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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정장영
작성일 2009-02-21 (토) 06:56
ㆍ추천: 0  ㆍ조회: 2224      
서당골
서당골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내 고향마을에는 서당골과 절골이란 곳이 있다. 틀림없이 서당과 절이 있었기에 이런 지명이 생겼을 것 같다. 서당골은 주위가 낮은 산으로 둘러싸여 매우 조용하고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하고 아늑한 곳이다. 이제 흔적은 없으나 이곳의 옛날을 상상하면 학동들이 낭랑한 목소리로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이 든 분들께 여쭈어보았으나 자세히 아는 이는 없고 땅이름만 전해 온다는 것이었다. 비단 이곳뿐 아니라 곳곳에 ‘서당터’니 ‘서당재’니 ‘서당고개’ 등 서당이란 말이 붙은 곳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서당이 많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우리나라 서당의 기원은 고구려의 경당(扃堂)이 그 시초다. 경당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태학(지금의 대학)에 들어가기 전 초등과정을 가르치던 사립교육기관이다. 통일신라에서도 기초교육은 서당에서 담당했으며 과거를 시행한 고려 때도 사숙(私塾)과 함께 서당이 활발하게 운영되었다. 잦은 외침과 변란으로 백성의 교육을 나라에서 담당키 어려웠던 시기였다. 서당의 역사가 천 년 이상이나 되다보니 마을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한 언제 이곳에서 서당이 성행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조선시대에서도 서당은 성균관이나 향교에 들어가기 전 기초교육을 담당했다. 조선조 중엽부터는 또 서원이 생겨났다. 서원은 서당과 향교의 기능을 흡수하여 대학과 중용, 논어, 주역까지도 가르쳤다. 서원이 없는 곳에서는 서당이 있었다. 훈장은 고장의 선비나 낙향한 선비들이 대부분이어서 높은 학문을 익힐 수 있었으나 파벌을 만들어 붕당을 일삼는 폐해와 민폐를 가져온다하여 서원철폐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근세 개화기를 거치면서 서당 대신 근대식 학교교육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왜놈들의 침략 수단이라고 오해를 받아 선각자(先覺者)들의 자제(子弟)를 제외하고는 학교 보내기를 꺼렸고, 고집스레 반촌(班村) 민촌 할 것 없이 서당이 성행하였다. 한때 향리(鄕吏) 자녀들이 주로 학교를 다녔던 때도 있었다.
조선총독부 통치하에서도 민족적 저항으로 서당이 이어져 오다 강력한 일제의 내선일체(內鮮一體)정책과 탄압으로 완전 철폐되었다. 나의 조부님께서는 구한말(舊韓末) 서당훈장으로 고장사람들로부터 지강(芝崗)선생님으로 불리었다니 조손(祖孫)이 교육에 종사한 셈이다.
광복 직후 잠시나마 고향마을에도 서당이 부활되었다. 그곳에서 1년 동안 머물 때 한문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글 읽는 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지니 마치 전해 내려온 서당골이 마을 복판으로 옮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훈장은 한학에 조예(造詣)가 깊으신 동네 어르신이 봉사적으로 맡으셨다. 학동들은 십 명 안팎이었고 나이 차이도 많았다. 글방은 어르신 사랑방이어서 잠도 같이 잤다. 학습출발이 모두 다르니 저마다 배우는 책도 달랐다. 명심보감이나 자치통감을 배우는 학동도 있었으나 나는 천자문부터 시작했다. 수업시간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15~16시간에 이르렀다. 하루 일과는 아침에 한 시간 정도 책을 읽은 뒤 아침식사 그리고 오전공부, 오후공부, 밤공부는 10시경까지 계속되었다. 수업자세는 앉은 자세에서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큰소리로 책을 읽고 외우는 독송(讀誦)과 암송(暗誦)이 주를 이루었다. 글씨쓰기는 선생님으로부터 개별적으로 지도를 받은 뒤 쓰기 시작했다. 이를 ‘체 받는다’고들 했다. 글씨공부는 빼놓을 수 없는 일과로 각자 자율적으로 했다. 교육과정은 관습적으로 천자문, 사자소학, 추구 등을 배우고 명심보감을 능력에 따라 배운다. 이 과정에서 시구(詩句)를 이해하고 문장을 해석하는 능력을 기른다고 한다. 소학과 통감을 배워 학문에 눈을 뜨게 되면 서당공부를 대략 마치게 되지만 4서 5경은 매우 깊은 학문과정이었다. 서당에서는 한 권의 책을 배우고 시험을 보는데 이를 강(講)이라고 했다. 강은 암송, 문장의 해석정도, 글쓰기를 두루 시험한다. 강을 통과하면 책을 뗐다고 하며 다음단계를 공부하고 통과하지 못하면 완벽하게 익힐 때까지 복습한 뒤 다시 강을 받는다. 한 권의 강이 통과되면 책거리를 준비해야 한다. 책거리는 시루떡을 만들어 와서 나누어 먹었다. 그 기쁨과 맛은 매우 상쾌할 수밖에 없었다.
서당공부에 빼놓을 수 없는 단자(單子)놀이가 있다. 밤이 깊어가 학동들의 배가 출출할 때, 동네 안의 기제(忌祭)나 대사가 있는 집에 ‘인사말과 학동의 수, 바라는 품목’ 등을 쓴 단자를 보내면 푸짐한 밤참거리가 도착한다. 그 음식을 오순도순 나누어먹는 재미는 참으로 잊히지 않는 추억이다.
나는 늦게 시작했으나 사자소학까지 마칠 수 있었다. 몇몇 학동들은 계속 한문공부를 계속하였다. 나는 일본에서 귀국하여 한글을 어느 정도 해득하여 정규교육을 받아야한다는 생각에서 평생 교직생활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짧은 기간이나마 한자공부를 했으니 계속되는 학창생활과 자학자습에 많은 도움이 되었음은 두말 나위가 없었다. 되 글을 배워 말글로 쓴 셈이었다. 농경사회에 시절 서당공부는 과거에 응시할 일부 선비뿐만 아니라 교양인으로서 필수적인 학습이었다. 산업사회에서는 학교교육이 교양인보다 필수적 직업준비교육으로 변했다. 정보사회에 접어들어 고등교육을 마치고도 취업하기 쉽지 않으니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했다. 이제 치열한 경쟁사회라 남다른 특기와 새 기술이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고향을 찾아도 그 시절의 학동들은 거의 이승을 떠났고, 귀에 익었던 삼희성(三喜聲)을 들을 수 없다. 줄어가는 농촌인구에 늘어 가는 폐교 터는 서당골과 같이 훗날 전설이 될 게 분명하다. 그리고 천 년을 잠들어 온 서당골은 더욱 적막해질 것이다.
                       (2009. 2. 13.)

※삼희성(三喜聲): ⑴ 애 우는 소리  ⑵ 다듬이 소리 ⑶ 글 읽는 소리
※내선일체:       내는 일본 본토, 선은 조선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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