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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길남
ㆍ작성일	2010-03-29 (월)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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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사랑방
그 시절 사랑방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김길남

그때 왜 나는 사랑방에 갔을까? 10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꼬마가 어찌하여 사랑방에 갔을까? 아마도 그곳에선 나를 끌어당기는 어떤 재미나는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농촌에서는 친구들끼리 모여 숨바꼭질이나 제기차기, 팽이치기 밖에는 놀 거리가 없었다. 읽으려 해도 책이 없었고, 라디오나 TV는 꿈에도 본 일이 없는 때였다. 또래끼리 어울리지 않을 때에는 갈 곳이 사랑방밖에 없었다.

사랑방은 농사를 많이 짓고 소도 키우는 부잣집 사랑채에 있었다. 대개 쇠죽을 끓이는 부엌이 딸려 있어 방은 언제나 따뜻했다. 우리 마을 사랑방은 보통 방보다 2배정도나 큰 방이었다. 창문은 2개였고, 문을 열면 바로 한데 칙간이 있었다. 방바닥엔 갈자리를 깔았으며 밤에는 호롱불로 어둠을 밝혔다. 사랑방은 대소변을 보는 데도 편했고, 갈대로 엮어 만든 자리는 먼지나 부스러기 같은 것이 모두 틈으로 빠지니 청소할 것도 없었다. 벽장도 없었고 옷걸이나 책상, 가구 등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재떨이와 목침이 몇 개 있을 뿐이었다. 지금 같으면 거지들이나 살 것 같은 꾸밈새지만 해방 무렵의 시설로는 사랑방으로 딱 알맞았다. 동네사람들이 와서 편하게 놀고 갈 수 있었다.

농사일이 바쁜 여름에는 모정에서 놀고, 추수가 끝난 뒤 추울 때는 사랑방에서 모였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하다 심심하면 투전으로 술내기 놀음도 하고 윷놀이도 즐겼다. 장기판이 있어 두기도 했다. 그 무렵은 왜정 말기쯤 되는데 화투도 흔하지 않아 우리 마을 사랑방에서는 구경할 수 없었다. 내가 윷놀이와 장기를 배운 것도 사랑방에서였다. 어깨너머로 놀이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어른들은 담배를 피웠다. 봉초를 종이로 말아 침을 살짝 발라 붙이고 피웠다. 한 사람이 피우면 거의 따라 피우니 온 사랑방이 담배연기로 어두컴컴해 지기도 했었다. 직접 피우지 않는 나도 덩달아 연기를 마신 셈이다. 꽁초는 갈자리 밑에 끄기도 했는데 담배가 없으면 그 꽁초를 꺼내어 피우는 것을 보았다.

어느 마을이나 사랑방이 있었다. 사랑방은 마을 공동체정신을 배우는 곳이었다. 나이 많은 분을 좌상이라 하여 그분이 주재하여 여러 가지 일을 상의했다. 아무개네 혼사가 어느 날이니 서로 도와 대사를 잘 치르자는 이야기도 하고, 누구네 할아버지가 아파서 고생하니 낫기를 기원하자는 말도 오갔다. 모정의 지붕을 이어야 하는데 각자의 집에서 짚을 내어 날개를 엮자는 상의도 했다. 그러면 모두 따라서 했지 누구 하나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만약 지키지 않으면 따돌림을 받아 그 마을에서 살 수 없었다. 사랑방이 없었으면 한 마을이 한데 뭉쳐 살아가는 중심이 없었을 게다. 서로 협력하여 일을 해나가는 곳이었다.

내 기억에 남는 것은 단자를 얻어 먹은 일이다. 마을에 제사를 지내는 집이 있으면 단자를 얻으러 보냈다. 단자란 부조하는 물건의 수량이나 이름을 적은 종이를 말한다. 그러나 제사 집에 무엇 무엇을 얼마씩 달라고 할 수 없으니 목침을 보냈다. 그러면 주인이 알아차리고 제사 음식을 차려 가져왔다. 제사를 모두 끝내야 가져오므로 새벽닭이 울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지금이야 초저녁에 제사를 지내지만 그 때는 새벽닭이 울어야 철상을 했다. 그동안 기다리는 데 잠이 와 참느라고 애를 먹었다. 그때 얻어먹은 단자 음식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우리 집에도 단자가 와서 사촌형님이 갖다 준 생각이 난다. 이러한 풍습도 서로 도와 살아가는 나눔의 정신에서 울어 나왔다. 요즘엔 단자 얻어먹었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부잣집이라 하더라도 모두 사랑방이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 마을에도 더 잘 사는 집이 있었지만 그 집에는 사랑방이 없었다. 너무 마을 사람과 차이가 나서 범접하기 어려웠던가 보다. 부자지만 인심이 사나웠던 것이 아닌가 한다. 마을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그렇게 정답던 우리 마을 사랑방이 주인이 집을 팔고 이사를 가면서 없어졌다. 새로 들어온 주인은 사랑방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랑방을 만들어 우리를 즐겁게 했던 주인은 후배 김상권 교장의 아버지였다.

마을 사람들을 한 덩어리로 뭉치게 했던 그 사랑방이 그립다. 요즘은 마을마다 회관이 있으나 사랑방 같지는 않다. 사람들 사는 것이 너무도 삭막해서다. 정답게 살던 시절의 그 사랑방이 그리워진다. 형제처럼 정답게 지내던 그 사람들은 이제 거의 고인이 되었다.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며 먼 하늘만 바라볼 뿐이다.

( 2010. 3.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