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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이순주
작성일 2009-05-29 (금) 08:29
ㆍ추천: 0  ㆍ조회: 2761      
봉하마을 분향소 참가기
봉하마을 분향소 참가기

                                         행촌수필문학회  이순주(선조 교무)

- 분향소를 찾는 사람들 -

차라리
“여운계의 빈소를 찾지!”
“대통령 시절 무엇을 했다고?”
“바보같이 그런 식으로 죽어?”
“자살은 무슨 자살, 현 정권이 간접 타살한 거야!”
어느 종교집단에서 교육을 받은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다.
“자살도 살신성인정신이었지.”
 "그분다운 선택이야!”
 "지금 정치권의 간접살인이야!"
의식 있는 젊은 세대의 우왕좌왕하는 여론 속을 헤쳐 나와 5월 26일 오후 2시 봉화마을로 내비게이션 행선지를 맞추고 떠났다. 서울에서 5시간이 소요되리라 추정되어 예정대로 오후 7시에 김해청소년회관 광장에 도착하였다. 임시주차장은 차로 만원이 되어 주변 거리에 겨우 차를 끼워넣고 5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마을입구에 도착한 시각은 8시. 생가까지 12,1키로 남았다고 했다. 그곳부터 줄지어 걸어가야 하는데, 26일 30만 참배인파속에 나도 물결처럼 따라 걸어갔다. 반대편 줄에는 벌써 분향을 마친 인파들이 가슴에 조표를 달고 한 손에는 촛불을 들고 한 걸음 한 걸음 대통령님께 추모의 마음을 전하고 갈 때보다 더 슬픈 얼굴로 밀려 나오고 있었다.

 앞줄에 서서 기다리는 젊은 부부가 막 걸음마가 시작된 아들의 손을 잡고 걸으며
“아가, 너도 대통령 할아버지에게 절을 해라.”
고 시켰다.

“어제 한나라)당 간부들은 주민들과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항의에 밀려 아예 문상도 못하고 갔는데 김형오 국회의장은 밤늦께까지 기다렸다가 새벽에 겨우 참배를하고 돌아갔다는데 그렇게라도 체면유지는 된 셈이지. 누구는 배신자이고, 어느당은 이 기회에 당 체면으로 이용하려고 그런 거지.”
저마다 국민정치 평론가가 되어 한마디씩 거든다. 보통 20분 걸어가는 거리를 1시간을 더 걸려 마을회관 분향소에 도착했다.

 5월의 신록 속에 아카시아 꽃향기는 그윽하고 모내기를 하려고 다져놓은 논에는 물이 고여서 열기를 달구고 있었다.
"저 산이 봉하산입니까?"
마을사람인 듯한 사람에게 물었다.
"저 바위가 부엉이바위군요!"
멀리서 볼 때 봉하산은 높고 위험한은 산은 아니었다. 그러나 부엉부엉 울어대는 부엉이바위는 멀리서 보아도 야무지고 단단해 보여 저곳에서 떨어지셨다면 정말 많은 피를 흘리시며 가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갓난아이 때부터 수없이 바라보던 부엉이바위! 수없는 좌절을 이겨내며 단단하게 견디며 새날이 밝아오는 그 울음소리를 들으셨을 텐데 부엉이바위의 꿈이 비상하며 그 혼을 다시 살려내려는 혼불로 번저가는 듯했다.

누가 시켜서도 할 수 없고 누구의 지시로도 할 수 없는 소리 없는 분노와 애도의 숨결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마을에는 온통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은 영원한 우리의 대통령님입니다." 라는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분향소에서-

 노무현 대통령 분향소를 찾은 국민들은 처음 두 줄, 다음 5명이 1조, 다음 10명이 1줄, 분향소 앞에서는 20명이 한 줄이 되어 합동으로 국화꽃을 올리고 묵념을 한 뒤 문제인 전 비서실장과등 유족 등 10여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방문록에 기록을 남긴다. 추모관을 둘러보며 한마디씩 추모의 글을 쓰고 눈물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흔적을 남기고 봉하마을 무공해 쌀로 만든 떡 한 쪽과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며 문상을 마치고 촛불 한 자루에 촛불을 밝히고 봉하마을을 걸어 나왔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요 누구의 지시도 없는데 문상객들 스스로 쓰레기를 모으는 자루를 여기저기 설치해 두었다. 여기저기서
"생수 드세요. 생수 드시고 가세요."
정이 넘쳤다. 여기저기 부스가 세워지며 그늘이 만들어지고 추모 글을 쓸 수 있도록 방명록을 받고 떡과 국밥을 먹고 갈 수 있도록 행렬이 이어졌다.

