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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최기춘
ㆍ작성일	2010-01-06 (수)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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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추억
어린 시절의 추억
행촌수필문학회 최기춘

나는 어린 시절 몸도 병약하고 무엇 하나 잘하는 게 없었다. 말도 늦게 했을 뿐만 아니라 발음이 확실치 못하여 초등학교시절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내 위 두 형들은 어린 시절 무병하고 건강하게 자랐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갓난아기 때 아픈 치레를 자주하여 부모님이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6·25 때 피난을 가면서 나는 외가에 맡기고 형들과 동생은 업고 피난을 갔다고 한다. 이모들이나 외숙들은 내가 어른이 된 뒤에도 외가에서 자라면서 아픈 치레를 많이 하고 잘 울어 외할머니는 물론 이모들을 고생시켰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때 공책이나 연필을 한 자루도 받은 일이 없었다. 소풍을 가서도 보물찾기에서 한 번도 보물을 찾아본 기억이 없다. 이렇듯 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매사에 변변치 못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중학교 진학을 시켜주지 않아 무단가출을 했었다. 큰형은 대학교에 다니고 바로 손위 형은 고등학교에 보내면서 나는 중학교에 안내주지 않고 집에서 농사일을 하라니 너무도 억울했다. 중학교 교복을 입은 친구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해 봄 무작정 서울행 완행열차를 탔다. 서울에 가면 무슨 수가 생기려니 하고 서울에 갔으나 꿈에 그리던 서울이 아니었다. 서울역을 하숙집처럼 생각하고 밤이면 서울역에서 자고 낮이면 취직자리를 찾아 다녔다. 그때는 약국에서 심부름하는 고학생들이 많았다. 나도 약국일자리를 찾기 위해 매일 약국을 누볐지만 약국 일자리는 찾기가 어려웠다. 중국집은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지만 포기했다.

그 시절 유행했던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 바람났네.”란 유행가 가사는 시대상을 잘 나타낸 노랫말이었다. 서울역에는 나와 엇비슷한 또래 애들은 물론 청년들도 많았었다. 앵두나무 우물가에서 바람난 이쁜이도, 금순도이, 석유등잔 사랑방에서 바람난 삼돌이도 복돌이도 단봇짐을 싸 서울로 모여들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바라는 취직자리가 생기지 않았다. 집에서 가지고간 콩 두 가마 값이 바닥났다. 서울에 가서 취직하여 야간 중학교에 다니려는 꿈이 무참히 깨져버렸다.

어쩔 수 없이 내종형님을 찾아갔다. 형님과 형수님은 무척 반가워 하셨다. 형수님은 눈물을 보이시기도 했다. 서울에 왔으면 진즉에 찾아 올 것이지 헛고생을 했다고 하면서 아버지가 형님에게 보낸 편지를 보여 주었다. 편지 내용은 무단가출한 내가 그곳에 찾아가면 용돈도 넉넉하게 주고 서울 구경이나 잘 시켜 집으로 내려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형님과 형수님이 너무도 따뜻하게 대해 주시고 용돈도 주고 옷도 사주셔서 매일 서울 구경을 다녔다. 50년 전의 서울은 구경거리가 많지는 않았다. 전차나 시내버스를 타고 시발지에서 종점까지 가보기도 하고 남산이나, 창경원에도 갔다. 그러나 마냥 서울에서 놀고 지낼 수만은 없었다.

염치는 없지만 별수 없이 고향 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집에 돌아오면서 어머니 아버지를 무슨 낮으로 대할 것인가 걱정이 태산이었다. 집에 돌아와 어머니를 부르며 대문을 들어서니 어머니는 아무 말도 못하고 나를 안고 울기만 하셨다. 나도 많이 울었다. 울면서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너는 집을 나가서 어머니나 가족들의 얼굴이 떠오르지도 않더냐?” 그날 밤 아버지는 늦게 들어오셨다. 나는 아버지가 들어오신 줄 알면서도 잠든 체하였다. 아침에 일어나 인사를 드렸다. 아버지는 아무말씀도 안하시고 그래 서울 구경은 잘했느냐고 물으셨다.

역사나 인생사를 가정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일이지만 그때 서울에서 중국음식점에라도 취직해서 어려움을 극복했더라면 현재 나의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요즘 서울에 갈 때면 간혹 혼자 상상해보며 어린 시절 아름답지 못했던 추억이 떠올라 쓴웃음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