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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구미영
ㆍ작성일	2009-05-07 (목)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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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김치
엄마표 김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구미영

금방 씻은 듯한 상추에 장어 한 점을 올려놓고 입안에 넣으려는 순간, 핸드폰 벨이 울렸다. 친정엄마였다. 열무김치를 담가 놓았으니 가져가라고 하셨다. 지나가는 말로 열무김치 얘기를 꺼냈었는데 엄마는 또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결혼 10년차 전업주부이지만 그 쉬운 깍두기를 담글 때마다 맛이 달라 감히 손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시댁 김장을 할 때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았지만 내 손으로 담근 김치는 그 어느 누구도 손댈 수 없을 만큼 이상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은 그냥 옛말이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인 것 같다.

장어 냄새를 풍기며 난 친정으로 달려갔다. 먹을 때는 몰랐는데 친정엄마 얼굴을 보는 순간, 내가 정말 뻔뻔한 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한 번 하는 외식이지만 가까이 사시는 친정부모님을 모시고 갈 수도 있었다. 임신한 나와 통장잔고만 생각했지 친정부모님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김치를 가지러 가면서도 고기나 과일 정도는 사가지고 갈 수 있었는데 난 또 빈손으로 갔다. 시댁에 갈 때와는 다른 풍경에 괜히 신경질이 났다. 돈이라도 드릴까? 지갑을 열어보니 달랑 만 원짜리 한 장 뿐. 은행에 언제 다녀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며칠 안 남은 어버이날에 식사 대접을 하면 되겠지 생각하고 난 열무김치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열무김치가 반쯤 익어갈즈음 난 족발과 쇠고기를 사들고 저녁 먹으러 간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무리 딸이라 해도 사위가 있으니 또 손님상을 차릴게 뻔했지만 그래도 난 친정으로 갔다.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향긋한 김치 냄새가 또 나의 식욕을 자극시켰다. 김장 김치에 물려서 새로 담근 김치가 먹고 싶었지만 엄마에게 미안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딸의 마음을 아셨는지 모르겠다. 가닥으로 찢은 김치에 잘 익은 쇠고기 한 점을 올려 아무렇게나 벌린 입에 넣는 순간 나는 너무 행복했다. 손에 묻는 것이 싫어 될 수 있으면 젓가락질을 하거나 비닐장갑을 끼고 음식을 만지는 내가 그 순간만큼은 위생이나 교양 따위는 생각지 못했다. 혀끝에서부터 전해지는 맛의 유혹에 뱃속 아가도 행복한지 요동을 쳤다.

맛있는 저녁식사가 끝나고 과일을 먹으면서 식탁위에 놓인 김치 한 통에 자꾸 눈이 갔다.한 통밖에 없는데 달라고 하기엔 염치가 없었다. 김치 담그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결국 그 김치는 우리 차에 실리게 되었다. 난 또 한 번 뻔뻔한 딸이 되고 말았고.

한없이 주는 게 부모라지만 난 엄마가 김치를 담가 주실 때마다 죄인이 되는 기분이다.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져가는 게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린 현실. 나도 그런 친정엄마가 될 수 있을까? 갑자기 내 딸들에게 미안해진다. 내 딸들도 결혼하게 되면 분명 김치를 먹을 텐데 깍두기 하나 제대로 담그지 못하는 엄마를 어떻게 받아들일는지 모르겠다.

항상 먹어 왔던 할머니표 김치가 어느 날 엄마표 김치로 바뀌게 될때 딸들이 겪게 될 그 황당함이란. 처갓집에 가면 몸보신하듯 음식을 먹어치우는 남편을 보면 내가 만날 나의 사위들에게도 미안함을 느낀다.

외식이 보편화되고 흔한 김치 정도는 주문해서 먹을 정도로 편리해진 세상에 우린 살고 있다. 하지만 내 자식들이 먹을 거라 생각하고 만드는 음식은 애절한 짝사랑이 들어 있기에 더욱 맛있게 만들어지는 것 같다. 너무도 이기적인 나이기에 그런 음식은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김치가 익으면 더욱 맛이 깊어지듯 나의 내리사랑이 발효될 날을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