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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송병운
ㆍ작성일	2009-04-09 (목)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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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전, 미안하오
중전, 미안하오
- 중종이 폐비 신 씨에게 보내는 편지 -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송병운

이승에 살 때는 하늘나라에 가면 중전을 만나 못다 한 사랑을 다시 나눌 수 있을 줄 알았소. 하지만 속세에서 인연을 끊은 사람은 이곳 하늘나라에 와서도 만날 수 없다고 하니 정말 안타깝소이다.

내가 이곳 하늘나라에 온지도 벌써 450여 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얼굴 한 번 못 보니 애달픔만 싸여가는구려. 오늘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은 속세에서 중전께 지었던 내 죄를 용서받고 싶어서라오. 물론 잘못을 빈다하여 중전의 섭섭함이 풀릴 리 없고 용서 받을 수도 없겠지만, 이렇게 변명이라도 하여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을 전해주고 싶을 뿐이라오.

형님이었던 연산군이 폭정을 하며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짓밟을 때 정말 두려웠었소. 당시에 나이 어린 이복동생이었던 나 진성대군은 아무런 일을 할 수 없었지요. 중전의 친정아버지 신수근은 나의 장인이었지만, 이미 형님의 처남으로서 막강한 권세를 누렸던 것으로 기억되오. 정말 가슴이 아팠던 것은 형님이 많은 사람을 죽일 때 직 ․ 간접적으로 관련이 되었던 것이지요. 어쩌면 중전도 나처럼 걱정이 많았을 것이오.

결국 염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말았습니다. 형님의 폭정을 견디지 못한 일부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켰지요. 역사서에서는 이 사건을 ‘중종반정’이라고 쓰고 있습디다. 반란세력들은 형님인 연산군을 왕위에서 쫒아내고 나이 어린 나를 왕위에 앉혔으니 우리의 불행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지요. 당시 우의정이었던 장인이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하였을 때 너무 두려워 당신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던 일이 생각나는 구려. 나의 뜻과는 상관없이 왕이 되었고 당신은 중전으로 책봉이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당신이나 내가 반정공신들 덕에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지요.

중전! 지금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어요. 왜 내가 왕위를 받아들였는지……. 만일 왕이 되지 않았다면 오늘의 이 아픔도 없었을 테니 말입니다. 장인을 죽인 반정공신들은 중전의 복수를 두려워했어요.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을지라도 시간이 흘러 왕권이 안정되면 중전께서 아버지를 죽인 무리들을 용서하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에 빠졌던 것이지요. 그리하여 그들은 중전을 책봉 여드레 만에 강제로 폐위시키고 궁궐 밖으로 쫒아냈던 것입니다. 못난 나는 왕위에서 밀려나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저항을 못하고 중전을 보내고 말았지요.

영국의 어느 왕은 사랑을 위해 왕의 자리를 버렸다는데 나는 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중전을 버렸으니 무슨 말로 용서를 빌어야 될지 모르겠소. 오히려 당신은 나를 위해 중전자리에서 폐위시켜달라고 울부짖었지요. 훗날 기회가 되면 다시 불러주면 될 것이 아니냐며 나를 설득했던 당신……. 나는 중전의 요구도, 반정세력들의 요구도 단호하게 거절했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힘들었다면 차라리 왕위에서 물러나 당신과 함께 멀리멀리 떠나야 했습니다. 훗날 반드시 궁궐로 부르겠다는 약속을 하며 보냈는데 그것이 당신과의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뒤에도 당신을 복위시킬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끝내 부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어제는 전라도 순창의 강천사에 다녀왔다오. 중전의 복위를 위해 목숨을 걸고 상소문을 올렸던 신하들의 영혼을 달래주고 싶었지요. 당시 담양부사였던 박상, 순창군수 김정, 무안현감 유옥은 폐위된 중전을 복위시켜야 하며 조강지처를 버리게 했던 반정세력들을 처벌해야 된다는 상소를 올렸었지요. 나는 그들의 충정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오히려 그 들을 관직에서 몰아내고 벌을 주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얼마나 한심한지 모르겠소. 그들 세 사람은 상소를 올리기 전에 소나무에 관인(官印)을 걸고 맹세하였다고 하더군요. 상소로 인해 관직을 박탈당하거나 죽게 될지라도 충정을 변치 말자는 뜻이었답니다. 지금은 관인을 걸었다는 그 곳에 삼인대(三印臺)라는 조그만 비각이 세워져 있더군요. 강천사 바로 앞에 있는데 이 절을 찾는 이들은 많았지만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아무 관심 없이 그냥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아니 죄 없는 중전을 버렸던 나를 비웃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중전! 하늘의 노여움이 풀려 중전을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지상에서 못 다한 사랑을 바치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고 나처럼 조강지처를 버리고 이 하늘나라에 와서 가슴아파하는 사람들이 다시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즈음 세상을 내려다보면 부부의 인연을 너무 쉽게 끊어버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을 나처럼 인간의 마음으로 끊으면 안 되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서로의 사랑을 소중하게 가꾸며 살다가 이곳에 와서도 오순도순 살아가는 부부를 보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오.

중전! 나를 용서해주시구려. 그리고 사랑하오.

단기 4342년 봄 中宗 이역(李懌)이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