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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김상권
작성일 2009-05-28 (목) 17:56
ㆍ추천: 0  ㆍ조회: 2607      
삶이 흔적을 찾아서
삶의 흔적을 찾아서
          -문화유산 다시 보기(남원 편)(2)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김상권


실상사 답사를 마치고 다음 코스인 황산대첩비지(荒山大捷碑址)를 찾았다. 고려 말 이성계 장군이 왜구를 격퇴시킨 사실을 기록한 승첩비(勝捷碑)가 서있던 옛터다. 황산은 남원시 운봉면 동쪽에 자리 잡은 해발 700미터의 바위산이다. 이 산골짜기에서 벌어진 왜구와의 전투사실과 이성계의 전공이 기록된 비석이 바로 황산대첩비다. 이 승리가 조선을 개국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거라고 해설을 맡은 남원문화원 사무국장인 박찬용 씨가 설명해주었다.
이 비(碑)는 1577년(선조 10년)에 세워졌던 것으로 400여 년간 보존되어오다 1945년 1월 일제에 의해 폭파됐다. 그들의 더 비열한 짓은 비문)(碑文)의 글자를 알아보지 못하게 정으로 쪼아 버린 것이다. 이 비석을 어느 한 유생이 땅 속에 묻었는데 그것이 광복 이후에 발견되어 지금 파비각(破碑閣)에 보존하고 있다. 다섯 조각으로 쪼개진 채 누워있었다. 다행이 <용비어천가>에 그 원문이 있어 1972년에 원래 그 자리에 복원하였단다. 이 땅의 민족혼을 말살시키기 위해 저지른 악랄한 일본의 만행을 여기서도 엿볼 수 있었다. 역사는 속일 수도 감출 수도 없는 것인데 말이다.
비석은 보통 거북모양을 한 비석의 받침돌인 귀부(龜趺)와 비문을 새긴 빗돌인 비신(碑身)과 비(碑)머리에 용의 모양을 새긴 이수(螭首)로 나뉜다는 용어도 해설을 들은 뒤에야 알았다.
비전마을에 들르니 판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왕(歌王) 송홍록 생가와 무형문화재인 국창 박초월 생가도 들렀다. 이들이 살았던 비전마을은 명실 공히 판소리 동편제의 고장이다. 판소리를 빛나게 했으며 많은 제자를 길러낸 분들이다. 이분들은 세상을 떴지만 그들의 소리는 음반에 남아 영원히 보존될 것이다.
교룡산성에 올랐다. 남원지역에 남아 있는 30여개 산성 가운데 그 형태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성이다. 현재 약 3㎞ 정도가 남아 있는데 그 터와 형식으로 보아 백제시대에 쌓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원은 백제, 신라, 가야 3국이 국경을 마주하여 치열한 영토전쟁을 벌였던 곳이다. 박찬용 씨의 말에 따르면 남원지역의 산성은 공교롭게도 백제성 1/3, 신라성 1/3, 가야성 1/3씩이라고 한다. 또 어느 성벽은 제일 밑은 백제, 가운데는 가야, 제일 위는 신라가 쌓은 성벽도 있다고 했다. 성벽은 바로 민초들의 희생과 고통의 흔적이 아닐까.
교룡산성은 산성의 역할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을 안고 있는 곳이다. 이 성은 최재우가 은적암에 머물며 경전을 집필했던 곳이며, 동학군의 주둔 장소로도 이용됐던 장소였다.
남원시 대산면에 위치한 보물 제23호인 신계리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을 답사했다. 자연 바위에 한 면을 다듬어 새긴 부처의 앉은 모습이었다. 나는 그 크기와 아름다움에 반했다. 이제야 이 훌륭한 불상을 만나다니…….
복스러운 얼굴모양과 도톰한 볼, 그리고 입술이 생동감 있게 조각돼 있었다. 미소를 짓고 있는 입술은 특히 매력적이었다. 어깨는 자연스러우면서도 당당하게 딱 벌어졌고 가슴은 풍만했다. 스카프를 넘긴 듯한 표현은 다른 마애불에서는 볼 수없는 특이한 것이라고 이정원 양이 설명해 주었다. 나는 불상을 새긴 석공의 뛰어난 솜씨에 감탄했다.
마애불은 산 중심이나 정상에 새긴단다. 마애불은 기존의 불교에서 새 시대에 맞는 불교로 바뀌면서 새로운 시대사상을 백성에게 알리기 위해 새겼을 것이라 했다. 한편으로 마애불을 교통의 요지에 새겨 오가는 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뜻도 있었으리라.
10년 전부터 이 불상을 돌보고 있다는 스님의 말에 따르면 이 마애불은 전각 안에 있는 불상이었을 거라 추정했다. 이정원 양도 같은 말을 했다. 스님은 이 마애불은 경주의 석굴암 못지않게 훌륭한 국보급 불상인데도 너무 푸대접을 받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나는 이곳 마애불 주변을 비롯해 남원 지역에 흩어져 있는 정녕치, 노적봉, 호기리 등 13곳의 마애여래좌상을 친환경적으로 개발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다. 14곳의 마애불을 연계시켜 순례코스로 만들면 좋은 관광 상품이 될 성싶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번 <문화유산 다시 보기> 답사를 통해 불교문화에 겨우 눈을 떴다.
나는 조상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면서 그들의 숨결과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문화유산은 민초들의 혼과 땀으로 이루어내지 않았을까. 아직도 숨겨져 있는 보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지금 확인된 보물에 만족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울러 문화재로 지정된 보물을 아끼는 것은 물론 보존에 더욱 힘을 쏟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2009. 5. 14.)

* 마애불 : 암벽에 새긴 불상
* 여래 : 부처의 존칭, 석가모니여래의 준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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