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동백섬, 지심도
아름다운 동백섬, 지심도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목요반 임두환
화창한 봄이다.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5월, 아파트 정문을 나서니 라일락향기가 콧속을 파고든다. 며칠 전 만해도 때맞지 않게 추위가 변덕을 부리더니 엊그제부터는 초여름날씨를 방불케 하고 있다. 오늘 전주지방은 한낮 기온이 섭씨 26도라는 기상예보에 따라 가벼운 옷차림으로 전북수필문학회의 문학기행에 나섰다.
이번 문학기행은 새로 선임된 전북수필문학회 이남구 회장이 두 달 전부터 물색해 놓은 곳으로, 거제시에 위치한 지심도(只心島)와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을 돌아보기로 했다.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은 해금강과 외도해상농원여행 시 한 번 다녀오긴 했으나, 천혜의 자연휴양림 동백섬, 지심도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침 8시에 전주를 출발한 27명의 회원들은 즐거움과 설레는 마음으로 오전 11시 30분쯤 거제시 장승포항에 도착하여 전주사람이 운영하는 ‘장승포 종가집’에서 점심을 들었다.
지심도(只心島)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섬의 생긴 모양이 마음 心자를 빼닮았다고 하여 지심도라 했다고 한다. 면적 0.36m²(10만평)에 해발 97m로 생각보다는 작은 섬이었는데, 장승포항에서 지심도 선착장까지는 약 10여분 거리였다.
쪽빛 바다를 가르는 유람선에서 바라본 지심도는 사방으로 둘러싸인 기암절벽 위에 한낮 햇살을 잔뜩 받은 동백나무 잎사귀들이 거대한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오늘은 5월 5일 어린이날로 공휴일이다. 여객선에는 엄마아빠 손을 잡고 나온 어린이들이 많아 귀여웠고, 단체로 여행을 온 여학생들의 수다 떠는 모습도 보기에 좋았다. 추억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듯 셔터를 연신 눌러대는 연인들도, 섬 주변 낚시터마다 손맛을 즐기려는 강태공 후예들의 여유 있는 모습도 모두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우리 일행은 선착장- 동백하우스- 마끝(해안절벽)- 국방과학연구소- 포진지- 탄약고- 해안전망대- 망루- 그대 발길 돌리는 곳까지 일주도로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1시간 30분이면 섬을 한 바퀴 돌아 볼 수 있었는데, 한낮인데도 동백 숲은 한 줄기 햇살도 스며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동굴처럼 이어졌다. 해안전망대에 오르는 길가에는 두 사람이 팔을 벌려야 겨우 껴안을 수 있는 백여 년이 훌쩍 넘어 보이는 아름드리 동백고목과 후박나무가, 세월에 대해서는 나에게 묻지 말라는 듯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곳저곳 숲속에서 들려오는 동박새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는 우리가 지심도에 온 것을 환영하는 듯했고, 해안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섬 주변의 풍광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옥에 티라고나 할까. 지심도에는 일본 군인들이 1938년 1월에 만들어 놓았다는 포진지와 탄약고, 먼 거리 물체를 탐색하는 서치라이트 보관소가 있었다. 전망대 바로 옆 망루에는 일본군의 포대자리를 알리기 위하여 일본군 교쿠지쯔키〔旭日旗〕게양대가 있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섬, 지심도까지 일본군들의 손에 놀아났다고 생각하니 분노(憤怒)가 치밀어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 등대나무 민박집을 찾았다. 나는 김학 교수님과 김상권 님을 비롯하여 여성 문우 몇 분과 자리를 같이 하였다. 동동주 막걸리 2주전자에 오징어파전 2개를 맛있게 먹고서 값을 물으니 무려 4만원이라고 했다. 술값이 왜 그리 비싸냐고 묻자 주인의 답변은 걸작이었다.
“풍랑으로 배가 들어오지 않으면 준비해 놓은 음식물을 버릴 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보험료라고 치부하십시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아리송했지만, 내려오면서 생각하니 그럴 듯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심도에는 희귀종인 풍란을 비롯해 동백나무, 후박나무, 소나무, 왕대나무 등 총 37종의 식물이 자생하는데, 그중 동백이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는 민박집 주인의 자랑이었다. 지심도는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가 개화기라는데, 개화기에는 선혈같이 붉은 홑 동백꽃을 구경하려고, 한여름에는 내륙의 무더운 더위를 피하려고 많은 이들이 이 동백 숲 그늘을 찾고 있단다.
여행의 끝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긴다. 우리가 지심도를 찾았을 때는 이미 꽃은 져버렸지만, 붉은 홑 동백꽃은 이렇게 예쁘다는 듯 듬성듬성 선을 보여 주고 있었다.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한 동백섬, 지심도를 또 언제 다시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아름다운 남해의 동백섬, 지심도에 와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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