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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양수
ㆍ작성일	2010-03-21 (일)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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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가 묶이게 된 사연
강아지가 묶이게 된 사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양수

내 이름은 ‘바람’입니다. 태어난지 넉달 된 어린 강아지입니다. 순종은 아니지요. 엄마는 진돗개이고 아빠는 시베리안 허스키입니다. 뼈대 있는 집안의 혼혈이지요. 난 엄마를 닮았답니다. 내게서 아빠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요. 겉모습만 보면 순종 진돗개라 속여도 남들은 모를 겁니다. 난 태어나서 새로운 주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전(前) 주인 집에서 엄마아빠와 함께 살았어요. 행복했습니다. 항상 엄마와 아빠를 곁에서 바라볼 수 있었으니까요. 함께 일어나서 식사하고 이야기도 하며 낯선 사람이 오면 짖어대기도 했지요. 어려서부터 밥상머리교육을 잘 받은 셈이지요. 무서운 밤에는 엄마가 불러주는 자장가를 들으며 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 반경 2미터 안에 구속된 서글픈 신세였습니다. 전 주인은 우리 가족을 따로 떼어서 한 마리씩 묶어 놓았지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세상은 반경 2미터 넓이의 조그마한 조각 땅이었어요. 지나가는 쥐를 보고 달려들 땐, 여지없이 땅 바닥에 처박히고 고꾸라졌습니다. 목에 감긴 줄이 힘껏 잡아당기니까요. 한 번은 어찌나 세게 고꾸라졌는지 목둘레에 시뻘건 피멍이 들기도 했답니다. 너무나 아파서 엉엉 울었지요. 옆에 엄마아빠가 있는데도 상처를 돌봐 달라고 할 수가 없었어요. 엄마아빠도 묶여있는 신세니까요. 그래서 난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해야 했습니다. 혼자 낑낑대며 아파하고 고통을 참아냈지요.

“엄마! 아빠! 우리는 왜 이렇게 묶여있지요?”

난 울부짖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화창한 봄날, 아직 응달에는 겨울의 막바지 차가움이 그대로 남아있던 오후였습니다. 점심 먹은 지가 얼마 되지 않았지요. 졸린 눈꺼풀이 무거워 주체하지 못하고 있을 때, 어린아이 두 명과 콧수염이 난 키 큰 아저씨가 우리 집에 찾아 왔습니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컹컹 짖어댔습니다. 합창하며 요란하게 짖었습니다. 주인 아저씨가 문을 빼꼼히 열고 밖으로 나왔답니다. 우리가 짖는 소리를 들은 것이지요. 우리는 이내 입을 다물고 조용히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들은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았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뭐라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콧수염 난 아저씨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주인 아저씨가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내 목에 묶인 줄을 풀고 나를 덥석 안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콧수염 난 아저씨에게 나를 넘겨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좋아라 소리를지르며 박수를 치고 야단이었습니다. 난 영문을 몰랐고 낯선 아저씨 손아귀를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난 아직 어린 강아지였으니까요.

그런데 왜 내가 자꾸 엄마아빠로부터 멀어지는 걸까요? 난 엄마아빠를 보고 싶은데 보이는 건 콧수염 난 아저씨의 넓적한 가슴뿐이었습니다. 난 아저씨 품속에서 발버둥을 쳤습니다. 엄마아빠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들리지 않았지요. 나중에 알았지만 난 새로운 주인에게로 입양이 되었던 것입니다. 엄마아빠와 영영 생이별을 한 것이죠.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했는데 우리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헤어진 것입니다.

“엄마! 아빠!, 보고 싶어요.”

