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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이승수
작성일 2008-10-13 (월) 14:00
홈페이지 http://blog.daum.net/crane43
ㆍ추천: 0  ㆍ조회: 3234      
백두대간에 서서
백두대간에 서서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이승수



‘아 바람/땅가죽 어디에 붙잡을 주름 하나/나무 하나 덩굴 하나 풀포기 하나/경전(經典)의 글귀 하나 없이/미시령에서 흔들렸다/풍경 전체가 바람 속에/바람이 되어 흔들리고/설악산이 흔들리고/내 등뼈가 흔들리고/나는 나를 놓칠까 봐/ 나를 품에 안고 마냥 허덕였다’
                          -황동규 시인의 ‘미시령 큰바람’ 중에서-

바람이 세기로서니 나를 품에 안아야 할 정도일까만 나는 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몸부림 친 여러 번의 기억이 있기에 이 구절에 집중한다. 어찌 생이 깊어갈수록 잡아야 할 게 그리 많은지, “다 내려놓으라.”는 저 ‘나무마을 윤 신부’의 주문에 내놔야할 변명을 고르면서 삶을 정렬하는 게 습관화 된지 오래다. 산에 대한 집착도 예외는 아니어서 시린 무릎에다 리플을 매달고 작정한 게 백두대간 종주길이다.
 올 여름 휴가 때 대관령을 넘어 선자령 가는 길에 먼발치로 동해를 보면서 2년 전 기억에 젖었다. 어렸을 적 주먹질 잘하는 새끼와 한 판 붙기 전 코피가 나는 상상을 하면서 주눅이 들던 기분이 되살아나 초꼬슴에 바장이던, 사실 편치 않은 길이었다. 남한구간이 684km(산림청 홈페이지기준)라는데 도상(圖上)거리일 뿐 실측거리는 750km를 넘는다는 게 중론이다. 산쟁이들마다 구간도 각기 달리 정의하는데 월간 ‘산’지에서는 35구간으로 나누어 안내하고 있다. 구간 평균거리가 19.5km다. 한 달에 한 번 가면 3년이 걸린다. 꾼들이 논스톱으로 50일 걸리는데. 산고보다 더 고통이 심하단다. 체중 몇 키로 빠지는 건 좋지만 발톱이 빠져 서럽다는, 그런 길을 예정했던 것이다.  

20구간을 마쳤다.(2008. 7월말 현재) 절반을 넘은 것이다. 존영이가 지금 기분을 물었다. 살 떨림이 사라졌다고 대답했다. Runner’s high를 느끼게 되면서 발톱 좀 빠지는 건 문제가 아님을 알았으니 그 기막힌 상황을 무어라 형언해야 좋을까?

‘대간의 꽃’이라는 속리산 천황봉 안부(鞍部)에 비스듬히 앉아 삼파수(三波水) 흐름을 쫒아 금강, 낙동강, 한강 유역의 역사를 훈련하자면 나도 역사의 한 꼬리를 잡는 것 같아 뭉클했다. 도주막(장수 번암 지지골 소재)을 넘으면서 야사에도 빠졌다. 먼 옛날 주막집 아낙이 투숙한 어느 선비와 초저녁 정사를 치르게 되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주인장이 잠에 빠진 남정네 모두를 두들겨 깨워 중요한 곳에 들깨를 부은 뒤 뛰게 했다는데 그 엉뚱한 놈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전해지지 않고 지금은 주막집만 도도하게 남아 오리 주물럭을 만들어 판다. 이화령부근 어느 암자는 대간길이 비켜 지나가는데 스님이 철조망을 치고 버틴다. 불전함에 만 원을 넣으니 미소와 함께 약수를 대접을 받으면서 통과할 수 있었다.
미리 가본 설악의 공룡능선은 아예 선경이었다. 비 갠 뒤 만들어진 구름밭을 즈려밟자면 마치 천상을 걷는 것 같았다. 하늘재서 만난 아가씨와 나누는 대화다.
“집 나온 지 며칠 됐어요?”
“과일 있어요?”
홈플러스에서 사온 체리 몇 알을 넘겨주었다.
“3일 됐어요.”
어김없이 쉰 냄새가 등천하지만 싫지는 않았다. 여성들의 나 홀로 산행이 급증하는 요즈음이다. 괴로운 건(이건 나의 경우다) 1천 2백여 고지를 넘나들다가 급작스레 내려서는 길을 만나는 때이다. 한없이 가다보면 페이브먼트 길과 만나고 이내 버스와 마주친다. 다시 반대방향의 일천고지를 올라야 하는데 이게 2번 3번 반복되면 힘이 든다. 아~ 내려가는 길이 편하다고 누가 말했던가. 뭐니 뭐니 해도 여름철 야간산행은 대간여정의 백미이다. 왼쪽 하늘에 왕방울만한 별들이 붕어 떼 물 먹듯 오물거린다. 은하수를 들여다보자면 조그만 육신이 그 속으로 한없이 빨려드는 것 같아 쿨렁하다.
 “빛의 조화여, 차안과 피안의 간극이여!”

나는 지금 이렇게 백두대간의 한 중심에 서있다. 가야할 길이 있기에 참으로 행복하다.
내 인생, 부대끼며 살아온 날들이 많았는데 스스로에게 이토록 함초롬한 평화를 쥐어 준 게 언제였던가 싶다.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 ‘산은 물을 가르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는 산경표의 대 원칙이 그 꿋꿋한 줄기의 자존이니 내 그곳 어디에 선들 무슨 상관이랴, 미시령 큰바람과 마주한들 나를 놓치겠는가 말이다. 불현듯 충청도 운달산 계곡에 위치한 금룡사(金龍寺) 일주문 주련(柱聯)의 글귀가 발뒤축을 친다.

 이 문에 들어오거든 안다는 것을 버려라(入此門來莫存知解)
 비우고 빈 그릇에 큰 도가 가득 차리라 (無解空器大道成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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