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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채선심
ㆍ작성일	2008-06-22 (일)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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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눈물
행복한 눈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채선심

꿈에도 그리던 만학의 행복을 일구고자 내가 펜을 든 건 2006년 3월이었다. 그동안 틈틈이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들여다 보기는 했지만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응시하려고
전주 어느 학원에 입학해서 수강할 때는 가슴이 벅차기도 했지만 긴장되기도 했었다.

그날을 대비해서 막내 아들이 대학학습 중반쯤 접어들 무렵인 2001년도에 자동차 운전면허증도 따 두었고, 아이들이 공부할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전자사전과 녹음기 등 모든것이 갖추어졌다고 생각했는데 학습에 임하고보니 빠진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아이들과 아이들 친구들이 다투어 학용품과 참고서를 사오는 바람에 아직도 학용품은 많이 남아 있다.

입학 전날밤에는 잠이 오지않았다. 그리고 각오도 야무졌다. 어릴 때처럼 공부도 잘하리라고. 50여년 전 국민학교 입학 전날밤과 조금도 다름없는 설렘이었다. 나의 짝꿍에대한 기대, 담님에 대한 상상 등, 여러가지 생각으로 가슴이 설레고 꿈만 같던 그날밤이 가고 드디어 입학식날 아침이 왔다.

조금 늦게 도착해서 교실에 들어섰는데 교실이 좁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놀랐다. 어린 학생들은 없고 모두가 성인들이었다. 배움에 한을 품은 사람들이라는데 서로 공감이 갔다. 겨우 빈 자리를 찾아 미처 자리에 앉지도 않았는데,
"채선심 님 앞으로 나오세요."
하고 담님으로 추측되는 강사가 불렀다. 아직은 생면부지인데 무었 때문일까 의아해 했다.
"내가 채선심인데요."
"그렇습니까? 학원장님에게 해야할 선서 예행연습을 하려고요."
담님강사가 원장이 되고 나는 학생이 되어 오른손을 들고 입학식 때 있을 학생으로서의
선서 예행연습을 끝마쳤다.
"(중략)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다할 것을 선서합니다. 채 선 심!"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수십 년 간 가슴에 맺힌 한의 응어리가 학생선서를 통해 눈물로 흘러나왔으리라. 그날 이후로 나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아직도 건재하다고 자부했던 나의 기억력에 이상이 있음을 알았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암기를 해보니 나의 뇌가 쇠퇴되어 가는 걸 알 수 있었다. 슬펐다. 빛을 발해보지도 못하고 시들어 가는 나의 뇌세포들. 특히 단어보다 숙어가 나를 힘들게 했다. 밤새 외워도 아침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3개월이 지나면서 좀 나아지기 시작했다.
"크고 큰 나무라도 다듬어야 쓰이고 목걸이 보배라도 갈아야만 빛나네."
머리도 쓰지 않으면 녹이 스는 모양이었다. 들에서 일을 할 때는 단어와 숙어를 외우려고 옷깃에다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고, 입을 한시도 닫아놓은 일이 없었으며, 남편과의 대화도 소원해졌다.

직업이 농업인지라 농번기 두어 달은 학원도 나가지 못했는데 가급적이면 그날 배운 건 반원에게 전화로라도 확인하고 넘어가려 애썼다. '주경야독' 끝에 드디어 검정고시 날짜가 다가왔다.
2007년 4월 15일, 서신중학교 13고사장에서 치른 시험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수험번호 0000을 들고 찾아가서 앉은 내 자리는 남쪽 창 바로 옆이었다.

첫째시간은 국어시험시간이었는데 3명의 감독관의 감시 아래 곁눈질도 할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고 시험지를 뒤집는 소리만이 바스락 바스락 들렸다. 나도 그들도 진지한 표정들이었다. 나이가 어린 층일수록 더 긴장한 모습들이었고, 담담하고 태연하게 문제들을 풀어 나가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 만학도들이 더 열심히 공부를 했던 것 같았다.

작성한 답안지를 걷어가면서 감독관이 힘이 되는 한마디를 건네 주었다.
"국어 만점 나오겠는데요? 정말로 존경스럽습니다. 그 연세에 공부할 생각을 다 하시고요."
나도 대답했다.
"감사 합니다. 나는 오늘을 위해서 산 사람인데요."
그 고사장에서는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았다.

이어서 치러진 전 과목들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다른 과목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해했던 영어가 예상보다 어려워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시험이 끝나 나오는데 각 학원에서 나온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학원에서 나누어 주는 정답지로 바로 채점을 해봤더니 결과는 만족은 아니지만 비교적 괜찮은 점수로 통과되었다. 만점 나오겠다던 국어는 2문제나 틀렸었다. 그리고 얼마 뒤 내 손으로 합격을 확인하고 싶어서 전라북도 교육청으로 합격증을 떼러 갔었다. 거기에는 여러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처럼 성급히 합격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내 차례가 왔다. 합격증을 받아 들고 확인하는 순간, 몸에는 전율이 흘렀다.
"위 사람은 2007년 4월 15일 고등학교졸업 학력검정고시에 전 과목 합격하였음을 증명합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그것도 설음과 고통이 아닌 기쁨과 행복의 눈물이었다. 누가 이처럼 행복한 눈물을 흘려 보았으랴?

가로 30쎈티 세로 25쎈티 정도의 종이 한 장이 오래도록 나를 눈물 젖게 했다. 주위의 시선도 개의치 않았다. 내가 오늘을 위해 흘렸던 긴 세월의 많은 눈물만큼이나 흘리고 싶었다. 나의 눈물에 동감이었는지 덩달아 흘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합격증을 떼러 온 사람 중에는 나 같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내 지난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얀 카라의 교복입은 여학생이 부러워 동그마니 숨어 앉아 그들의 등하교길을 훔쳐 보며 눈물 짖던 일, 진학 이야기를 목구멍 안에서 머뭇거리다 아버님이 두 눈을 부릅뜨시고 야단치던 일,뒷방에서 눈물로 보내던 긴 세월, 상급학교에 진학하고 거드름을 피우던 그의 조소! 순간 아버님도 나타나셨다. 웃지도 않고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하시며 오래오래 굳은 표정으로 서 계시다 사라지신 아버님! 아직도 나의 바깥 출입을 못 마땅해 하신 것일까? 지금은 안심하셔도 될 텐데. 아버님께서는 나의 강한 집념을 못마땅해 하셨으리라. 그리고 대학강당과 문학도 또 스쳐 지나갔다.

이제 대학에 갈 수 있는 길은 놓쳤지만 대학에서 수강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도 잘 안다. 틈나는 대로 더 공부해서 대학에 간다면 꼭 문학공부를 할 것이다. 그리고 더 크게 행복한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노력하리라.

(2008.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