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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이수홍
작성일 2009-09-10 (목) 04:49
ㆍ추천: 0  ㆍ조회: 3209      
건지산(7)
건지산(7)
            - 산에 갈 때는 쥘부채를 들자 -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白鶴 이수홍


오늘도 건지산에 오른다. 산에 갈 때 나는 모자를 쓴다. 모자를 안 쓴 사람이 드물다. 대머리인 사람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햇볕을 가리려고 쓰지만 멋을 내고자 쓰기도 한다. 나는 모자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모자를 구겨서 조끼나 가방에 넣어 두었다가 햇볕이 따가울 때만 쓴다.

내가 다니는 건지산 코스는 거의 그늘진 곳이라 모자가 필요 없다. 어쩌다가 뽐내려고 빨간 모자를 쓰고 가면 머리에 땀이 더 많이 나고 더워서 불편하다. 요즘엔 쥘부채를 가지고 다니니 아주 좋다. 쥘부채를 합죽선이라고도 한다. 내게는 햇볕을 가리는 파라솔이다. 내 자신의 전기(電氣)로 돌아가는 선풍기다. 지죽상혼기자청풍(紙竹相婚其子淸風)이니 아니 그럴 소냐. 모기나 벌레를 쫒는 도구이기도 하다. 판소리를 연습할 때도 사용하는 일거사득(一擧四得)의 효과를 낸다. 판소리를 할 때 한 손으로 부채를 펴는 모습은 참 예쁘다. 그러나 그리 쉽지가 않다. 어려운 일이기에 연습을 하게 되어 좋다.

판소리를 할 때는 꼭 합죽선을 가지고 해야 한다. 판소리를 할 때 창자가 기본적으로 하는 세 가지가 있다. 창, 아니리, 너름새다. 너름새를 발림이라고도 하는데 몸짓으로 하는 연극적인 요소다. 이 역할을 하는 데 꼭 필요한 도구가 부채다. 춘향가에서 춘향의 편지를 창자가 읽는 시늉을 할 때는 부채가 편지다. 춘향이가 매를 맞는 대목에서는 곤장으로 사용된다. 적벽가에서 관운장의 호령 속에서는 청룡도(靑龍刀)가 된다. 흥보가 박을 탈 때는 톱이 된다. 심 봉사의 지팡이가 되고, 인당수에 빠지는 심청이가 되기도 한다. 공연하면서 더울 때 부채질하는 것은 당연하다. 부채가 원초적 용도로 쓰이는 경우다. 한복을 입고 손에 자연스럽게 부채를 쥐면 보기도 좋다. 쥘부채를 사용하는 이유는 그것이 접혔다 펴졌다 하면서 그 모양이 바뀌어 여러 물건이나 상황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합죽선이 아주 좋은 점이 또 하나 있다. 선물용으로도 으뜸이다. 전주의 명물이라 외지 손님에게 선물하면 제격이다. 판소리를 하는 창자가 흔히 완창발표회를 갖는다. 그때는 꼭 가르친 선생에게 인사를 하고 선물을 드린다. 선생은 답례품으로 합죽선을 준다. 전라북도도립국악원에서는 연말 연수생 발표회 때 공로가 있는 연수생에게 표창장을 주고 부상으로 합죽선을 준다. 나도 받아서 쓴 일이 있다. 엊그제 산에 갔을 때는 메모를 해야겠는데 볼펜은 있는데 메모지가 없었다. 얼른 생각나는 것이 부채였다. 그래서 부채의 용도가 또 하나 늘었다.

살아온 날을 반추하며 내가 부채와 같이 좋은 일만하고 쓸모 있게 살았는지 자문한다. 부끄러워 얼굴빛이 붉어진 것 같다. 남은 삶이나마 부채처럼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모든 물건은 사용할 줄을 알아서 그것이 지닌 가치를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사람을 다스리는 일도 마찬가지려니 싶다.
                           [2009.9.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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