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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공순혜
ㆍ작성일	2010-05-05 (수)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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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단속
마음 단속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목요반 공순혜

앞마당 동백나무는 키가 훌쩍 크다. 앞집 지붕위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하늘거리고 있다. 그 선홍색 진한 빛이 마당을 붉은빛 바다로 만들고 갈 때도 뚝뚝 봉오리 채 떨어져 꽃동산을 만든다.
1월이 오면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하여 2월부터는 성질 급한 봉오리부터 하나하나 꽃을 피우다 4월이면 핏빛바다를 이룬다. 지금은 벌 몇 마리가 꿀을 만들고 싶은지 윙윙거리며 날아다닌다. 고등학교 영어교과서에 실렸던 아일랜드 더블린 샌디마운트에서 태어나 노벨문학상을 받은 W.B 예이츠의 '이니스프리의 호수 섬'이란 詩가 생각난다.

‘나 일어나 이제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욋가지 엮어 진흙 바른 작은 오두막을 짓고, 아홉이랑 콩밭과 꿀벌 통 하나 벌 윙윙대는 숲속에 나 혼자 살리, 거기서 얼마쯤 평화를 맛보리, 평화는 천천히….’

그 옆 영산홍은 6월에 꽃을 피워 5월까지도 푸른 잎만 내밀고 풍상에 휜 허리를 부여잡고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이 조금은 안쓰럽다.

분홍색 꽃을 다복이 피워 봄의 화사함을 전달해주던 철쭉도 꽃은 다 지고 새로 나온 푸른 잎새가 내년(來年)을 기약하자고 한다. 몇 년을 잎사귀 몇 개로 목숨을 부지하며 그래도 난(蘭)이라는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는 동양난 한 촉도 살아 있어서 고맙다. 작은 화분에 난 잎사귀로는 제법 넓은 잎을 3개, 5개만 가진 풍란은 올해도 잊지 않고 늦게 가녀린 꽃대 하나를 밀어 올리고 있다. 봄꽃이 다 지고 난 뒤 향긋한 향기와 함께 작은 새 주둥이 같은 귀여운 꽃을 피워내는 풍란은 갖은 풍상을 이겨내고 꿋꿋이 살아 5월에 그 은은한 향기와 함께 우리 거실에 5월의 여신(女神)으로 자리한다.
4월 들어서 나는 거실 의자에 앉으면 동백나무 앞 빈자리를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안절부절 했다. 화사한 꽃의 향연도 좋지만 늘 푸른색으로 마음도 눈도 맑게 해주던 소나무를 더 좋아했었다. 작년 내가 심란(心亂)한 일이 있어 잠깐 정신을 놓은 사이 속절없이 소나무가 아프기 시작하더니 행여 나을까 기다렸건만 올봄 기어코 가버렸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관심과 사랑을 받지 않으면 병이 나는 모양이다. 어디서 다시 소나무를 구해올까 하는 생각으로 4월 중순을 보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항상 달려와 위로해주고 도와주는 후배 순철 엄마가 ‘용진’에 가보자고 했다. 별로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맥이 빠져 돌아왔다. 궁리를 해봐도 뾰족한 방안이 없어 애태우고 있을 때 중앙시장에서 만났던 꽃 파는 할머니가 ‘신리’ 자기 집 꽃나무 밭으로 가보자고 했다. 몇 그루 소나무가 있으니 마음에 드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나는 서둘러 순철엄마와 함께 토요일 오후 신리에 갔다. 거기서 마음에 꼭 드는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이튿날 소나무는 우리 집으로 이사를 왔다. 마당이 꽉 차듯 내 마음도 채워졌다. 아침저녁 복돌이에게 밥을 줄 때마다 쓰다듬어주며 잘 자라라고 부탁한다. 햇살이 비치는 날엔 이파리가 금빛으로 빛나는 것 같다. 금송(金松)인가 착각할 정도다.

어느 분이 손자에게 잣나무와 소나무 구별하는 법을 수필로 쓴 글을 보았다. 나는 구별할 줄도 모르고 구별하고 싶지도 않다. 잣나무건 소나무건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고 푸르고 청청하며 그윽하고 기품 있게 늙어가는 나무가 나는 좋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변치 않고 늘 맑고 청결한 모습으로 세월의 무게를 이고 단단하고 두껍게 다듬어진 인격과 품격을 지닐 때 존경을 받는다. 탐욕과 이기심으로 나이만 내세우는 노인의 오만함에는 젊은이들의 싱싱하고 풋풋함 앞에 추한 모습으로 남는다. 사람은 40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던가.
고희(古稀)를 넘긴 나의 모습은 어떨까. 행여 오만과 독선으로 얼룩지고 정결치 못해 젊은이들에게 추한 모습으로 기억되지 않을지 오늘도 소나무를 바라보며 내 마음을 단속하고 있다.
(201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