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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최기춘
ㆍ작성일	2009-07-29 (수)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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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이사
열세 번째 이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최기춘

바둑에서는 무조건 집이 커야 이기고, 집이 있어야 산다. 집이 없으면 최후에는 죽는다. 집이 없는 놈과 집이 있는 놈은 싸울 수가 없다. 유무가 불상전이라 한다. 집 없는 설움은 바둑뿐만이 아니라 우리네 인간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집이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한다고 한다. 과하면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도 재벌급 건설회사가 대형 고급아파트 건설에 경쟁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씁쓸해진다.

어린 시절에는 부자는 아니었지만 크고 좋은 집에서 살았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크고 잘 지어진 집이었다. 집이 크고 좋아서 폼은 났지만 귀찮은 일들도 많았다. 어머니는 항상 사람이 집을 눌러야지 집한테 사람이 치이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집 안팎의 청결과 정돈을 잘 하셨으며, 특히 여름철이면 뒤뜰이나 마당 구석진 곳 또는 담벼락 밑에서라도 잡초가 자라거나 거미줄이 치지 않도록 항상 신경을 많이 쓰셨다. 그래서 우리 형제들도 청소구역을 정하여 청소와 정돈을 잘했다. 여름이면 대청마루청소는 서로 하려고 했다. 큰 마루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저녁이면 아버지 친구들이 놀러 오시는데 아버지 친구 중 홍윤표 어르신은 마루청소를 항상 반질반질하게 깨끗이 잘한다고 칭찬을 하면서 간혹 용돈을 주셨기 때문이다.

큰집을 관리하면서 살기란 쉽지 않았다. 여름 장마가 지나면 장마에 씻겨나간 마당 구석구석에 황토를 파다 메우고, 마당을 다져야 하며 여름이 지나면 문을 바르는데도 여간 공력이 드는 게 아니었다. 가을이면 이엉을 만들어 이어야하고 또 명절 때면 집안 곳곳에 등불을 밝히는 데도 손이 많이 갔다. 그러나 어린 시절 크고 좋은 집에서 살던 기억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정작 내가 결혼하여 부모님과 함께 살다 별도 살림을 차려 셋방을 전전하면서 겪었던 불편은 헤아릴 수 없었다. 지금은 추억거리지만 그 시절에는 큰 어려움이었다. 겨울이면 윗목에서 숭늉이 얼어붙을 때도 있었고, 연탄가스를 마시고 가스중독으로 온가족이 사경을 해매다 살아난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어떤 집주인은 아침에 주인이 사용하기 전에는 우물물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여 일찍 일어나서 세수도 못하고 주인이 일어나 우물물을 사용할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고, 저녁에는 빨래를 널지 못하도록 하는 집도 있었다. 주인들의 성격이나 행태도 각양각색이었다. 대부분 내 사정과는 전혀 관계없이 주인집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해야 할 처지였지만 이사를 너무 많이 다니다보니 창피하고 부끄러운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우리 또래들은 대부분 나와 비슷한 애환을 겪으며 살았다.

아는 선배 한 분은 아이들이 다섯 명이었는데 셋방을 얻으러 가서 아이들 수를 물어보면 세 명이라고 대답하고 이사할 때는 큰애들 둘은 외가에 맡겨 두었다가 이사를 한 뒤 일주일 간격으로 하나씩 데려왔다고 한다. 나중에 아이들 수가 불어나자 주인이 따져 물으면 처음에는 조카들이 놀러왔다고 하다가 결국은 주인아저씨에게 술을 사주며 사정을 했다고 한다. 지금도 술자리에서 이 이야기가 나오면 웃음꽃이 활짝 핀다. 이렇듯 우리 세대들은 나뿐만이 아니고 대부분 자수성가하여 젊은 시절에는 셋방살이를 하면서 집주인의 비위를 맞추고 살았다.

셋방으로 전전하다가 1986년 내 나이 마흔 살이 되어서야 스물두 평 연립주택으로 열한 번째 이사를 하였다. 규모는 초라했지만 내 집을 마련하여 이사하던 그날은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부모님과 형제들, 그리고 직장 동료들도 초청해서 집들이를 했다.
2008년 정년퇴임을 한 뒤 열세 번째 이사를 하였다. 아내와 나는 여러 가지 생각 끝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우리 부부가 사는데 적당한 규모의 집으로 이사를 했다. 지은 지 15년이 지난 아파트지만 전에 살던 집보다 평수가 다소 넓고 위치도 좋아 우리 부부는 만족하고 있다. 나는 우선 내가 책도 보고 글도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겨 더욱 기쁘다. 두 아들은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했으면 하는 의견이었지만 아내와 나는 지금도 판단을 잘 했다는 생각이다.

주부들은 아파트 평수와 가슴의 넓이가 정비례한다지만 물질적인 풍요만으로 만족을 느끼려면 끝이 없을 것이다. 조그만 성취에도 스스로 만족하면 항상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