할머니는 내가 되었다. 역할극을 바꾸어 공연하는 것 같았다. 씁쓸함이 목까지 차올랐다. 하룻밤을 할머니와 함께 묵은 뒤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시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대문을 나서는 일은 참으로 잔인한 일이었다.
“할미, 아프지 말구 잘 있어. 또 올게.”
할머니를 한 번 뵙고 오면 마음이 편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효도란 것은 어찌 생각하면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철저하게 나의 부모를 위한 일이라기보다 이렇게 효도함으로써 나 스스로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욕심 말이다.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 기꺼이 약간의 수고 정도는 감수하는 심리가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버스에 올라 탄 순간부터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지팡이가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심장이 뜨끔뜨끔 아팠고, 무언가 중요한 것을 그곳에 두고 온 것 같아 실제로 가방을 뒤져 짐을 확인하기도 했다. 할머니와 나 사이 30여 년의 세월을 그 곳에 놓고 온 죄책감인 듯했다.

 이 글을 다 썼으니 할머니에게 다시 전화를 해야겠다. 전화세 많이 나온다고 빨리 끊으라 하셔도 그저 웃어야지. 오늘은 밥 한 그릇 다 드셨는지 여쭈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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