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걸음질 치는 대한민국
뒷걸음질 치는 대한민국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재환
부슬부슬 보슬비 내리던 지난해 4월 26일 토요일, 그날을 나는 잊을 수 없습니다. 20여 분 간의 짧은 만남이 이승에서의 마지막이었음을 그때는 어찌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당신을 만나려고 20번 고속도로 중앙분리대를 뛰어넘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그런 일이 분명 있었습니다. 오늘 동무의 혼사에 참석 중 1번국도상 버스에서 당신이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알았습니다. 믿기지 않았습니다. 아니,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진정 그게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습니다. 오보(誤報)겠지 하면서 나 자신을 위로하며 내 귀에 맴도는 전파매체를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은 ‘잔인한 달’이 맞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5월은 어머니와 이별을 했었고, 박경리 선생과도 이별을 하더니만, 올해의 5월엔 당신과 이별하고 이렇게 허허롭게 보낼 줄이야 그 누군들 알았겠습니까.
20여년 넘게 줄곧 당신을 지켜보면서 애증이 없진 않았지만, 그만하면 개인적으로 훌륭한 사람이고 대통령으로서 직무수행능력을 높이 평가했었습니다. 유권자가 된 뒤 지금까지 선거로 당선된 6명의 대통령 가운데 내가 지지한 두 분 가운데 한 분이기도 하니까요. 그동안 남다른 애정을 갖고 지켜보아 왔었습니다.
올림픽이 있던 해 야당의 초선의원으로서 처음 만나, 나는 새도 떨어뜨리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안기부장 J, 현대총수 J, 3H 등을 거세게 몰아 부치며 ‘5공비리청문회’에서 보여준 용기와 정의감과 열정 때문에 나는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정치적 대부 K의 여야3당통합의 야합을 지켜보다 분연히 뛰쳐나온 당신은 참 멋진 사나이 이었습니다. 그 뒤로 정치적 고향 부산에서 이리 차이고 저리 밟히며 온갖 설움과 천대를 받으셨지요. 당신은 영남인들이 만든 동서 지역구도를 깨뜨리고 화합과 상생을 위한 혼자만의 고독한 몸부림이었지요. 안락하고 편안한 타협의 길을 버리고 고난과 역경의 가시밭길을 택한 당신만의 믿음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신은 진정 멋쟁이였습니다. 그게 발판이 되어 호남을 시발점으로 대통령에 당선되는 기적을 일구어냈습니다. 그러나 야3당과 조, 중, 동 등 기득권자와 부유층은 당신이 맡은 대통령직이 미덥지 못했던지 대통령을 탄핵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자존심 강한 당신으로서 얼마나 고통스럽고 자책이 컸겠습니까.
가난했던 당신은 젊은 시절 고뇌와 방황을 잘 이겨낸 승리자이었습니다. 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농협입사시험에 합격했더라면 평범한 은행원으로 순탄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두뇌가 명석한 당신은 마옥당(磨玉堂)에서 당호에 걸맞게 독학으로 큰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신분의 수직상승이자 출세의 지름길인 사법고시를 거뜬히 합격하는 괴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가난을 탈출할 수단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정직과 원칙이 살아 숨 쉬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하늘의 뜻, 운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잠깐의 판사법복을 훌훌히 벗어 던지고 인권변호사로 늘 힘없는 약자의 편에 서서 같이 울고 웃던 당신은 풍운아였습니다. 형 같고 큰 오빠 같고 친구 같은 소탈하고 격의 없는 대통령이었기에 더 친근감이 넘칩니다. 임기를 마치고 역대 대통령 중 처음으로 고향에 돌아가 고향 사람들과 농사를 지으며 막걸리 한 사발을 쭉 들이키던 촌놈 대통령, 소처럼 우직했던 바보 대통령, 그래서 우리 서민들은 당신을 서민 대통령이라며 사랑했었습니다. 투박한 말투와 외모, 세련되지 못했다며 여럿이 치고 차고 괴롭혔지요. 얼마나 서글프고 외로웠는지도 압니다. 대학공부를 안했다고 씹어대던 시집못간 기자출신 국회의원, 사상과 이념이 다르다고 불편부당한 말을 지껄이던 유명작가, 모두 다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미적거린 새만금 개발사업, 천정부지로 치솟은 아파트값은 당신이 피해갈 수 없는 책임질 일이었습니다.
