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기축년이 저물고 있다. 미국에서는 인종의 벽을 뛰어넘는 첫 흑인 대통령 오마바가 탄생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사랑의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린 김수환 추기경이 2월에 선종(善終)하시더니, 5월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8월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잇따라 서거했다. 그런가하면, 김연아가 세계피겨스케이팅에서 연속우승을 했고, 원자력발전소 수출의 길을 열었던 한 해이기도 하다. 2009년 기축년, 우리 집 가족사를 정리하고자 10대뉴스를 선정해 보았다.
1. 어머니 양순남 여사 81회 생신잔치
어머님은 올해 81회 생신을 맞으셨다. 생신은 음력 6월 26일, 양력으로는 8월 16일이었다. 어머님과 우리 7남매 가족은 1박 2일 일정으로 진안군 정천면 봉학리 학골계곡의 쌍암산장을 찾았다. 어머니의 생신은 마침, 8․15광복절과 일요일이 겹쳐있었기에 아들딸 내외와 손자손녀, 증손자까지 28명이 모이게 됐다. 어머님 생신날 아침, 생일케이크에 촛불을 켜고는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생일축하노래를 부르며 어머님의 81회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해드렸다. 어머님께서는
“어쨌든, 너희 일곱 남매는 우애하며 잘 살아야 한다.”
고 말씀하시면서, 아들딸 내외와 손자손녀, 증손녀까지 일일이 손을 잡아주셨다.
2. 아내와 내 시신(屍身) 기증서약서 등록
두 달 전부터 아내와 나는 시신기증서약서를 써놓고는 등록을 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유교사상에 젖어있던 나로서는 쉽사리 결정하기가 어려워서였다. 시신기증서약서는 자필로 본인의 인적사항을 기재해야 하고, 죽은 뒤 시신을 책임질 유가족의 동의서가 필요했다. 시신을 기증하게 되면, 죽은 뒤 아무런 조건 없이 의학계열대학의 해부학연구를 위하여 몸을 내놓아야 한다. 해부학교육과 연구가 끝나면 시신을 화장시킨 뒤, 유골을 추모실(납골시설)에 안치 하고, 전북대학교는 매년 시신기증자들을 추모하며, 유가족과 함께 감사의 뜻을 전하는 추모제를 개최한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죽은 뒤 자식들에게 부담을 덜어주고 희생이 아닌 최고의 봉사라는 생각이 들어, 12월 22일 전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시신기증상담실을 찾아가 시신기증서약서를 접수했다.
3. 세피아와 이별, 로체(Lotze)와 만남
내가 승용차 세피아를 처음 만난 지는 15년째이다. 오랜 세월 동고동락하며 함께 지내다 보니 애첩이나 다름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몸이 아프다며 가끔 떼를 쓰더니, 이젠 늙고 병들어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며 징징 울기까지 하였다. 그동안 나를 위해서 고생 많이 했었는데……. 어쩔 수 없이 이별을 고해야 했다. 정부에서는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2009년 12월까지 새 차를 구입하는 조건으로, 10년 이상 노후차량에 대해서는 연식에 따라 보상을 해준다고 했다. 이렇게 되어, 세피아를 폐차시키고 2010년식 로체(Lotze) 2.0 승용차를 구입했다.
4. 공포(恐怖)에 떨던 불면증 극복
나는 오래전부터 잠이 짧았다. 아무리 피곤해도 낮잠이라는 것은 모르고 지냈다. 언제나 밤 11시가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자정을 넘겨 새벽녘이 되어도 잠이 오질 않았다. 그러기를 2년 남짓, 하는 수 없이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며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라고 했다. 신경안정제를 복용한지 6개월, 잠은 그런대로 잘 수 있었으나 내성(耐性)이 생길까 걱정이었다. 그러던 중, 수필을 가르치시는 김학 교수님께서 불면증에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전주안골에 개설한 ‘쉔픽스’를 찾아보라고 하셨다. 그곳을 찾은 지 한 달쯤 됐을까. 불면증이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요즘에 와서는 신경안정제를 먹지 않고도 단잠을 이루고 있다.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이젠 건강을 되찾았으니 수필공부를 하는 데 마음을 두어야지 싶다.
