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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최기춘
ㆍ작성일	2010-01-14 (목)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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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눈을 바라보며
함박눈을 바라보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최기춘

창밖을 바라보니 함박눈이 펄펄 내리고 있다. 함박눈이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스키장 운영자는 하늘에서 금가루를 뿌려주는 기분일 것이다. 그러나 건설현장 노동자나 노점상은 물론 도로관리를 담당한 공무원들은 걱정이 앞설 것이다. 한겨울 함박눈을 바라보면 왠지 옛날 생각에 잠기게 된다. 어린 시절 겨울에 눈이 내리는 날이면 따뜻한 아랫목에 화롯불을 가운데 두고 가족들이 모여 앉아 정겹게 이야기꽃을 피우던 생각이 난다. 옛날 농촌의 겨울은 평화롭고 한가로웠다. 땔나무나 하고 사랑방에 모여서 놀았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사랑방에서 새끼도 꼬고 멍석을 만들거나 가마니를 짜기도 했다.

함박눈이 내리면 사람들은 장난 끼가 생기는 것 같았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사랑방에선 꼭 무슨 일이 벌어졌다. 참새를 잡기도 하고, 닭서리를 하든지, 아니면 두부내기 화투라도 치고 막걸리 추렴이 벌어지기도 했다. 먹을거리가 귀한 때였다. 어떤 때는 초저녁에 생고구마를 눈 속에 묻었다가 늦은 밤에 먹으면 얼듯 말듯 해서 서글서글하니 요즘 아이스크림처럼 맛이 있었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사람들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기도 하지만 들뜨기도 하는 것 같다. 사람들뿐만 아니다. 강아지들도 함박눈을 맞으며 꼬리를 흔들고 달을 보고 혼자 짖기도 하고 동네 고샅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좋아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어머니는 별식을 만들어 주셨다. 호박떡을 해주기도하고, 식혜를 만들어 고추나 하늘수박을 넣고 펄펄 끓여 주기도 하셨다. 저녁이면 무밥과 참기름간장으로 비빔밥을 만들어 주기도 하셨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아내에게 무밥을 해달라고 한다. 옛날 그 맛만은 못해도 옛날의 추억을 더듬으며 아내와 함께 먹는 무밥도 그런대로 맛이 있다.

우리 형제들이 분가해서 살면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는 농사일이 끝나면 간혹 우리형제들 집을 오셔서 며칠씩 쉬어 가시곤 했다. 어느 해 겨울 우리 집에 오셔서 며칠 쉬시는데 일요일 저녁때 함박눈이 소담스럽게 내렸다. 나는 문득 어머니가 어린 시절 해주시던 무밥 생각이 났다. 그래서 무밥 한 번 해먹자고 했더니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대찬성이었다. 무밥을 해서 부모님과 우리 내외는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아들들은 무밥이 맛이 없다며 먹질 않았다. 늙어서 자식들에게 음식 대접을 잘 받고 싶거든 어린 시절에 내가 좋아한 음식을 아이들에게 많이 먹이라는 말이 맞는 말임을 실감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과 같이 음식도 어린 시절 맛있었던 음식이 나이가 들면 먹고 싶어진다고 한다. 그날 밤 어머니는 나에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느냐며 칭찬까지 하셨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함박눈이 내리면 술친구들과 어울려 포장마차에서 참새구이 안주에 정종대포를 마시면서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그러나 눈이 많이 내리면 마냥 낭만이나 추억에 젖을 수만은 없었다. 주민들의 재산피해는 없는지 살펴야하고 교통 두절이 되지 않도록 눈을 치워야했다. 때로는 눈을 치우느라 퇴근도 못하고 밤을 새며 제설작업을 하기도 했다. 아무리 열심히 눈을 치워도 눈이 많이 내리면 아침출근길에 불편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리되면 위험을 무릅쓰고 밤을 지새우며 눈을 치운 공은 아랑곳없이 늑장행정이니 무능이니 하면서 잘못된 것만 꼬집는 언론들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러나 때로는 주민들로부터 격려전화가 올 때도 있고 위문품을 보내주는 독지가도 있어서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2010년 1월 2일,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 추위와 함께 많은 눈이 내렸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기상 관측사상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한다. 1월 3일 첫 출근길에 교통대란이 일어났다. 오죽하면 새해 첫국무회의에 지각한 국무위원도 있었겠는가? 서울시 공무원들은 밤잠을 못자고 제설작업을 하면서 눈 때문에 애를 태웠다고 한다. 서울시 구청에 근무하는 며느리도 퇴근을 못한다는 전화가 왔다. 그러나 언론은 영락없이 서울시행정을 무능으로 몰아붙였다. 나는 백수가 되어 함박눈이 내리는 풍경을 아무 부담 없이 여유롭게 바라보노라니 옛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