 나는 향 하나를 사르고 성주와 염불, 심고를 올린 다음 영전에 십만 원의 송별금을 올렸다. 분향을 하고 문재인 등 텔레비젼 화면에서 익숙해진 분들에게 예를 올리고 나오다가 노무현 대통령의 평생후원자라는 “강금원 사장”과 마주쳤다.

“經倫通宇宙 信義貫古今”
정산 종사님 경륜법문이 스쳤다. 인연관계라는 것은 경륜이 우주를 통하고 3세를 통한 진리의 안목이어야 하고 그 안목에 바탕하여 고금을 통하여 떳떳해야 한다. 인연을 통하여 경륜을 실현하는 것인데 그 인연은 오래 가되 서로 원망하지 않으며 경륜이 펼쳐지는 일에는 인연이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분향소에는 여러 형태로 방명록과 추모 글을 쓰도록 자원봉사부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방명록에 편지 한 장을 써내려 갔다.

 내가 전주에서 근무하던 시절, 시민연대의 이름으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를 초청하여 시청강당에서 강연을 열었다. 강연이 끝난 뒤 내가 질문을 할 때 민주당의 여러 계파가 어떤 방법으로 하나가 될 것이고 그게 가능하냐? 민주당은 경상도에서 지지하지 않는데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 통일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느냐? 등의 질문에 노무현 후보는 내가 교무라는 것도 알아 주셨고 분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결국은 합해질 거라는 대답을 하셨다. 그 답변을 상기하며 대통령으로서의  행적을 사랑한다고 적고 “영호남” "남북통일”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일구러 이 나라에 다시 오셔야 한다고 적었다.

 -추모관의 안과 밖-

 마을 회관은 추모관이 되었다. 노무현 권양숙 두 분의 다정한 모습을 십자수로 놓아 모셔진 액자와 농민복 차림의 노무현 전 대통령사진이 걸려있었다. 또 부산의 어느 학교초등학생들이 쓴 노란 엽서에 대통령 할아버지께 드리는 글이 게시되어 있었다. 봉하마을을 다녀간 사람들의 정겨운 사진이 전시되었을 뿐 어느 시골 마을회관과 별 다를 바 없었다.

 추모관 밖으로 나왔다. 대통령의 마지막 유서가 벽걸이로 붙여져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 내려와 1년 동안 활동하셨던 연설과 인간적인 면을 대형화면으로 보여주어 분향을 마친 사람들이 둘러 앉아 시청하고 있었다.

 나도 그 속에서 발인날까지 철야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서울까지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가까스로 자제하고 국밥 한 그릇을 받아들고 텐트 안에서 무공해 친환경쌀로 지은 밥을 먹었다. 대통령의 구수한 사랑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반찬 한 가지 없는 국밥이지만 간도 맞고 양도 적당하여 든든한 요기가 되었다. 그 많은 문상객에게 떡 한 조각 밥 한 그릇이 질서있게 나눠지는 성숙된 모습에서 대통령을 추모하는 진실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대통령후보 경선을 앞두고 전주에 들러 강연을 하실 때 참여자치시민연대는 식사대접 예산도 없이 20여명이 함께 저녁식사를 했었다. 사무실 상근 근무자들에게 밥값을 누가 내느냐고 물으니 아직 아무도 내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아니 낼 돈이 없는 사람들이 그들을 초대했던 것이다. 나는 그날 밥값을 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전주는 무슨 음식이든지 맛이 좋은 고장이 아니냐는 말로 대답하셨지만 훗날 그분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교당 안으로 초대하여 더 근사하게 대접해드릴 걸하고 후회를 했었다. 빈소에서 국밥 한 그릇을 먹고 나서 봉하마을의 친환경국밥이 진짜 맛이 있었다. 나는 그 국밥을 '노무현표 국밥'이라 명명하여 추모의 날마다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봉하마을을 빠져 나오는 길에는 앞서 다녀간 국민들이 대통령의 마음을 밝히느라고 촛불을 밝히고 또 밝히며 꺼지지 않는 촛불행렬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누구 하나 지시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자발적으로 그렇게들 하고 있었다. 그래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서 갈망하는 평화의 불꽃이 꺼지지 않고 밝혀지고 있었다. 진실과 약자를 생각하는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점점 더 밝아지는 촛불! 이제 촛불은 지혜를 구하며 법당의 부처님께 정성을 바치는 불전도구라기보다 의롭고 진실하고 순수함을 찾으려는 언어의 표현이 되어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떠오르게 하는 빛이 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의 상념-

