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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임종우
작성일 2009-02-26 (목) 19:04
ㆍ추천: 0  ㆍ조회: 2523      
고향집
고 향 집
                     전주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임종우

                                                                                                                                           

 내 고향은 진안군 정천면이다. 고향을 떠나온지 벌써 십여 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오늘은 날씨가 포근하니 봄이 완연하다. 봄바람 따라 고향길을 찾아 나섰다. 차를 달려 정천면 갈용교 부근에 세워진 '신기마을 망향비' 앞에 이르럿다. 우리가 고향을 떠나올 때 세웠던 비석이다. 우리의 고향산천은 용담댐 물속에 잠겼다!

운장산 명덕봉의 한 줄기인 국사봉 아래 남산쏘 기슭의 쪽바우들 장평리에서 농사를 짓던 나주임씨, 성주이씨, 청주한씨, 은진송씨들이 1830년 이곳에 자리를 잡은 뒤 조.김.최.신.백.설.천.박.장.양씨 등이 계속 이곳에 입주하여 샛터라 칭하고 대대손손 동중계를 조직하여 화합하고 단결하며 살아왔다. 신기마을 동쪽에는 정천중학교와 갈용교, 갈두마을이 있고, 동남쪽에는 마을동산과 신들 소지기, 서쪽에는 구렁논 건너 농산 호학조림마을과 마이산 줄기로 이어진 옥녀봉이 우뚝 솟아 있다. 남쪽으로는 대야평을 지나 유유히 흐르는 금강 상류 정자천을 건너 안산쌍봉이 있고, 북쪽으로는 정천초등학교와 교동마을이 자리잡고 있었다. 대평야 수원으로 한배미, 홈건너, 물방아, 가남정이, 어사리 봇물로 농사를 짓던 옥답이 삶의 터전이었다. 갈거리 안골과 구봉산에서 흘러 정자천에 합류하는 곳엔 구렁이바위와 꺾지바위도 있어 목욕하고 천렵하던 곳이었다. 중학교 앞 노송과 느티나무 아래 독선거리 옆에 팔각정자를 지어 놓고 벼농사와 인삼농사 이야기꽃을 피우던 우리 고향이었다. 길이 길이 뿌리 내린 조상의 인보상조정신을 받들어 희로애락을 같이하며 살던 우리 신기마을은 1991년 12월 16일 용담댐 건설계획이 고시되어 2000년에 실향의 아픔을 가슴에 묻고 새 터전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이제 수몰된 고향에대한 애환과 푸른 꿈을 이 망향비에 새겨 세웠다.

글쓴이  임종우  2001년 (신사) 8월 신기마을 망향비 건립추진위원회 수립

비석을 한 자 한 자 읽어 가면서 옛날 추억을 되새기노라니 나도 모르게 눈물과 한숨이 나왔다. 모두들 잘 있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여기에다 망향의 비를 세워 놓고 약간의 자금을 조성해서 1년에 두 차례 서로 만남의 자리를 마련한지 몇 년 된다. 몸은 떠나있으나 고향에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떠나지 않았다.

이곳은 우리들이 자라고 배웠던 정천초등학교다. 이 학교는 1832년 9월에 개교하여1998년 74회로 2.715명의졸업생을 배출했으며 나는 이 학교 27회 졸업생으로 졸업생 수를 제일 많이 배출하였다. 학교 운동장이 쑥대밭이 되어 있으며 그처럼 넓은 운동장이 지금 지나면서 보니 너무나도 좁아 보였다. 여기에 관상수와 벗나무들은 흔적도 없다.

우리 집에 들렀다. 전 같으면 대문으로 찾아들었겠지만 이제 대문이 무슨 소용이랴! 쉬운대로 학교에서 내려 뒷담이 있던 곳으로 내려왔다. 우리 집은 신기마을에서 중간 고샅길에 있었다. 마당에 들어서면 감나무가 17주나 주위에 있고, 밤나무도 5주가 집뒤에 있었으며, 그 외에 대추나무와 호도나무가 있는가 하면 대밭도 조성되어 있었고, 뒤쪽에는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막았다. 이 안에다 1970년에 새로 지었던 집이 우리 가족의 보금 자리였다. 이곳에서 딸 다섯에 아들 하나 등 6남매를 길렀으며 요즈음처럼 과외공부를 아니하고도 잘만 컸었다.

이웃에는 내외간이 청각장애자인 윤식이가 살았는데 손짓 발짓 다 동원하고 연필로 써가면서 의사소통을 해야 했었다. 마음만은 천사여서 어려운 일은 마다하지 않고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았다. 아랫집에는 양문재라고 우리 일을 마다않고 열심히 농사일을 해주어서 농사를 짓는데 별로 어려움없이 생활하던 생각이 났다. 윗머리 행랑채에는 축사로 돼지와 소, 닭을 길렀으며 아래 구석에는 옹달샘이 있어 다섯 집이 같이 사용하면서 생활했던 곳이다. 이곳저곳 물에 잠겼던 곳이나마 옛날 생각을 하면서 집을 둘러보고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후일 땜에 물이 차기 전에 다시 와야겠다고 마음먹고 석양을 바라보며 전주로 차를 달렸다.

                            (2009. 2. 25.)








   
***林 鍾 宇*임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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