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당신이 좋아하는 꽃이 되어 하늘나라 정원을 꾸민지 십년이 지났어요. 저도 그 시간만큼 이 세상에서 꽃밭을 가꾸며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하느님 보시기엔 어떠실지 잘 몰라요.
운동권출신 청년과의 결혼은 고생길이라며 반대한 결혼생활이 베드로 돌 때까지 얼마나 행복했는지……. 그러나 둘째 바오로가 태어나면서 의료사고로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을 땐 세상이 무너져 내렸고, 제 인생은 끝났다 생각했어요.
모태신앙이라 해도 신의 존재를 의심하며, 이 몸이 부서지도록 재활치료를 하면 완치되리라 확신했고, 그때쯤 행복이 다시 시작되리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행복이란 현재이지 결코 미래가 아니라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깨달았어요.
엄마,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막내딸이 힘들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아파 눈시울을 적시던 당신께 살아생전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가슴 저릴 때가 많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부터 힘들고 괴로울 때 당신의 삶과 죽음을 돌이켜 보는 습관이 생겼지요. 주님께 모든 걸 맡기며 사시다 임종도 너무 아름답게 맞이하신 그때를 떠올리는 거예요. 췌장암 투병으로 뼈만 앙상하게 남고, 만삭의 임신부처럼 부른 배에 복수가 꽉 차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짜증은커녕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해하고, 오히려 미안해하며 배려하신 엄마……. 기도하러 오신 레지오단원들에게 "항상 감사하며, 재밌게 사세요." 하시던 엄마……. 봉성체하는 날엔 목욕재개한 뒤, 깨끗하게 다린 옷을 입고 마음의 준비를 하셨고, 성체를 모시고 난 뒤 밝게 빛나던 얼굴에선 기쁨과 평화를 느낄 수 있었죠.
기운도 없으시면서 제 손을 꼭 잡고 "로사야, 네가 옆에 있어주어서 고맙다. 하느님께 가면 바오로 꼭 낫게 해달라고 간청하마. 해주고 싶은 말은 고통의 눈물이 흐르더라도 힘을 잃지 말고 하느님께 모든 걸 맡기며 성당에 잘 다니고, 재밌게 살려고 노력하며, 남편한테 잘해라." 하셨죠.
엄마, 저는 그 유언을 '사치스럽다' 생각했고, 금쪽같은 식사시간도 아껴가며 치료에 열심이었는데 좀처럼 호전되지 않아 절망 속에서 결국엔 자포자기가 되었어요. 그러다 세 번째 기일이 돌아왔고, 언니가 갑자기 저를 신부님 옆에 앉혀놓아 성사를 보게 되었지요.
신부님께 "지은 죄도 없는데 너무 큰 고통 속에 사는 게 억울해요. 하느님이 계시다면 이렇게까지 가혹하실 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십자가도 집어 던졌어요. 단지 열심히 살아온 것만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했어요. 다 듣고 나신 신부님은 "자매님, 고생 많으셨어요. 너무 애쓰셨군요. 하느님은 다 알고 계시지요." 하셨어요.
엄마, 엄마의 기도와 사랑으로 주님께 돌아와서 얼마나 감사한지……. 지금은 엄마의 유언을 잘 지키고 있어요. 저도 엄마처럼 주님께 의지하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주님을 만나 삶의 기쁨을 맛보는 순간도 있지만, 피눈물을 흘릴 때도 있어요.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이 좋고 행복해요. 당신의 신앙이 저를 주님께 인도했고, 삶의 철학이 굴곡 많은 시간들을 버티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어요. 감사하고 엄마를 위해 기도드려요.
먼 훗날 베드로와 바오로에게서 "우리 엄마 참 열심히 살았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고, 삶에 지쳐 힘들 때 저를 떠올리면 힘이 되는 엄마가 될 수 있도록 잘 살게요. 사랑하는 엄마, 고마워요.
애들 영세명을 베드로와 바오로로 정해 주신 것도요. 두 분 성인의 신앙을 닮아가는 손자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고, 강 서방도 주님의 아들로 태어날 수 있게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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