 밤 9시 30분 개골개골개골 개골 개골 개-골 개구리 가족들도 상주들처럼 울어댔다. 노무현 대통령이 마지막 정열을 쏟아 안분을 찾으시던 친환경논바닥에 모내기준비가 되어 있다며 개구리들은 구슬프게 장송곡을 연주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자연과 만나는 개구리 울음소리였다.

“당신은 영원한 나의 대통령”
“당신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 우리의 노짱입니다.”
“아주 떠나지는 말아요.”
 "이제 편히 쉬세요!”
 "행복했던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지키겠습니다.”
“당신은 가슴속의 대통령이었습니다.”
추모의 만장이 건물마다 거리마다 붙어 있고, 촛불이 밝혀진 길을 두고 돌아오며 도덕성 증오 도전정신 촛불과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생각하며 노무현 대통령이 순수하게 꿈꿨던 사람들이 있는 한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공감하며 수 많은 국민이 빈소를 다녀갈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대통령이 남기고간 작은 비석을 찾으며 억눌린 감정을 치유하고 꺽여진 꿈을 이르켜 새우려는 노란수건과 하얀 국화꽃과 촛불이 밝혀지는 성지순례의 행렬이 장관을 이룰 것이다.

 우리시대는 도덕성 있는 사람들에게 더 높고 더 지속적인 큰 도덕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비도덕인 사람들도 훈련과 연습을 통해서 도덕적인 사람으로 바꿀 수 있다. 페배당한 도덕성일지라도 절망의 도덕이 있어서는 안 된다. 분노는 있을지언정 상대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이 시점에서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는 그의 유서는 새로운 시대를 갈망한 도덕의 잣대라는 생각이 든다.

 새삼 수행자들이 자신을 살필 때 “공익심 없는 사람을 공익심 있는 사람으로 돌리자.”는 덕목이 귀한 말씀으로 떠오른다. 성현의 두 마음을 크게 빈 마음 크게 공변된 마음이라 하셨던가?

 -촛불의 주인-

 촛불은 불당의 부처님 것도, 어느 정치인의 것도, 어느 정당의 것도 아니다. 유모차를 타고 조문행열에 선 아이도, 걸음걸이가 불편한 장애우도, 얼굴 시커먼 어부도의 것도 아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면 성공하는 세상, 실력이 제일인 세상, 양심이 주인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변화가 요구될 때마다 사라지지 않고 드장하는 것이 꺼지지 않은 촛불이다. 촛불은 진실과 평화의 꿈을 찾는 양심의 불이다.

盧武鉉 前 大統領께서는 크게 의롭고 매우 순수하며 열정적으로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사랑하신 분이기에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청운의 꿈을 키워 법조인이 되었다. 늘 가난한 자와 눌린 자들의 편에 서서 억울함을 달래주고 핍박을 풀어주는 올곧은 인권변호사였다. 새로운 한국사회를 갈망하는 새 시대의 물결을 타고 대통령이 되어 우리사회에 만연된 권위의식을 깨고 지역과 계층간의 갈등을 푸는데 온힘을 쏟은 정치지도자였다. 그는 분단된 조국의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 반세기가 넘게 막혀 있던 휴전선을 걸어서 넘어 북한 지도자를 만난 평화운동가였다. 자연인이 되어 고향에 돌아온 뒤에는 환경운동에 남다른 관심을 가져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생태계를 복원하고 농촌을 살리는 운동에 앞장선 국민운동가로 살아온 분이기에 그를 그리워하고 그를 부러워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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