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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정석곤
ㆍ작성일	2010-05-01 (토)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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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아버님의 이사(2)
돌아가신 아버님의 이사 (2)
-마지막 이장(移葬) 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석곤

백호의 해 4월 9일은 화사한 봄날이었다. 길 양쪽에 핀 꽃들은 참 아름다웠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 싸리, 매화, 산수유……. 일찍 뜬 해는 미소를 머금고 예서제서 살며시 꽃들을 설레게 하고 있었다.

잠을 설치며 아침 일찍부터 아버님 이장 채비를 하였다. 두 아들과 산행차림을 하고 남원으로 달려갔다. 차속에서 아내가 싸준 먹을거리로 시장기를 달랬다. 남원 요천 다리 근처에서 묘지이장공사업체 사장님을 만나 아버님 산소가 있는 운봉읍 덕산리 가장마을 뒤쪽 산에 도착했다. 논두렁과 방죽을 지나 산길을 진동걸음으로 올라갔다. 댓바람에 산소를 찾아 기뻤다. 해마다 벌초와 성묘 때 키 큰 나무에 색깔 끈을 묶어두었다. 아직 겨울나무 그대로라 그 끈이 안내자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긴 능선 길에 있는 진달래는 조그마한 꽃망울을 터뜨리려 벼르고 있었다. 그 중 몇 개는 활짝 웃으며 반가이 맞아 주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반세기가 훨씬 넘었다. 첫 번째 이장할 때의 기억들이 아른거렸다. 그 때 대나무 조각으로 엮은 대발 위에 한지를 깔았었다. 그 뒤에 유골을 깨끗한 헝겊으로 닦아 종이 위에 놓고 맞추었다. 그리고 한지로 싸서 조심스레 대발을 묶었었다. 파묘를 하면 흙만 남았을 것이고, 유해가 있다 해도 아주 조금 있을 거라 짐작을 했다. 그래서 가족끼리 하려고 보름 전에 날짜를 정하고 곧바로 아들들에게 알렸던 것이다. 그런데 추모관의 K부장이 유해가 흙만 남아도 색깔이 달라 모시기가 힘들다고 해 묘지이장공사 사장을 소개 받았다.

파묘를 하기 앞서 아버님을 생각하며 기도를 드렸다. 사장님은 삽으로 봉분을 세로로 한 가운데를 관의 폭보다 조금 넓게 팠다. 우리들은 하라는 대로 삽과 괭이질을 할 뿐이었다. 지면높이만큼 팠다. 그때부터는 조심스럽게 파 내려갔다. 60-70㎝ 쯤 파내려 갔을까. 사장님은 호미로 아랫부분을 조금씩 파헤치고 긁으면서 팠다. 나무의 잔뿌리가 사방으로 깊숙이 뻗어 있었다. 잔뿌리를 자르며 유골을 찾는 것이었다. 마치 고대 유적지에서 유물을 발굴하는 것처럼 신중하게 일을 하셨다. 한참 뒤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은 것 마냥 소리를 치셨다. 그렇게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유골이 남아 있다니!

돗자리 위에 하얀 종이를 펴고 유골을 받아 놓았다. 새까맣게 썩은 단단한 막대기 같았다. 한 뼘보다 크고 작은 뼈마디였다. 큰 뼈는 다리뼈이고 작은 뼈는 팔뼈라고 했다. 그 뼈에 부식한 까만 흙이 매달려 있고, 그 속으로 실 같은 나무뿌리가 뚫고 나온 것도 있었다. 산소가 좋은 자리라 뼈가 광채 나는 누런 뼈일 거라고 상상했는데……. 정성껏 나무뿌리를 빼내고 흙을 떼어냈다. 다음은 윗부분을 파헤치는데 두개골 몇 조각이 나왔다. 깨진 얇은 바가지 조각 같았다. 흙을 떼어내고 종이 위에 놓았다. 사장님이 다 마치고 내려 가셨지만 혹시나 하고 다시 파헤쳐 보았다. 두개골 부분 두 조각을 더 찾았다. 종이로 잘 싸서 하얀 박스에 담았다. 흙을 다시 메우고 평평하게 골랐다. 큰 아들이 유해를 두 손으로 모시고 내려왔다. 묘지를 지켜준 소나무, 참나무와 아카시아나무들과 이별하려니 서했다. 오르내릴 때마다 투정을 다 받아 주었던 산이 고마웠다.

