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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정원정
작성일 2008-10-19 (일) 07:02
홈페이지 http://blog.daum.net/crane43
ㆍ추천: 0  ㆍ조회: 3052      
안계희 언니께
안 계 희 언니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정원정



깊어 가는 가을입니다. 누군가에게 가슴 속에 담아 두었던 사연을 구구절절 쓰고 싶은 계절입니다. 모처럼 언니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 편지가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하는 주책없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왜냐구요?  언니가 여든 여섯 살, 내가 여든 살이지 않아요? 앞으로의 미지의 세월을 어찌 점칠 수가 있겠습니까. 앞으로 또 편지 쓸 날이 그리 많겠습니까. 난  언니의 생을 소재 삼아 언젠가 글 한 편 쓰고 싶었습니다. 허투루 살지 않은 언니의 삶을 적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언니는 충청도 어느 양가(良家)에서 태어나 그 시절 서울에서 유치원도 다니고 배화여중까지 나오셨지요. 언니의 친정은 시골 그 고을에서 십 리 안팎에 언니네 땅 아닌 데가 없었다면서요? 친정아버님은 교육에도 뜻이 있어 학교도 세우신  유지이셨구요. 좋은 집안에서 결혼을 서둘 것이 없었는데도 애꿎게도 그 시절 정신대 차출이 무서워 결혼을 하셨다면서요?  결혼한 시댁은 푼푼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장래가 촉망 받는 의사인 신랑을 만나 두 남매를 낳고 오붓하게 사셨다지요.
 핏빛으로 물들었던 육이오만 아니었어도 언니는 누구 부럽지 않으셨을 텐데요. 믿음직스러운 낭군님을 잃고 언니의 험한 고생길이 시작되었다지요? 남에게 손 벌릴 성미도 아니고 홀로 빈손이 되어 얼마나 서럽고 억장이 무너졌을까요? 친정도 그때는 이미 가산이 기운 처지고, 하다못해 처음에는 봇짐장사도 해 보셨다지요? 그래도 공부한 게 있어서 용케 교회 전도 일을 보시다가 신학대학에 입학하셨지요. 고학을 하는 중에도 교수님의 배려로 해외 장학금도 받아 어렵사리 만학의 꿈을 이루신 것은 정말 장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아이 둘을 데리고 공부한다는 게 어디 쉬웠겠습니까?  더욱이  궁핍한 시대에 말입니다.
 졸업하고 교회 전도사로 재직하면서 몸이 닳도록 정성을 쏟아 일하셨을 것입니다. 남의 어려움을 보고 그대로 넘기지 못하는 올곧은 성격으로 보아 많은 이들을 싸 안았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그러기에 언니는 비록 가진 것은 없어도 그때도 그러셨겠지만 언제나  당당하십니다.


언니는 쉰 살이 되던 해부터 ‘베다니 집’(은퇴 여교역자 쉼터)의 원장으로 재직하면서도 여전히 안팎으로 일을 도맡아 하셨지요. 남자가 해야 할 밭일까지 도맡아 하실 적에 그때의 언니 손은 나무꾼 손 같았습니다. 그 시절에 난 언니를 만나게 되었지요. 첫인상은 당당하고 거침없이 시원시원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언니는 저와는 신학대학 선후배 관계였어요.    나는 24살에 학교를 졸업했고 언니는 훨씬 뒤에 나왔으니 학번으로 치자면 제가 선배 격이었습니다. 내 집에서 어느 목사님이 기숙하며 병을 치료 받고 있을 때였지요. 그때 병문안을 온 언니와 처음으로 대면했습니다. 그리고 ‘베다니 집’의 소식도 처음으로 들었고요. ‘베다니 집’에 냉장고가 없다는 것 말입니다. 평생 교회를 위해 봉사하신 분들이 말년에 쉬고 있는 집에 냉장고가 없다니 나는 누구에겐가  미안 했습니다. 그때 내 집에는 냉장고가 크지는 않았지만  두 대가 있었거든요. 마음이 편치를 않았습니다. 남편과 의논해서 한 대를 ‘베다니 집’에 주기로 했지요. 며칠 뒤에 그 냉장고를 직접 언니가 사람을 데리고 와서 가지고 가면서 헌 것을 주겠거니 했는데 새것이나 진배없는 것을 내 놓았노라고  가끔 두고두고 자랑하셨지요. 크게 칭찬 받을 일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그 때가 한 30년 전쯤 일이라서 지금은 옛이야기가 되었네요.  

