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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이순종
작성일 2009-05-18 (월) 13:53
ㆍ추천: 0  ㆍ조회: 2813      
씨 검사

                            씨 검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無空 이순종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임신이란다. 며칠 전부터 몸이 이상하다며 산부인과에 다녀오겠다고 했었다. 둘째아이를 낳자마자 누가 말릴세라 부리나케 비뇨기과에 가서 정관수술 한지 6년이나 지났는데 아내는 임신이란다.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나는 삶은 계란 노른자를 먹다가 컥컥대듯 마음 한 켠이 기어이 얹히고야 말았다. 아내는 처신에 떳떳하니까 병원에 다녀와서 나한테 알리는 것이겠지만, 예상치 못한 말을 듣는 나는 그야말로 전기 한 됫박을 먹은 듯 얼얼하기만 하였다. ‘설마, 설마……. 내 아내가 설마…….’ 온갖 별스런 상상을 다 해보았다.

“이 컵에다 받아오세요.”
간호사는 무심히 말한다.
“무얼 말이오. 오줌 말입니까?”
“정액 말이에요. 아저씨 정액.”
“아니 그걸 어찌 받는단 말이오?”
“화장실서 받아오세요.”
간호사는 정액 받는 게 무슨 오줌 받아오는 걸로 착각하는가 보다. 밸브만 돌리면 아무 때나 뿜어대는 수도꼭지인 줄 아는 모양이다. 이런 일에 이골이 난 직업인처럼 표정 하나 흔들림 없는 그녀의 기계적인 말투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미운 간호부’란 주요섭의 수필이 생각났다. 아이가 죽었는데 영안실에 있다고 외출 나갔다 온 아이의 엄마에게 사무적으로 내뱉던 그 간호부와 무에 다를 손가. 나는 모르긴 몰라도 얼굴이 달아올랐을 성싶다. 솔직히 나는 무지해서 이런 종류의 검사가 오줌 한 방울이면 내가 궁금한 모든 걸 알 수 있을 거라고 단순히 생각했다. 대개 임신 여부도 약국에서 파는 간단한 테스터기로 금방 확인할 수 있지 않던가. 추호도 이런 문답을 상상하지 못했다. 카랑카랑한 그녀의 말은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등 뒤가 따갑기만 하였지만 나는 돌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간호사에게 받은 비커를 손에 들고 고개를 숙이며 화장실로 힘없이 들어가야 했다. 마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러 가는 쥐 마냥…….

2칸 자리 좁은 화장실에 한 칸을 차지한 나는 변기통 위에 앉아 무언가 해야 한다. 반 평도 안 되는 이 공간에서 오만가지의 성(性)스러운 몹쓸 상상을 해야 한다.
꼭 이 짓을 해야 하는가 자괴도 되고, ‘이런 젠장할 과학’ 하면서 쌍스런 행위를 요구하는 현대의술이 형편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참으로 웃기는 짬뽕이다. 그렇다 해서 내팽개치고 가버릴 용기는 솔직히 없다. 나중에 후회할 성싶다. 딴엔 몹시도 궁금하기도 하고.
백팔번뇌를 억제하는 참선은 많이 해 보았어도 번뇌를 불러일으키는 참선은 처음이다. 한참인가 오만번뇌를 휘몰아대고 있는데 화장실 출입문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가 소변기에 소나기를 퍼붓고 나갔다. 내 심장이 마른 오징어 굽듯 오그라들고 만다. 그런가 하면 옆 칸 빈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누가 들어 온 모양이다. 덜컹대는 소리와 함께 담뱃불 붙이는 소리, 백문(魄門)을 통해 나오는 걸쭉한 소리 하며 심지어 헛기침 소리까지 들렸다.
‘우왕~ 숫제 울고 싶어졌다.’  
급기야 땀이 송알송알 맺힌 얼굴에 찬바람이 일었다. 바늘로 팽팽한 풍선을 찌른 듯 바람이 사르르 빠져버리고야 만다. ‘대체 이놈의 비뇨기과는 어쩌자고 이 따위로 사람을 형편없이 만드는가?’

들어가서 1시간 남짓 됐을 성싶다. 등줄기에 한 줄기 자한과 함께 희멀건 수액을 채취하는 데 성공했다. 과연 불광불급의 정신이로다. 스멀스멀 밤꽃 내음이 났다. 후들거리는 하체가 비실비실한 코미디언 같다. 몽롱하다. 갈증이 난다. 요구르트라도 한 모금 마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임신이 됐겠는데요. 이놈들이 꾸물꾸물 움직이는 게 보이는군요. 수술하고 풀릴 확률이 1,000명 중에 1명 정도입니다.”
젊은 의사는 신기한 걸 발견한 사람처럼 현미경에서 시선을 놓지 않고 말했다. 나의 귀에선 종소리가 울리고 해롱해롱하기만 하다. 의사의 목소리가 아득히 먼 곳에서 말하는 것 같았다.

위선의 나!
조금 전까지 아내를 믿지 못해 낑낑대던 팽팽한 긴장감이 허물어져 버린다. 최소한 나는 아니 그런 줄 알았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오탁한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 같이 매우 부끄러웠다. 기실 나는 과학이란 잣대로 검사를 빙자해서 아내의 정숙함을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형편없는 나!
따지고 보면 형편없는 병원이라고 탓할 일이 아니다. 정작 데데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내가 아닌가.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여 물증을 확인하고자 나의 씨 추출 노동(?)에도 유명 여배우의 나신(裸身)을 상상했으니 정작 외도는 내가 한 셈이다. 이런 나에게 병원 측의 지천한 대우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도와줄게요.’
우리 집에 하늘이 주신 귀염둥이 해든이가 벌써 네 살이 되어 노래를 곧잘 불러댄다. 내 가슴엔 꽃바람이 인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란 노랫말을 어린이집에서 바꾸어 배웠는지, 아니면 아빠의 노고(?)를 알고 자작했는지 모를 일이다.
                                 (2009.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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