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운조루(雲鳥樓) 공식 홈페이지 ▒

ㆍ작성자	김길남
ㆍ작성일	2008-12-19 (금)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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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전주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김길남

광주의 북구 우산동에 사는 101살 박옥랑 할머니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보고 눈물을 흘렸다. 박 할머니는 네 살 때 머리와 목을 심하게 다쳐 장애인이 된 딸을 혼자 64년간 보살피면서 살아온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었다. 딸을 간호하려고 101살 노구를 이끌고 13평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죽지 못해 살고 있다. 내가 가면 불쌍한 딸을 누가 보살필 것인가 걱정이 되어 죽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중학교 교사였던 그녀의 불행이 시작된 것은 가정부에게 딸을 맡기고 출근한 뒤였다. 가정부가 업고 있던 아기를 떨어뜨려 아기는 머리와 목을 다치게 되었다. 목 아래는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아가 되었다. 고쳐보려고 온갖 노력을 했지만 헛일이었다. 방에 누워 천장만 보고 사는 딸이 되었다. 그래도 머리는 좋아 종이에 적어 보이며 한글과 한자를 가르쳤다. 제법 시도 읊조린다고 하였다. 1953년 남편마저 가출하니 근무하던 학교에 사표를 내고 말았다. 지금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어 조금 나오는 수당으로 가까스로 연명하고 있다. 그 작은 돈을 쪼개어 딸을 위해 저축까지도 한다고 한다.

박옥랑 할머니는 이제 죽을 수가 없어 살고 있다. 딸 때문에 죽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세상을 뜨면 움직이지 못하는 딸은 어떻게 살겠는가. 내가 가면 저 불쌍한 딸을 누가 보살필 것인가?"
그래서 101살이면서도 68세 된 딸을 먹이고 씻기며 산다. 딸의 부축을 받으며 살 나이에 오히려 딸의 시중을 든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나 영원하지는 못하리라. 할머니는 딸과 같이 저 세상으로 가기를 바란다고 했다.

우리 어머니의 삶이 생각났다. 어머니도 어려운 선택을 하시고 평생 고생하며 사셨다. 38세에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혼자되어 우리 4남매를 키우신 것이다. 만약 우리를 버리고 새 삶을 선택했더라면 우리 4남매는 어찌 되었을까/ 자식을 사랑하는 나머지 쓰라린 고생을 하면서도 우리들을 곱고 굳게 키우신 것이다.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해 내신 여장부였다. 그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할 따름이다.

더구나 어려운 때라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 농사를 지었으나 연명하기도 어렵고 학비를 대기는 더 어려웠다. 그래도 장남이라고 나를 사범학교까지 가르쳐 교사가 되도록 하였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나 때문에 누님과 여동생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어려운 일만 많이 하고 자랐다. 그래도 밝고 바르게 자란 것이 다행이다. 지금 우리는 옛 이야기를 하며 살지만 그때 어머니는 암담한 삶이었으리라.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하나 어머니는 벌써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후회만 할 따름이다.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라는 주자 10회의 한 구절이 절실히 느껴진다. 생전에는 이 핑계 저 핑계로 마음 편하게 모시지 못하고 이제나 저제나 하다가 아까운 세월을 다 보내고 뒤늦게 후회만 남는다.

나는 내 자식들을 어머니처럼 사랑하며 키웠을까 반성해 보았다. 내가 겪은 고난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어떻게 하든지 대학교육을 시키려고 마음먹고 절약하고 저축하며 살았다. 적은 봉급을 쪼개어 모으기란 참 어렵지만 계속하였다. 큰 어려움은 없이 자식들을 키우기는 했으나 어머니처럼 깊은 사랑은 베풀지 못했다. 어머님의 자식사랑이 대물려 지켜지기를 바랄 뿐이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이율배반이다. 같은 여자인데 왜 하나는 약하고 하나는 강할까. 여자는 남자보다 힘도 약하고 마음도 연약하다. 그러나 약한 여자에게서 강철보다 강한 힘이 나오는 것은 자식사랑 때문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데서 어머니의 강한 힘이 나온다.

박옥랑 할머니가 101살이면서도 지금까지 버티는 것은 딸에 대한 강한 모정이 있기 때문이다. 저 불쌍한 것을 어찌 두고 내가 갈 것인가 생각하면 새로운 힘이 솟을 것이다. 그 강한 의지가 생명을 붙잡고 있다.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생의 끈도 마음 먹기에 달렸다. 의지가 강하면 생명도 강하다. 할머니가 더 사시다가 딸과 같이 편안한 하늘나라로 가시기를 두 손 모아 빈다.

세상에 모성애가 없었다면 아마 참 살기 어려운 거친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불행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모성애가 있기에 따뜻한 가정이 있고 편안한 내 집이 있을 것이다. 안정된 행복한 가정생활의 원천 그게 모성애라 하고 싶다.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어떤 사람을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잣대가 궁금하다. 남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사람도 있고 자기의 가정과 가족을 위해 희생한 사람도 있다. 인류평화와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하다 간사람,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나 평생 고고하게 살다 간 종교인도 있다.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박옥랑 할머니의 삶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딸을 위해 일생을 바친 위대한 어머니라 하고 싶다. 그러나 그 할머니의 잃어버린 일생은 누가 보상해야 할까…….

(2008. 1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