은퇴 뒤에도 언니는 교회 장로 자리에서 참 화끈하게 봉사를 하셨습니다. ‘베다니 집‘에 있을 때부터 은퇴 뒤까지 시퍼렇게 서슬이 선 군사독재 시절이었지요. 많은 학생들이 감옥으로 줄줄이 들어 갈 때 옥바라지도 끊임없이 하셨습니다. 문익환 목사가 끄덕하면 감옥에 가 있을 적에 참 많이 뛰어 다니셨지요. 기장여신도회원들과 함께 양심수들의 뒷바라지를 한 내력이야 이루 다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언젠가는 현상금이 붙은 학생을 집에 숨겨 두었다가 발각되어 곤욕을 치르셨지요. 무시무시한 군사독재 시절 수배자를 숨겨줄 용기를 아무도 가질 수 없을 때 아닙니까? 정말 목을 내걸고 실행한 용기였을 것입니다.  

지금도 언니는 남을 돕는 일이라면 앞장 서는 성미시지요. 어제도 저한테 전화 주셨지요.
“어제 경향신문에서 기사를 보았는데 아프리카에서는 아이들이 출생해도 반은 죽어간대.  낮과 밤의 온도차가 심해서 신생아가 적응을 못해 폐렴 아니면 설사로 1년이면 그쪽 어느 나라에선 1년에 400여명이나 죽어간다고 하니. 어쩌겠니. 모른 척할 수 없지 않느냐. 신문사에 계좌 번호를 알아봤다. 나도 한 십만 원 보낼까 해서…….”
이런 내용이었지요. 언니 서두 이야기 들으면 뻔히 무슨 이야긴 줄 알아요. 내게 기부하라는 전화인 걸요. 그런 건 아무에게나 할 수 없어 만만한 게 정원정이여서 먼저 전화하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언니 전화 들으면 척하면 알지요. 선뜻 저도 언니 하는 일에 동참 하겠다고 했지요. 먼저도 북한 어린이를 돕는 일에 주변사람을 다 동원시켜서 꽤 큰 액수를 기부하게 하셨잖아요? 그럴 적마다 언니는 솔선수범, 액수도 많이 하시지요. 수입이 있으신 것도 아닌데, 자녀분들이 얼마씩 드리는 용돈을 몽땅 내놓으시는 것 같아요. 그러시지요? 언니의 삶이 남에게 진정성을 보이니 주변 사람들이 언니 하자는 일에 동조를 하는 겁니다.  언니는 나이를 드셨지만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으십니다. 성금을 갹출하는, 아무나 못하지 않아요?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 말고는 남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언니! 지금 나는 붓 가는 대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가을 햇살이 앞마당에 가득 내려앉고 있네요. 감나무 밭에 주렁주렁 열린 먹감은 불그레하게 익어가고 낙엽은 날마다 쌓여만 갑니다. 나무들의 태깔을 보니 아직은 단풍이 어설픈 색으로 물들고 있네요. 요 며칠은 청명한 날씨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소슬바람이 불어 올 것입니다. 그러노라면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지요.
언젠가 언니 여기 오셔서 눈을 펄펄 맞으며 나무다발 옮긴 것 기억하십니까? 그 일이 엊그제 같이 느껴지네요. 지금 앞산 언저리에 아득히 이내가 끼어 있는 게 보입니다. 전깃줄에는 까치들이 무리지어 줄줄이 앉아 무슨 심각한 궁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요. 조금 있으면 외로움이 물밀듯 찾아오는 해 저무는 시간입니다. 못 견디게 고독을 즐기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어느 땐 마무리를 다 못한 것 같이 서성일 때가 있는가하면 어느 땐 그지없이 차분하기도 하는 해넘이 시간입니다. 며칠 전에는 이슥한 밤에 마당에 나가 달을 보고 글 한 편 썼습니다. 왠지 살아온 세월이 슬프고 고마웠습니다.

언니! 고생고생하고 살아 오셨지만 지금은 복이 많으십니다. 아드님이 교수로 있고 그것도 그 유명한 연극 ‘명성황후’ 의 연출가로 명성을 얻고 있지 않습니까? 따님도 도예로 서양화로 작가 생활을 하니 아들딸은 잊어도 되겠습니다. 손자들도 영특하니 언니만큼의 복도 흔치 않을 겁니다.  언니 몸만 챙기십시오,
오는 10월 29일 쯤에 여기 내 집에 오신다고요?  다섯 번째 오시는 거네요. 날 만나야 회포를 푸시게 되지요. 땅 위에 수북이 은행잎 쌓이듯 가슴에 다복다복 쌓인 회포를 실컷 쏟아 놓으십시오. 안 그래도 저도 가을이 짙어서일까요. 풀어 놓을 이야기가 포갬포갬 쌓여 있답니다.  그럼 언니를 기다리겠습니다.      
                                         
                                      2008년 10월 17일  만추에
                                                           정 원 정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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