집에 들러 점심을 먹은 뒤 추모관(봉안당)에 가서 부장님과 같이 봉안함을 가지고 승화원으로 갔다. 화장터에 들어가 화로에다 유골을 놓고 태우려는 것을 보았다. 밖에서 30분쯤 기다렸다. 만개한 벚꽃의 이파리들이 하얀 나비처럼 휘날리며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게 아닌가. 또 들어가 보았다. 뼈가 잿빛으로 변했다. 바로 뼈를 빻고 있었다. 두세 주먹이나 될까. 하얀 종이로 싸서 봉안함에다 넣었다. 큰 아들이 봉안함을 모시고, 추모관 예배실로 갔다. 셋이서 이장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2층으로 갔다. 부부단 4단에 안치하였다.

오늘은 저녁나절에 성묘를 가자고 했다. 몇 번 가기 싫다고 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추모관으로 갔다. 어머니는 안치된 봉안함을 보시자마자 우리 자손들 건강하고 잘되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다. 삥 둘러서서 기도를 했다. 손자 손녀들은 뛰어다니며 좋아했다. 막둥이가 사업장의 종업원이 자리를 비워서 다 맡길 수가 없다고 오지 못해 아쉬웠다. 어제 해질 무렵 둘째 며느리가 손자 채운이와 이현이를 데리고 왔다. 며느리가 고맙고 더 예뻐 보였다. 오래 있을 수가 없어 밖으로 나왔다. 성묘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산소가 가까워 참 좋았다. 손자며느리들과 증손자와 손녀들이 처음으로 성묘를 한 것이다. 갓 마흔에 돌아가신 아버님이 살아 계시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도민증 사진을 확대해서 조그마한 액자를 만들어 봉안함 옆에 놓아야겠다.

나는 쭉 단독 주택에 살고 있다. 혹시 노후에는 아파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전주종합경기장 주변이 뉴타운으로 개발된다고 하니 그 때는 저절로 아파트로 이사할 성싶다. 아직은 아파트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버님도 나처럼 초현대시설인 아파트식 추모관을 싫어하실 지도 모른다. 아쉬움이 없지도 않다.

아버님은 고향 마을이 바라다 뵈는 고향의 산을 떠나 전주 효자동으로 이사를 오신 것이다. 그것도 단독주택이 아닌 아파트로. 아파트로는 10층짜리이다. 추모관의 2층 출입구에서 가까운 동에 있는 4단이다. 비어 있는 집도 많지만 여럿이 모여 있어 심심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높은 산에서 홀로 멀리 부모님과 조부모님을 보고 계시다가 혼자 전주로 오셨다. 살아 계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도 한편으로는 퍽 좋아하실 것 같기도 하다. 부인과 자손들 곁으로 오셨으니까…….

돌아가신 아버지가 전주로 거처를 옮기신 것 같아 마음이 든든하다. 이제 나를 옥죄던 고민도 끝나서 억만장자가 부럽지 않다. 우리 가문에는 희망의 바람이 솔솔 불어올 것이다.
(2010. 4. 10.)

＊유해(遺骸) : 유골과 같은 말
파묘(破墓) : 새로 묘지로 시신을 옮겨 매장하기 위하여 본디의 무덤을 파냄
봉분(封墳) : 무덤위에 흙을 쌓아올려 둥그스름하게 만든 것
봉안(奉安) : 신주(神主)나 화상(畫像)을 받들어 모심
안치(安置) : 시신 따위를 잘 모셔 놓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