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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공순혜
ㆍ작성일	2010-04-21 (수)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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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2)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2)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목요반 공순혜

나는 시계를 쳐다보며 수화기를 들었다. 그는 저녁 일을 하기 때문에 아침에 휴식을 취한 뒤 일어나기 때문에 시간을 맞춰야 한다. 요즘 나는 옷 수선할 일이 많아졌다. 우리 동네는 개발을 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아 여기에 사는 우리 주민들은 불편한 점이 많다. 가게는 영업이 되지 않아 생계가 어렵고, 주민은 필요한 것을 제 때에 구입할 수 없어 불편하다. 지금 내가 전화를 하려는 동네세탁소도 예외가 아니어서 주인은 낮에는 세탁소를 지키고 밤에는 다른 곳에 가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하고 있다. 세탁소에 갈 때는 꼭 전화를 해서 문을 열었는지 시간은 괜찮은지 확인을 하고 가야 한다. 주인은 성실하고 솜씨가 좋아 세탁도 세탁이지만 수선도 어느 전문점 못지않게 내 마음에 들게 잘 해준다. 그래서 전화를 해서라도 시간을 맞춰 수선하러 그곳에 간다.

며칠 전 갔더니 다림판 앞에 이번에 나온 《행촌수필 제16호》가 놓여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항상 시간에 쫓기고 힘들어 하는 그가 《행촌수필》을 읽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누가 주었느냐고 물으니 나도 잘 아는 분이 주셨다는 것이다. 자기는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책읽기를 좋아하는데 책이 없어 잘 못 읽는다는 것이었다. 오늘은 내가 책을 한 권 주고 싶었다. 2009년도 대한문학 작가회 연간선집 제5집 《꽃보다 아름다운 삶》이란 책을 가지고 갔다. 나도 한 권뿐인 책이지만 기쁨에 넘치는 미소가 그의 얼굴에 넘쳐흐르고 잘 읽겠다고 했을 때 내 마음은 흐뭇하고 뿌듯했다.
바보 이반에게는 군인인 큰형 세묜과 배불뚝이 둘째형 따라스와 벙어리인 누이동생 말라나가 있었다. 큰형인 세묜은 아버지 땅의 1/3을 가지고 임금에게 가서 봉사하여 대장이 되었으나, 자만심으로 전쟁에 패해 집으로 도망쳐 왔다. 둘째형 따라스는 집에 있는 곡식 1/2과 회색빛 말 한 마리를 가지고 떠나 남의 재산을 무조건 탐을 내어 닥치는 대로 빚을 내서라도 사들였기 때문에 빚쟁이가 되어 집으로 도망쳐 왔다.
그동안 바보 이반은 열심히 농사를 지어 벙어리 누이와 부모님을 공양하며 살고 있었다. 도깨비 들이 이반을 못살게 굴어도 오로지 밤낮으로 일만 열심히 하는 이반을 이겨낼 수 없게 되자 도깨비들은 이반에게 목숨을 구걸하며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한다. 드디어 바보 이반은 어떤 병이라도 낫게 할 수 있는 가지가 두 개인 풀뿌리를 얻어 하나는 병들어 죽어가는 늙은 개에게 먹여 살리고 나머지는 손이 굽은 여자 거지에게 주어 손이 펴지게 고쳐 주었다.
그때 나라에서는 공주님의 병이 낫지 않아 고칠 사람을 찾고 있었다. 이반은 풀뿌리가 없음에도 공주님이 가여워 무조건 궁궐로 향했다. 이반이 궁궐에 이르자 공주의 병은 나아버렸다. 임금님은 크게 기뻐하며 이반을 사위로 삼고 자기가 죽은 뒤 임금이 되도록 했다. 임금이 된 이반은 임금님 옷을 벗어 왕비의 옷장에 간직하게 하고 옛날처럼 무명옷에 짚신을 신고 벙어리인 누이를 데려다 일을 하기 시작했다. 왕비도 왕비 옷을 벗고 농사일을 배우며 열심히 일을 했다. 이반의 나라에는 똑똑한 사람은 다 떠나고 바보들만 남아 모두가 일을 하여 스스로 먹고 살며 이웃 사람들도 먹여 살렸다. 나중엔 큰형인 세묜과 둘째형인 따라스도 데려다 먹여 살렸다. 이반의 나라에서는 손에 못이 박힌 자는 식탁에 앉을 수 있지만 못이 박히지 않은 사람은 먹다 남은 찌꺼기를 먹어야 되었다.

이삼일 뒤 나는 옷을 찾으러 갔다. 세탁소 주인은 평소 존경(?)하던 약사님한테 책을 선물 받은 날을 평생 잊을 수 없고 항상 그날만 같았으면 세상 살아갈 힘과 용기가 날 것 같다고 했다. 친구들에게도 자랑을 많이 했다며 그날은 일하는 것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꿈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피곤해도 틈틈이 그 책을 다 읽었단다. 나는 감동과 죄책감으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 집에는 걸리는 것이 책이다. 버리고 버려도 쌓인다. 평생교육원에서 나눠주는 책이 어떤 때는 가져오기 힘들어 사실 귀찮을 때도 있었다.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언제든 서점으로 달려가 살 수도 있다. 책 한 권에 삶의 의지와 꿈을 가꿀 수 있었다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나는 넘치는 풍요 속에서 감사할 줄 모르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 피곤하다는 이유로 세탁소 주인처럼 밤새워 책을 읽은 적이 없다. 아직도 우리 주위에서 책 한 권에 목말라하는 사람이 있구나 생각하니 나는 죄인 같았다. 나는 감동적인 일이 생기면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이 화두처럼 떠오른다. 거기에는 너무 감동적인 동화 같은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이 선문(禪門)같은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생각하며 솜씨 좋고 책 읽기를 좋아하며 밤낮으로 손에 못이 박히게 일하는 우리 동네 이 세탁소 주인은 언젠가 그가 간직한 꿈이 이뤄지리라 믿는다. 만약 내가 수필집을 낸다면 제일 먼저 세탁소 주인에게 갖다 주리라 다짐한다. 따뜻한 봄 햇살이 가득한 전주동초등학교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2010. 3.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