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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노행우
ㆍ작성일	2010-05-06 (목)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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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지키기
자존심 지키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노행우

동생이 울면서 나를 찾아왔다, 중학교 입학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점심시간도 없이 자습을 하고 있었지만 걱정이 되어 나가 보니 서럽게 울고 있었다. 어느 놈이 때렸는지 화가 났지만 꾹 참고 그 이유를 물었다. 3학년 부실장인 동생은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점심시간에는 모든 학생들을 밖으로 내 보내 뛰어 놀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에 따르지 않는 학생을 몇 대 때린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맞은 학생은 5학년인 자기 형에게 일러바쳤고, 그의 형이 내 동생을 때린 것이다.

듣는 순간 몹시 흥분되었지만, 동시에 그의 형 얼굴이 떠올라 걱정과 불안이 겹쳐졌다. 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그는 나보다 키가 5Cm 이상 크고, 체격도 우람하게 생겨 힘도 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부모님끼리도 같은 계원이어서 서로 싸우면 안 되기에 참으로 난감하였다. 하지만 동생의 억울한 눈물을 보고 형으로서 무심할 수도 없었다. 우선 동생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할 것 같고, 형의 위엄과 나의 강함을 보여줘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잘못하면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동생을 앞세우고 그의 형이 있다는 곳을 찾아 갔다. 그를 찾아가면서 나는 싸움으로 비화될 것에 대한 비책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동생과 나의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마치 챔피언 쟁탈전이라도 벌일 것 같은 분위기였다.
“왜 내 동생을 때렸냐?”
나는 다짜고짜 그의 뺨을 한 대 갈겼다. 기선을 잡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반사적으로 그의 주먹이 날아왔고 나는 용케도 잘 피했다. 혼내 주고 빨리 끝내려던 생각과는 달리 결국 싸움으로 확대되고 말았다. 몇 차례 주먹이 오간 뒤 씨름으로 변하였다. 이번 싸움은 반드시 내가 이겨야 하는 싸움이었다. 동생과 내 친구들 앞에서 나의 강한 면모를 보여줘야만 창피를 면할 수 있고, 나의 위치가 확고해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소영웅주의가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붙잡아 보니 상대는 예상대로 힘은 셌으나 꾀가 부족하여 가까스로 그를 땅바닥에 눕힐 수 있었다. 나는 그를 올라탄 채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결국 그는 코피를 흘렸고 소리 내어 울었다. 싸움은 끝난 것이다. 본시 애들의 싸움이란 코피가 터지거나 우는 쪽이 지는 것이다. 나는 일어서면서 그의 가슴을 발로 거칠게 밟은 뒤 승리를 확인하였다. 어디서 그런 잔인함이 나타났는지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사실 나는 이 싸움에서 젖 먹던 힘을 다 쏟았고, 내 지략과 잔꾀를 총동원했던 것이다. 이를 지켜 본 동생은 안도하였고, 활짝 웃었다. ‘과연 우리 형이 최고다.’ 라는 표정까지도 읽을 수 있었다. 구경나온 동생 친구들도 부러운 표정이었고, 내 친구들도 나의 강인함에 탄복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둘러싸인 채 개선장군이 되었다. 그런 가운데 나는 별일 아닌 것처럼 손을 털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5교시가 끝날 무렵, 누군가 교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담임선생님이 문을 여니 웬 할머니가 문을 박차고 교실로 들어왔다. 순간 나는 놀랐다. 바로 나한테 맞은 그 애의 할머니였던 것이다. 그의 동생이 집에 가서 일러 바쳤던 것이다. 그 할머니는 소란을 피웠고 선생님이 손자를 때린 학생을 단단히 혼내주겠다고 약속한 뒤에 겨우 돌아갔다. 나는 속으로 ‘이제 죽었다’ 각오를 다질 무렵 수업은 끝났다. 선생님은 나를 불러 자초지종을 들어보고 앞으로는 힘이 약한 애들을 때리지 마라는 훈계로 대신하셨다. 나는 속으로 내가 공부를 못했으면 틀림없이 종아리가 시퍼렇게 멍이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정말 다행이었다.

다음 수업시간에 어떤 여학생이 쪽지를 가져와 선생님께 드렸고, 나는 6학년 5반 교실로 그 여학생을 따라갔다. 그 곳에는 여학생이 약 80여 명이나 되어 얼굴이 화끈거렸고, 떨면서 들어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여선생님은 내 동생의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다. 그 선생님은 나에게 자초지종을 묻고, 다시는 싸우지 말라는 주의를 주고 끝냈다. 걱정을 했지만 다행이었다. 이것 역시 내 동생이 공부를 잘 했기 때문에 그 정도로 마무리를 한 듯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5반 담임선생님은 맞은 학생의 집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싸움의 시작은 어찌되었든, 나는 동생 앞에서 정말 죽을힘을 다해 싸웠다. 젖 먹던 힘까지 쓴다는 말은 당시의 나를 위해 만든 말이라고 생각되었다. 만일 내가 그 싸움에서 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예로부터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 했지만 그날의 싸움으로 나는 몇 가지 자랑스러운 전리품을 얻을 수 있었다.
(2010.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