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생원의 화장실에서 되찾은 아버지의 웃음
서생원의 화장실에서 되찾은 아버지의 웃음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노행우
요 며칠간 아버지의 표정이 어둡다. 그리고 별로 말씀이 없으시다. 왜 그러실까? 궁금했지만 워낙 무거워 여쭈어 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온 가족의 저녁식사 때, 아버지가 혼잣말로 '이러면 살림하는 재미가 없는데…….' 하시는 말씀이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며칠 뒤 아버지가 누가 장롱 위에 놓은 돈을 만진 사람 있느냐며 이상하게 돈이 없어진다는 말씀을 하실 때, 아버지의 얼굴에는 난감하고 실망하는 빛이 역력하였다. 아버지는 친구들에게 우리 애들은 착해서 부모를 속이는 짓은 하지 않으니 참 고마운 일이라며 자랑하시던 말씀을 자주 들으며 자라온 게 우리 형제들이다. 그런데도 돈이 없어지니 아버지의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걱정을 하며, 형제 중에 누군가 돈에 손을 대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하였다. 그날 이후 집안의 분위기는 가라앉았고, 웃음이 사라졌으며, 급기야는 서로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무렵, 우리 집 천장은 서생원(쥐)들의 놀이터였다. 아니 운동장이었다. 밤에는 더욱 요란하게 달리고, 낮에도 가끔 뛰어놀았다. 몇 명이 달리는지 요란할 때는 꼭 운동회라도 여는 날 같았다. 서생원들의 운동회는 주로 달리기나 릴레이가 주 종목인 것 같았다. 때로는 너무 자주 운동회가 열려, 책을 읽어도 집중이 안 되었다. 우울한 마음으로 방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한 쪽 구석이 쥐들의 화장실인지, 알 수 없는 지도가 그려져 있고, 유난히도 볼록하게 쳐진 채 젖어 있었다. 아마, 이런 현상은 당시 농촌 주택의 공통점이었으리라.
그런 우울한 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젖은 천장이 갈라진 틈으로 쥐 오줌 냄새가 밴 휴지조각이 방바닥으로 조금 떨어졌다. 그 속에는 갈기갈기 찢겨진 천 원짜리도 섞여 있었다. ‘아니 그렇다면?’ 하고 스치는 것이 있었다. 즉시 나는 아버지를 찾아 “아버지, 없어진 돈이 혹시 1,000원짜리가 아닌가요?”
하고 여쭈어 보았다. 아버지는,
“그래 1,000원짜리지, 혹시 찾았느냐?”
하고 반갑게 되묻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서생원들의 화장실을 낫으로 박살을 내니, 그곳에서 엄청난 양의 휴지조각과 쥐의 배설물들이 섞여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악취도 코를 찔렀다. 분류해 보니, 신문지, 벽지, 천장지, 약간의 닭털과 아버지가 깊이 숨겨둔 1,000원짜리로 보금자리 겸 화장실을 지어 사용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그 귀한 돈은 서생원들의 건축자재였고, 그 서생원들이 바로 도둑이었덤 것이다. 그 날부터 우리 형제는 누명을 벗게 되었고, 주름진 아버지의 얼굴에도 웃음을 되찾았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던 나는 그날 찢겨진 돈을 절반 이상 남은 것들만 골라, 콧노래를 부르며 돈의 뒷면에 흰 종이를 붙여 완전한 크기로 만들었고, 다음날 한국은행에 가서 새 돈으로 교환하니 14,500원이나 되었다. 아버지의 배려로 그 돈의 절반을 내가 갖고, 나머지는 형제들에게 용돈으로 나누어 주니, 가족들의 기쁨은 두 배가 되었다. 시작은 암울하였으나 서생원들 덕(?)으로 가족끼리 신뢰와 웃음을 되찾고, 아버지의 자랑을 지켜드렸으니, 아무래도 이들의 멋진 마무리에 찬사를 보내 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어이없는 곳에서 즐거움을 되찾은 것을 보면, 아무래도 행복이 가까운 데 있다는 선현의 말씀은 진리임에 틀림없다.
(2010.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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