당신을 추모하는 행렬은 전국 어느 곳이나 끝이 없습니다. 당신을 좋아했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분향소를 차리고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소나기를 맞으며 당신의 눈물인 양 함께 슬퍼하며 당신을 보내드리려 합니다. 당신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서울광장을 버스로 가로막고 무장경찰을 배치하여 조문하려는 시민의 접근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현 정부는 뭔가 뒤가 구리나 봅니다. 지난해 촛불시위에 지레 겁을 먹었을까요? 조문객인 시민들을 불편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질서유지를 하는 게 경찰 본연의 임무가 아닐까요? 그런데 바리게이트를 치는 일이 임무로 착각했나 봅니다. 그냥 가볍게 웃으세요. 웃어넘기세요. 그게 우리네 경찰들의 한계이고 현실입니다.
우리나라를 뒷걸음질 치게 끌어내리는 여당과 정부인사들, 당신이 밤잠을 못 이루고 가슴아파할 때 침묵으로 함구하던 일부 재야인사들이 조문도 못하고 쫓기듯 돌아갑니다. 진정 그들이 조문할 자격이나 조문할 진심이 있었을까요? 정부는 그들을 위하여 빈소를 만들고 그들만의 조문을 하게 합니다. 웃기는 일이지요. 이게 지금 우리나라의 참모습입니다.
차라리 사라져야 할 전직 대통령들은 살아남아 허튼소리를 내뱉는 이 세상이, 아니 우리나라가 싫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던 노짱 당신의 큰 뜻을 우리는 잘 압니다. 원칙과 정의가 실종된 사회에서 살기 싫어 이민을 꿈꾸기도 했었습니다.
검찰과 언론은 어떠합니까.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이승의 고향을 떠나 영원한 휴식에 들자 법무부장관은 기소중지를 했습니다. 진짜 이 정부는 코미디정부인 것 같습니다.
나는 ‘노사모, 멤버도 아닙니다. 오래전 모 후보가 대통령이 될 때까지 정치자금 후원회에 매달 급여의 5%씩 보내다 경찰의 내사를 받은 아픈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납니다. 내가 처음 유권자가 되어 대통령 투표를 하던 유신과 군정의 칼날이 시퍼렇던 군대시절, 공개투표나 다름없는 부재자투표는 가관이었지요. 국군의 통수권자를 찍지 않고 내 좋아하는 모 후보를 지지하다 괘씸죄에 걸려 한 달간 외출금지령에 발이 묶여 곤욕을 치르던 일들이 이제는 아련한 상처로 다가옵니다. 우리나라 검찰과 경찰은 힘센 사람에겐 약하고 힘없는 사람에겐 혹독하리만큼 엄한 것 같습니다. 현 정부와 여당, 그리고 재야에도 쓴 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서글플 뿐입니다. 이번에 반성과 참회를 많이 하겠지요. 보통사람이 소통하며 잘 사는 세상을 지향한 절반의 성공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습니다.
누가 당신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나요? 누가 당신을 그렇게 외롭고 쓸쓸하게 했나요? 마지막 선택의 길은 이 길뿐이었나요? 오늘밤 따라 소쩍새 한 쌍이 유난히 애달프게 울어댑니다.
당신은 자결한 이 나라의 첫 번째 대통령이 아니라 순교자입니다. 이차돈, 김대건, 이준, 민영환, 김주열, 광주시민등과 같이 국가와 민족, 종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성인입니다. 크나큰 희생과 피의 대가 없이 민주주의의 꽃은 피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당신은 위대합니다. 당신이 뿌려놓은 민주주의의 알찬 씨앗은 꼭 화려한 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힘없고 가난한 이 나라 민초들이 스스로 빈소를 만들고 당신과의 영원한 이별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결코 이별이 아닙니다. 그저 잠깐 헤어지는 작별일 따름입니다. 당신의 말처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일 뿐입니다.’ 부디 편한 세상으로 가시어 온갖 번뇌 다 잊으시고 당신이 그리도 목메게 그리던 세상,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소서. 꼭 그렇게 하소서!
2009/05/23(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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