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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최윤
작성일 2009-05-20 (수) 06:27
ㆍ추천: 0  ㆍ조회: 2500      
기다림에 대하여
기다림에 대하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최윤


다소 느긋해 보이는 외형과는 달리 난 성격이 급한 편이다. 무슨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단시간에 결과를 봐야한다. 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난 컵라면의 면이 다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해 덜 익은 라면의 맛에 익숙해져 버렸다. 또, 학창 시절엔 내가 앞으로 무엇이 될까, 또 누구와 결혼을 할지 몹시 궁금했다. 언젠가는 다가올 일이니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으면 됐을 터인데 미리 걱정하여 오히려 그르친 일도 많았다. 이렇듯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기다림’ 이다.

결혼을 하고서 난 ‘남편 기다리기’ 에 에너지를 쏟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나 싶지만 퇴근이 늦은 남편을, 하루 종일 주인을 기다리는 애완동물처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아마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늦은 내 성격 탓이었는지 바보 같이 그 막막하고 지겨운 일을 반복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지곤 한다. 그 뒤, 남편의 퇴근시간이 일정해졌을 때도 시간을 재면서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안절부절못하곤 했었다. 내가 태어나서 어떤 한 사람을 그토록 기다린 적은 처음이었다. 그 경험 뒤로 난 ‘기다림’에 대해서 더욱 싫어하게 되었고, 그 때의 경험으로 난 ‘기다림’하면 떠오르는 것이 두 가지가 생겼다.
첫째는 ‘망부석 설화’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어버렸다는 여인. 얼마나 애타게 기다렸으면 돌이 되어버렸을까 하고 벽에 기대 앉아 그 긴 하루를 보냈던 난 그 여인을 떠올렸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주인을 기다리는 애완동물의 마음이다. 하루 종일 바쁜 주인을 기다리는 그들, 하루 종일 주인의 발소리에 촉각을 세우며 기다리다 주인을 맞이하고 또 다시 하염없이 기다리는 애완동물의 마음이 나와 같을 것만 같았다.

2월 말, 내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어느 날 난 갑자기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렸다. 그동안 건강을 자신했던 탓으로 벌을 받았는지 몇 년 다닐 병원을 몇 달 만에 다 다녔다. 그러나 곤란한 것은 병원에 가도 확실한 병명이 없었다. 분명 몸에 이상이 있는데 딱히 병명을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것이 한의원이었다. 시간이 흐른 탓인지 아니면 좋은 선생님을 만난 탓인지 몰라도 몸은 예전보다 점점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갑자기 병이 심해지는 날이 있었고, 예전처럼 완벽하게 좋아지지 않아 불안하고 우울했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도 강조했지만 난 기다려야 함을 느꼈다. 내가 그동안 등한시 했던 건강은 서서히 쇠약해졌을 것이다. 내가 소중한 줄 모르고 버려두었던 건강을 되찾으려면 그만큼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성격이 급한 나는 처음에 뜸을 들이고, 부황을 뜨고, 침을 맞는 그 시간이 지루하고 왠지 서러워져 견딜 수가 없어 눈물까지 났다. 그러나 치료를 받으면서 난 수없이 되풀이해 생각한다. ‘기다려야 한다고’ 내게 찾아온 이 질병은 다독이고 돌봐주어야 낫는다고. 난 기약 없는 기다림을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기다린다는 것이 그렇게 지루하고 괴로운 일만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생떽쥐 베리의 소설 ‘어린왕자’에서 나오는 여우는,
“네가 매일 같은 시간에 오면 더 좋을 거야. 네가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기쁘고 설렐 거야. 기다리는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알게 되겠지.”
라고 말했다. 이처럼 기다린다는 것은 다가올 것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충분히 기쁜 일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 여류작가 에쿠니 가오리는
“기다리는 것은 힘들지만 기다리지 않는 시간보다 훨씬 행복하다.”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이젠 기다린다는 것에 관대해져야겠다는 마음이 다.
앞으로 내 미래엔 크고 작은 일이 즐비하게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타임머신을 만들어서 미리 미래로 갈 재주는 없으니 기다림이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난 그 기다리는 시간을 즐겁게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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