난 매일 밤 새로운 주인 집에서 홀로 흐느끼다 잠들었습니다. 새로운 주인 가족들은 착해 보였습니다. 특히 어린 두 아이들은 내게 각별한 사랑을 줍니다. 이들 덕분에 엄마아빠가 없는 외로움을 조금씩 이겨낼 수 있었지요. 이 집으로 온 뒤 내게는 깨끗한 새 집이 생겼습니다. 페인트 칠이 선명한 새 집이지요. 이불도 새 것으로 선물 받았고요. 밥그릇도 반짝반짝 빛나는 새 것이었지요. 아침 저녁으로 밥을 먹을 땐, 착한 아이들이 지저분해진 내 밥그릇을 깨끗이 씻어줍니다. 난 항상 깨끗한 밥그릇으로 식사를 하고 물을 마십니다. 주인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요. 이곳은 특별한 곳입니다. 마당이 굉장히 넓어요. 내가 한 바퀴 달리면 숨이 차서 서있을 수가 없을 정도지요. 그런데 아주 조용해요. 아무도 큰 소리로 떠들지를 않습니다. 나도 처음에는 으르렁 거리고 컹컹 짖기도 했지만 지금은 절대로 짖지 않아요. 주인을 닮아가는가 봐요. 주인 아주머니는 도자기를 만든대요. 도예가라고 한다네요. 인상이 참 좋아요. 내게 식사를 줄 때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주지요. 나를 쓰다듬어 주기도 합니다. 아줌마 손은 부드러워요. 이따금 엄마로 착각할 때도 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바뀌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난 아직도 묶여서 지냅니다. 줄이 조금 더 길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자유가 구속된 삶이지요. 난 묶인 채로 식사하고 잠도 자고 또 엄마아빠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나와 놀아 줄 때는 나무에 묶은 줄을 풀어줍니다. 내 목에 묶인 줄은 그대로여서 내가 달리면 줄도 함께 달립니다. 아이들과 뛰놀며 줄이 풀린 자유를 만끽하지요. 놀이에 신이 나서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싫증이 날 때쯤이면 아이들은 나를 다시 묶어놓습니다. 그리고 유유히 집안으로 사라지지요. 나는 무작정 또 기다려야 합니다. 아이들이 나와서 나를 다시 풀어 줄 때까지 말이지요. 묶었다 풀어줬다를 반복하더니 어느 날인가는 나를 완전히 풀어줬습니다. 엄마아빠 생각이 내 머리에서 거의 사라졌을 때였을 겁니다. 내가 이 집에 익숙해졌던 때도 이때였을 겁니다. 나는 이제 자유롭게 이 곳 저 곳을 다닙니다. 이젠 쉬와 응아도 냄새나지 않게 멀리 외진 곳에서 해결합니다.

난 자유 강아지입니다. 마음대로 다니지요. 주인 집 마당은 넓어서 놀 거리가 많습니다. 털이 보송보송한 연두색 둥그런 것이 보입니다. 말랑말랑하고요. 테니스 공이라고 합니다. 입에 물고 달립니다. 그러다 다시 놓고 몇 발짝 달립니다. 얼른 되돌아 달려와서 다시 물고 던지고 또 물고합니다. 이층에서 무엇이 떨어집니다. 부드러운 수건입니다. 얼른 달려가 잔디밭에 닿기 전에 뛰어올라 덥석 뭅니다. 몸에 휘감고 구르고 또 구르고. 정말 신이 납니다. 바람이 붑니다. 시원한 바람입니다. 저기 비닐봉지가 보입니다. 잔디밭 위를 바람 빠진 풍선마냥 부풀어 올라 데굴데굴 굴러갑니다. 백 미터 달리기로 달리다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동시에 비닐봉지를 물고 뒹굽니다. 앞발로 짓이기고 물어뜯고. 이곳은 자유의 땅입니다. 엄마아빠가 생각납니다. 아직도 묶여서 살고 있을 엄마아빠가 가엾습니다.