* 쉔픽스: 혈관속의 피를 맑게 해주는 의료기기 일종
5. 담배판인회전주조합 근무 재계약
내가 KT&G(담배인삼공사)에서 퇴직하고, 담배판매인회전주조합에서 영업상무로 일을 한 지 5년째가 됐다. 조합에서 내가 맡고 있는 업무는 전주시(완산구, 덕진구)관내 담배판매인 예정지조사 및 불법담배판매행위자 계도이다. 직장에서 인정을 받아서였는지, 2010년에도 근무재계약이 체결되었다. 동료나 선배님들에 의하면, 돈도 돈이지만 할 일 없이 노는 게 너무 지겹다고 했다. 내가 직장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한, 경인(庚寅)년에도 더욱 열심히 뛰어 볼 생각이다.
6. 아내의 고혈압, 뇌졸중 증세로 걱정
아내가 전북대학병원으로부터 고혈압과 뇌졸중증세 진단을 받은 지 5년째가 된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기름진 음식을 피하라고 했다. 그 뒤부터는 내가 아내 대하기를 유리그릇 다루 듯, 조심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이었다. 아내는 어지럽다며 밥을 먹지 못하고 이틀 동안이나 토하기만 했다. 전북대학병원 담당의사 진단에 따르면 뇌의 일부 미세혈관이 문제가 생겼다며, 1개월 주기로 약을 복용하면서 상태를 점검해보자고 하였다.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면, 아내에게 미안하기 그지없다. 이제부터라도 아내에게 최선을 다 해보고자 다짐해 본다.
7. 밀알교회 남선교회 회장으로 추대
밀알교회는 성도(聖徒))가 100여명 되는 개척교회이다. 전년도에는 남선교회에서 부회장으로 일을 했는데, 올해에는 나를 회장으로 추대해 주었다. 남선교회 회원은 결혼한 남자성도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가 있다. 금년도 회원 수는 23명이다. 2009년도 한 해 동안 회장직을 맡아보면서 미흡한 점도 많았지만, 내 나름대로 열심히 했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는 것은 본인의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했다. 그동안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신 임원과 남선교회 회원들에게 감사드린다.
8. 전주 전우회(專友會) 재무를 맡음
전우회는 전매청에서 퇴직한 분들의 친목단체이다. 회원 수는 147명으로 매월 15일에 모임을 갖는다.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선후배들이어서 어느 모임보다 유대가 돈독하다. 나는 우연치 않게 김남태 회장님의 권유를 받아 2009년도부터 2011년까지 3년간 전우회 재무(財務)업무를 맡게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기회라 생각하고 열심히 일을 할 생각이다.
9. 행촌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임기 만료
나는 행촌수필문학회에서 제4대 김정길 회장님을 모시고, 2008년 5월 18일부터 사무국장으로 일해 왔다. 사무간사에는 황점숙 님, 편집위원장에는 김인순 님, 편집간사에는 박순희 님과 함께 행촌수필 제15호, 제16호를 발간한 것이 발자취로 남는다. 2009년 12월 31일자로 행촌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임기를 대과 없이 마치고 나니 마음이 후련하다. 앞으로도 행촌수필문학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미흡한 힘이지만 일조(一助)를 하고 싶은 생각이다.
10. 딸 순옥, 어린이 집 취업
시집간 딸 순옥이가 어린이 집 교사로 취업했다는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다. 시집가기 전까지는 사립유치원 교사로 있었지만,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였다. 큰딸 보연이는 여섯 살로 유치원에 다니고, 둘째 보람이는 네 살이어서 집에 데리고 있었다. 그러던 순옥이가 재치를 발휘하여 큰딸은 유치원에, 둘째딸은 아파트단지내에 있는 어린 집에서 같이 지내기로 계약하고서, 취업을 했다. 집에 있기가 좀이 쑤셨는지 용돈을 벌려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아리송할 뿐이다.
2009년 기축(己丑)년은 나에게 뜻 깊은 한 해였다. 아내와 내가 전북대학교에 시신(屍身)을 기증하기로 등록을 마쳤고, 공포에 떨던 불면증을 극복했는가 하면, 새로운 승용차도 뽑았고, 내년에도 직장에서 일할 수 있게 됐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다. 내년 경인(庚寅)년은 60년 만에 오는 백 호랑이 해라고 한다. 나에게 바람이 있다면, 아들 재영이가 좋은 배필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내의 뇌졸중증세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희망찬 경인년 새해에는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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