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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김금례
작성일 2009-03-01 (일) 06:39
ㆍ추천: 0  ㆍ조회: 2038      
명동의 기적
명동의 기적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금례


 금욕과 금식을 해야 하는 사순시기가 시작되는 제의 수요일이다. 신부님은 미사를 통하여 신자들의 머리에 제를 뿌려주셨다. 사람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김수환(金壽煥) 추기경님은 2009년 오후 6시 12분,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란 말을 남기고 선종하셨다.
TV에서는 자막방송을 통하여 선종소식을 알려주었다. 눈을 비비며 크게 뜨고 보았으나 그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평화방송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생각 같아선 금세 달려가고 싶었지만 거리가 멀기에 마음뿐이었다. 스테파노 신부님의 시신은 성모병원에 안구를 기증하시고 하얀 포에 덮여 명동성당에 모셔졌다. 유리관 속에 안치되면서 모두 분주하게 움직였다.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명동성당을 찾은 조문객의 행렬은 삽시간에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다. 3Km 넘는 줄을 만들고, 영하 9도까지 내려간 눈보라치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 시간을 기다리며 앞 사람의 등을 두드려주며 추위에 언 손을 입김으로 불어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방에서 지켜만 보아야 하는 내 모습이 미웠다.  
조문객 행렬에는 지역과 나이, 정치인, 경제인, 노동자, 있는 지와 없는 자, 모두 한마음으로 40만 추모객이 김수환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을 2∼3초만이라도 보고자 모여 들었다. 명동의 기적이었다.
하느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보냈듯이 예수님은 김수환 추기경님을 우리에게 보내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는 듯했다.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은 볼을 적시고 있다. 예수님의 삶은 십자가였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하시면서 김 추기경님은 하느님의 삶을 그대로 사셨다. 항상 병든 자, 가난한 자, 약한 자와 함께 했으며 장애인, 빈민, 민주투사의 등판이었다. 가짐과 누림에 젖은 세상에서 나눔과 베풂의 길을 여셨다. 산업화시대에는 소외된 노동자 편에, 때로는 불의와 부정에 맞서 정의를 말씀하고 행동하셨다. 명동성당 앞에서 경찰과의 대립 속에 농성하는 학생의 피난처 역할을 하며 민주화로 열망할 때…….
“교회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 안 세상을 위해 있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1922년 대구에서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김보현(요안)은 1868년 무진박해 때 순교할 만큼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 김명석(요셉)을 여읜 김 추기경님은 순교자집안 후손답게 어머니 서중화(마르다나)의 권유에 따라 형 김동환(가롤로)과 함께 성직자의 길을 결심했다고 한다. 김 추기경님은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장사꾼이 되어 장가도 가고 어머니께 효도도 하고 싶었다.”
고 실토했다. 서른 살이 되면 어머니께 인삼을 사드리겠다고 했었다. 그 꿈은 장사꾼이 아닌 성직자가 되어 사드렸다는 것을 보아도 김 추기경님은 효자임을 알 수 있다. 일본 유학과 학병을 거쳐 한국전쟁이 한창때인 1951년 사제서품을 받고 안동 천주교회 주임신부로 사목생활을 시작했다. 1968년 주교가 되면서 서울대교구장으로 취임했고, 이듬해인 1969년 한국 최초로 추기경에 서임됐다. 당시 47세로 전 세계 추기경 가운데서 가장 젊었다. 그렇지만 항상 낮은 자리에 섰으며,
“주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1998년 나라에서 외환위기를 극복하려고 금 모으기 운동을 할 때 김 추기경님은 금 십자가를 내 놓았다. 옆에 있던 조계종 총무원장 송월주 스님이,
“성물인 십자가를 내 놓아야 되느냐?”
고 묻자 김 추기경님은
“예수님은 세상을 구하려고 몸을 바쳤는데 나라를 구하는 일에 금 십자가를 내 놓는 것은 당연한 일.”
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나라를 사랑하는 진솔한 마음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는 경제위기의 끝이 어딘지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다. 생활은 갈수록 어렵다고 한다. 이제  정치인, 경제인, 노동자, 우리 모두 김수환 추기경님의 뜻을 받들어 사랑과 나눔의 정신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스스로 사목생활은 60점짜리라고 평했던 김 추기경님은 2004년 펴낸 자서전에서
“사랑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면서도 진정한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점이 후회스럽다. 좀 더 몸을 낮추고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었어야 하는데……. 부족한 점이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라고 회고했다. 김수환 추기경님과의 만남은 지금 생각하니 큰 행운이었다. 남편 직장을 따라 서울로 갔을 때 물어물어 명동성당을 찾아가서 감사기도를 하고 있었다. 신부님은 나에게 다가와
“어느 본당에서 왔지요?”
“전주에서 왔어요!”
고개를 갸우뚱 하시기에
“비빔밥으로 유명한 전주요.”
했더니 빙그레 웃으시던 모습이 마치 천진한 아이 같았다. 나는 본당 주임신부님인 줄 알았다. 어느 자매님 한 분이 귓속말로 나에게 김수환 추기경님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다시 뒤돌아보니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셨다. 그 뒤로는 TV서만 뵐 수 있었다. 그때 악수를 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스스로 자신을 혜화동 할아버지라고 했다. 후임자에 대한 배려하는 마음일 것이다. 운전을 배워 여행을 다니리라 생각했지만 은퇴 뒤 더 바빴다. 강연·미사집전·인터뷰 요청이 밀려왔다. 취미인 월 1회 산행도 접어야 했다. 김 추기경님은 병석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겠으니 생명을 연장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김 추기경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말이 아닌 실천으로 사랑하십시오.”
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두 눈도 이웃에게 주시고 떠났다. 소경에게 눈을 뜨게 해주시고 사랑과 평화의 사도로 사랑의 의미를 깨eke게 해 주셨다. 김 추기경님의 삶은 나라의 스승이요, 아버지 목자로서 예언자의 삶을 사셨다.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고 우리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쉴 것이다.
5일 동안 명동 성당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2월 20일 성당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신자들의 흐느끼는 소리를 뒤로 김 추기경님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라는 주님의 말씀을 남기고 경기도 용인의 성직자 묘역에 묻히셨다. 지금은 사순절이다. 나는 사랑이란 이름에 집착할 뿐 사랑 때문에 아파하지 않았다.
“사랑하십시오. 나는 그동안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면서 사세요. 주님의 사랑에 머물 때 벅찬 감동에 빠지게 됩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인내를 가르쳐 주고 겸손한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이러한 깊은 뜻을 받들어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명동의 기적은 영원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2009년 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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