이웃집 구경을 갑니다. 난 자유 강아지이니까 마음대로 할 일을 결정하죠. 한껏 여유를 부리며 우아하게 종종종 걸어갑니다. 이웃집엔 나보다 나이가 많은 개가 두 마리 있습니다. 한 마리는 나보다 작은, 아주 조금 작은 발바리이고요. 다른 한 마리는 나보다 열 배쯤은 큰 진돗개, 우리 엄마와 같은 진돗개입니다. 발바리는 나처럼 자유 발바리이고, 진돗개는 줄에 묶여서 꼼짝 못하는 우리 부모님과 같은 불쌍한 아저씨 개지요. 나는 아저씨 진돗개를 피해 만만한 발바리에게 다가갑니다. 발바리는 나를 보고 반가워서 꼬리를 흔듭니다. 나도 반갑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놀 땐 심심했으니까요. 하지만 왜 발바리가 만만해 보일까요? 하얀 이를 드러내자 발바리가, 나보다 나이 많은 발바리가 꼬리를 내리고 내 눈치를 살핍니다.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물러납니다. 우리 개들 세계에서는 나이가 상관이 없나봅니다. 내가 발바리보다 더 힘이 세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음식 냄새가 납니다. 출출하던 차에 군침이 돕니다. 발바리 집에 있는 밥그릇에서 나는 냄새입니다. 먹다 남은 것이 조금 있었습니다. 밥그릇은 불결했지만 나는 얼른 한 입에 먹어치웠습니다. 활동량이 많은 나는 주인이 주는 식사로는 늘 부족합니다. 그래서 항상 배가 고프죠. 아쉽지만 간식 정도로 생각하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힘으로 뺏어먹은 것이죠. 멀찍이서 발바리가 으르렁거립니다. 하지만 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발바리의 식사를 빼앗아 먹는 것은 나의 권리이니까요. 배가 고파서 발바리 식사를 슬쩍 했지만 물은 내 밥그릇에 있는 깨끗한 것을 마실 겁니다. 이날 이웃집 나들이는 이 정도로 하고 우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식사 때가 되면 나는 얼른 내 것을 먹어치웁니다. 그리고 이웃집 발바리네 집으로 마실을 나갑니다. 부족한 식사를 보충하기 위해서지요. 거침없이 발바리 식사를 뺏아 먹습니다. 옆에 묶여있는 아저씨 진돗개가 으르렁거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신이 없습니다. 제 친구가 내게 식사를 빼앗기니 참을 수가 없나보죠? 하지만 내겐 위협이 되지 못합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줄에 묶인 몸으로는 나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아저씨 진돗개를 멀찍이 돌아 우리 집으로 옵니다. 포만감에 기분 좋은 휘파람을 불면서 돌아옵니다.

이날도 뒷집으로 마실을 나갑니다. 여느 때처럼 부족한 식사를 보충하기 위해서지요. 진돗개 아저씨의 으르렁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발바리 식사를 먹습니다.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모습이죠. 그런데 이상합니다. 내 뒷머리에 꽂힌 싸늘한 시선은 무엇인가요? 콧수염난 주인 아저씨가 언제 왔는지 제 뒤에 서 있었습니다. 씩씩거립니다. “너, 이놈!” 와락 소리를 지릅니다. 처음 듣는 큰 소리입니다. 깜짝 놀랐죠. 나는 그 자리에서 주인 아저씨의 억센 손에 붙들려 왔습니다. 그리고 나무 기둥에 묶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차갑게 등을 돌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버렸죠. 나는 그렇게 3일째 묶여있습니다. 이젠 마음대로 뛰놀지 못합니다. 반경 2미터 안에 다시 갇히게 되었습니다. 자유를 맛 본 뒤라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난 왜 묶였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주인이 원망스럽습니다. 머리를 들고 하늘을 향해 늑대 울음소리를 냅니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지루한 시간들이 흘러갑니다. 난 새처럼 자유롭게 날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되돌아 갈 수 없는 아득히 먼 옛날의 추억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자유로웠던 우리 강아지가 다시 묶이게 된 사연이다. 난 강아지를 데리고 올 때, 자유롭게 풀어놓고 기르겠다고 생각했었다. 처음에는 묶어놓았지만 우리 집 생활에 적응이 된 뒤로는 목줄을 풀어 주었다. 자유롭게 뛰노는 강아지가 마냥 귀여웠다. 우리 아이들과 살갑게 지내는 모습을 보는 것도 행복했다. 하지만 강아지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뒷집 발바리의 식사를 빼앗아 먹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빨랫줄에 걸린 수건을 물어와 갈기갈기 찢고, 어린 소나무 가지를 꺾으며, 뒷집 마당에 실례를 하는 등 내가 눈을 감아 주기에는 너무 사고의 연속이었다. 나는 강아지를 묶어두기로 결정했다. 뒷집에 불편과 피해를 끼치는 행동을 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강아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어쩔 수가 없다. 쓰라린 마음을 가다듬고 강아지를 나무기둥에 묶었다. 풀이 죽은 채 낑낑거리는 강아지가 안쓰럽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는 강아지를 보면서 나의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았다. 잘못된 언행(言行)으로 주변 사람들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지, 잇속만 챙기기에 급급해 이웃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는지, 고의는 아니었더라도 옳지 못한 행동들로 눈쌀을 찌뿌리게 하는 일은 없었는지. 때가 되면 묶인 강아지를 다시 풀어줄려고 한다. 타고난 본능대로 행동한 강아지가 무슨 잘못이겠는가?

(201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