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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채선심
ㆍ작성일	2009-04-27 (월)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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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으로 하루를 보내고
동심으로 하루를 보내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채선심

관광버스가 서해대교를 지나 남으로 남으로 달렸다. 짙푸른 물결이 아직은 시리게 일렁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성들을 쏟아냈다. 세계적인 늪지, 순천만이 고향인 우리는 산보다 바다에 더 애정을 갖지만 심술이 날 땐 많은 인명을 앗아가기도 하는 게 바다다.

자주 참가를 못해서 그런지 낯선 얼굴도 눈에 띄지만 이름표를 보니 기억은 나는데 얼굴이 예상을 비켜갔다. 둥글넓적한 얼굴이 계란형으로 바뀌고, 오밀조밀하던 얼굴이 우락부락하게 변하였다. 짧지않은 세월이 흘렀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가슴에 이름표를 매단 채 하는 행동들이 틀림없는 초등학교 입학생들을 떠올리게 했다.
어려서부터 입담이 좋아 선생님을 비롯한 반원들을 곧잘 웃음의 도가니로 몰고가던 H가 마이크를 잡더니,
"여러분, 오늘은 오십 년 전의 어린이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의 말재주는 우리를 세월이 정지된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무겁고 버거운 멍에를 부려버리고 동심으로 돌아가자며 나름대로 끼들을 다투어 풀기 시작했다.

"동창들이여, 장하도다. 그런 재주들을 저 깊은 곳에 묻어둔 채 주부와 가장이라는 멍에를 지고 힘든 줄 모르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관광버스가 군산을 통과하고 있을 때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내가 입을 열었다. 행선지가 서해안이라면 굳이 서울까지 가서 차를 타지 않아도 좋았는데 동해안이라고 하지않았던가. 더욱 억울함을 호소한 사람들은 순천팀이었다. 밤이 이슥토록 올라간 길을 되돌아 오는 격이 되었지만 좀더 오랜 시간 같이하고 싶고 빨리 보고 싶어 행선지를 속였다는 서울팀의 고백이 밉지만은 않았다. 다음부턴 그들의 제안에 꼼꼼이 따져 보고 동의 하리라.

가는 마다 간드러진 웃음과 요염한 자태의 봄꽃들이 우리의 만남을 축하해 주지만 화려한 밖의 풍경보다는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더 좋은 듯 창밖으로는 눈길도 주지않았다.
트롯트와 가곡을 넘나들며 목청을 돋우던K, 김소월의 진달래로 청신경을 자극하던 C, 모두가 프로에 못지않는 실력들을 발휘했다. 시낭송이 끝나자 마이크를 넘겨받은 L은 진도 아리랑에 자기의 삶을 실어 질박하게 풀어냈다. 호화롭게 자라 시집도 잘 갔다더니 삶이 녹녹치 않은듯 눈가까지 붉어짐을 애써 감추었다.

인간의 삶이 물 흐르듯 순조로우면 오죽 좋으랴만, 그게 어디 내 뜻대로 되던가? 그의아픔이 다른이에게 전이될까봐 나는 빼앗다시피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노래에 자신이 없어 할 말을 준비해두고 기다리던 터가 아니던가.
"사랑하는 O남국교 13회 동창 여러분! 아침에 차가 출발할 때 오늘 하루만은 어린이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한나절을 눈 닦고 봐도 어린이다운 어린이가 한 명도 없네요. 우리가 어린이였을 적 트롯트를 부르고 국악을 불렀습니까? 어린이는 어린이다워야죠. 앞으로는 동요 이외의 노래를 부른 어린이는 한 곡 부를 때마다 만 원씩 내기로 합시다."
나의 터무니없는 제안의 속셈을 뻔히 알면서도 우레같은 박수로 동의해 주었다.

곷과 같이 곱고
나비 같이 춤추며
아름답게 크는 우리
무럭무럭 자라서
이 동산을 꾸미며
웃음의 꽃 피어나리.

나는 어린이 때 즐겨불렀던 어린이 왈츠를 불렀다. 빠른 템포에 맞추느라 어린이처럼 날렵하게 몸을 움직이는 모습들에서 지난 날의 추억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학예회 연습을 하던 중 상대역의 남학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울음보를 터뜨렸던 여학생. 헐렁한 신사복을 입고 선생님역을 의젓하게 해내던 코 흘리개 남학생, 세월은 그들에게 훌쩍 멍에를 씌우고 할아버지 할머니로 살으라 한다.

하지만 아직은 늙음을 부인하고 싶은 우리. 머리엔 희끗희끗한 서리가 내리고 얼굴엔 짧지않은 세월의 흔적들이 냇물되어 흐르지만 머리와 꼬리의 순서가 바뀌어버린 동요로 함성을 이룰 땐 기사도 더는 못 참겠다는 듯 함박웃음을 웃어제꼈다. 유난히도 많은 서리를 맞은 사람이 짐짓 천진스런 어린이가 될 때는 웃음 뒤에 그 뭔가가 울컥함을 느졌다.

어렸을 때 봤던 오두막 할매의 노망한 모습이 스쳤다. 밥을 먹고도 배고프다고 이웃까지 들리도록 소리소리를 지를 때 곤혹스러워 하던 며느리의 모습은 차라리 안쓰러웠다.
그토록 사랑하던 자식도 몰라보고 심하면 마당을 돌면서 흙도 주어먹는 모습에서 늙으면 아이된다는 말이 틀림 없는 말이구나 하는 걸 실감했다.

요즘 치매환자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이미 정신을 놓아버린 사람에게 무엇을 바라랴.
어린아이려니 생각하고 좀더 넓은 마음으로 바라 본다면 서로가 편할 것을, 진날 갠날 없이 키운 자식들이 서로 부모를 짐짝취급하는 것 같아 슬펐다.

부모 입장에서도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지 않으려면 치매에 걸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많이 읽고 많이 씹고 많이 걷는 것도 치매를 예방하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하니 실천에 옮겨야겠다. 패기왕성할 땐 어린이 같은 어른을 보면 우습기만 했던 일이 가슴 아리게 다가오는 건 왠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