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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한일신
ㆍ작성일	2009-03-27 (금)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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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며
봄을 기다리며
전주안골노인복지회관 한일신

나는 사계절 중 봄이 제일 좋다. 봄이 오면 겨울 동안 침묵하던 대지에 새 움이 돋고, 나목에서 여린 꽃을 피워내는 생명의 신비로움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스한 햇살과 함께 내 마음도 어느새 봄맞이에 바쁘다.

경칩이 지났는데도 아직 춥다.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 든다. 꽃샘추위가 길목을 막고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계절의 변화는 거스르지 못하는 듯 봄은 오고 있다. 3월도 중순으로 접어들었으니 오늘은 봄을 마중나가야겠다.

거리로 나갔다. 어제 봄비가 와서인지 여인들의 옷차림이 무겁게 느껴진다. 쇼윈도에는 이미 봄철의 화사한 색깔의 의상들이 손님들을 유혹하고, 노상에는 할머니들이 직접 캐왔다는 여린 쑥과 냉이 등 푸름의 봄나물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나는 저녁에 국을 끓여먹기 위해 솜털이 붙어 있는 쑥을 조금 샀다. 한 움큼 집어드니 향긋한 봄 내음이 물씬 풍긴다.

서신동으로 향했다. 그곳엔 부모님과 함께 살던 단독주택이 있다. 그 집을 산 지가 30년은 넘었으리라. 아버님은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셨고 자녀들은 제각각 각자의 삶을 따라가게 되니 빈집이 되었다. 오래 비워놓아 어설픈데도 어머님은 그 집이 편하다고 좋아하신다. 그래서 작년에 큰 맘 먹고 비가 새는 지붕을 칼라 강판으로 교체하고 실내 주방, 화장실 설치 등 보수공사를 하여 산뜻한 주택이 되었다. 마음마저 수리된 듯 한결 가볍다.

그 집에는 우리가 이사 오기 전부터 매화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었다. 매화나무는 나이가 들수록 몸집이 불어서 앞마당을 다 차지할 만큼 컸다. 덩치 큰 것이 죄가 되었던지 작년에 어머님은 사람을 시켜 매화나무를 몽땅 잘라 놓으셨다. 나는 어머님에게
“좀 위쪽만큼 자르지 그러셨어요?”
라고 말하며 안타까워하자 어머님은
“죽으라고 그렇게 잘랐다.”
라고 말씀하시니 더 할 말이 없었다. 아주 캐내 버리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고 봄이 오길 기다릴 수밖에.

그 집에 들어서자 뭉뚝하게 서 있던 매화나무 고목이 나를 반겼다. 죽은 듯 살아서 상처의 아픔을 딛고 새 살이 돋아나 생명의 부활을 기뻐하는 듯 허옇게 치아를 드러낸 채 파안대소하는 것 같았다. 강한 삶의 의욕이 죽음을 이긴 것일까? 이 신비한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매화꽃처럼 활짝 웃어보았다.

매화나무가 더욱 감동을 주는 것은 혹한의 추위에도 좌절하지 않고 견디며 죽음을 뚫고 보란 듯이 당당하게 고개를 쳐들고 피어났기 때문이리라. 기어이 살아서 꽃을 피우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연약한 꽃잎을 강하게 만들었나 보다. 그래서 저리도 고운 생명의 빛깔과 그윽한 향이 내 가슴속 깊이 헤집고 파고드는가.

나는 아파트로 돌아왔다. 거실에 있는 화분을 바라보았다. 화원에서 사올 때는 예쁘던 꽃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모양이 이그러졌다. 그중에서도 “가랑코에”와 “제라늄”은 적어도 5년은 넘었으리라. 구부정한 몸매에 아랫부분은 누렇게 늙어서 위에만 잎과 꽃이 제멋대로 지저분하게 붙어 있다.

나는 화원에서 사올 때처럼 예쁜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은 과감하게 싱싱한 가지를 싹둑싹둑 잘라 새 화분 7개에 꺾꽂이를 했다. 당초에는 4월 초쯤 하려고 했는데 왠지 오늘 하고 싶었다. 봄을 재촉하는 조바심의 발동인가? 아직은 좀 추운 것 같아 안방으로 옮겨왔다. 햇빛, 통풍, 물주기, 온도 등 놓치지 않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 정성을 쏟아 키울 것이다. 그래서 집안 가득 봄 향기로 채워야겠다.

봄을 기다리며 겨울의 무거운 침묵을 깨고 꽃을 피워내는 매화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에 경외감을 느끼며, 꺾꽂이한 식물들도 튼실한 뿌리를 내려주길 빌어본다. 이제 봄이 오면 허전한 내 마음에도 소망의 씨앗을 뿌려 봄 향기가 가득한 아름다운 꽃이 피게 하리라.
(2009.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