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그리워
봄이 그리워
행촌수필문학회 석인수
오늘은 4월 28일, 4월의 끝자락이다. 평년대로라면 봄이 한창일 때다. 그런데 오늘 날씨를 보면 아직도 봄이 아니다. 전국 내륙지방의 기온이 영하권으로 남원지방이 영하 2.2℃다. 낮 최고 기온도 서울이 7.8℃이고 전국 대부분 지방이 10℃안팎이었다.
강원도 설악산과 서울의 관악산, 대구의 팔공산, 광주의 무등산에는 눈이 내렸고 일부 지방에서는 우박과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다. 그 뿐만 아니라 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돌풍과 강풍주의보가 내려졌다. 초겨울 날씨보다 추운 날이다.
오늘 아침 엉겁결에 엷은 옷을 입고 공원 산책길에 나섰다가 추워서 혼났다. 점심때 모임에 나갔더니 참석자들 모두가 겨울옷 차림이었다. 옷장 속에 넣어두었던 겨울옷을 다시 꺼내 입었다고 했다. 겨울이 아직도 안 물러갔는지 다시 오는지 헷갈리는 요즈음이다. 모두들 때 아닌 겨울 같은 봄 날씨를 화두로 삼았다.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오늘 같은 날씨는 4월 하순 날씨로는 1908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102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앞으로도 당분간 이와 같은 날씨는 간헐적이지만 5월 상순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올봄은 봄날 같은 날씨가 별로 없다. 겨울의 끝인가 했던 지난 2월에도 추위가 여전했으며, 3월에도 많은 양의 비가 자주 내리고 눈도 몇 차례 오면서 겨울이 떠나지 않았음을 실감케 했다. 4월 들어서도 기대했던 봄 날씨는 반짝 며칠씩만 지속되다가 궂은 날씨를 많이 보였다. 햇볕이 나는 날이면 곧잘 평년 기온을 웃도는 초여름 날씨를 보이고 봄 날씨 같은 날은 별로 없었다.
최근의 날씨는 기상이변이 분명하다. 4계절이 뚜렷했던 우리나라, 이젠 옛말이 되었다. 작금의 기후변화를 보면 봄과 가을이 없는 것 같다. 춥기 아니면 덥기다. 따뜻한 봄인가 하면 더운 여름의 문턱이고 시원한 가을바람인가 하면 어느새 스산한 겨울바람이다. 그야말로 여름과 겨울만 있는 것 같다.
무분별한 난개발과 환경오염 등으로 지구의 온난화가 가속되어 빙하가 무너져 내리고 급격한 기후변화가 일어난다. 기상이변은 생태계의 파괴와 더불어 기상재해로 이어지고 있다.
계절은 봄이어야 하는데 날씨는 봄이 아니고 겨울이니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봄은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고 시작을 뜻한다. 봄이 온다는 것은 따뜻한 사랑과 낭만의 계절이 온다는 뜻이다. 봄이 온다는 것은 봄볕과 아지랑이, 새싹과 꽃을 볼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이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올 봄에는 아직까지 아지랑이를 보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산수유, 매화,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 봄꽃들은 구색 맞춰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개화기간은 여느 해 보다 짧았던 듯싶다. 피어난 꽃들을 보면서 그나마도 봄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봄다운 봄이 아니어서 못내 아쉽다.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봄날, 그 속을 거닐며 꽃에 반하고 향기에 취했던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봄이 잔영으로 다가온다. 꽃을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벌과 나비도 보고 싶고 ‘이랴!’ 하고 소를 몰아 논밭을 가는 농부의 모습도 그리워진다. 볏짚 울타리 밑 양지바른 쪽에 모여앉아 소꿉장난하던 어린 시절의 봄이 떠오르고, 긴긴 봄날 고구마 2개와 김치가닥으로 끼니를 때우던 생각도 난다. 봄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는데 온전한 여왕의 모습을 볼 수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2월 초순부터 4월 중순까지 전국 평균 일조시간은 382.2시간으로 평년의 75% 수준이라고 한다. 평균 강수량도 223.4ｍｍ로 평년치보다 37%가 많았고 강수일도 29.7일로 평년보다 46%나 늘었다고 한다. 전국 주요도시의 일조시간도 4월 중순에는 평년의 70% 안팎이고 특히 4월 21～26일 사이에는 하루 평균 3.8～5.5시간에 그쳤다고 한다. 잦은 비와 일조량 부족 현상은 농작물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의 채소류와 과일류 값은 상식수준을 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값이 오른다. 엊그제 보니까 모악산 가는 길목 옆 과수원의 배꽃이 결실도 못하고 흑갈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저온으로 냉해를 입은 것일 게다. 밭작물은 물론이고 각종 시설채소도 피해가 상당하다. 올해 싼 값에 질 좋은 과일을 사먹기는 다 틀린 것 같다.
일조량 부족으로 인하여 전국적으로 14,000여 ha의 농작물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이번 피해를 농업재해로 인정하였다. 일조권 부족으로 입은 피해를 재해로 인정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예기치 못했던 때 아닌 추운 날씨로 여러 분야에서 전에 볼 수 없었던 일들이 나타나고 있다. 백화점의 판매 상품 중 의류는 여름용에서 소매가 긴 점퍼 류, 바람막이, 모피 등이 예년 동기보다 2배 정도 더 팔리고 있고, 냉방기 등은 판매가 저조 하다고 한다. 관광업체도 꽃구경을 위한 봄나들이 관광이 예년보다 많이 줄어 울상이라고 한다.
예년 같으면 아이스크림이나 빙과류가 팔리기 시작할 때지만 아직도 따뜻한 음식이 평년보다 2～3배 정도 더 팔린다고 한다.
최근 들어 지구촌이 온통 난리다. 아이티에 이은 칠레, 중국 등 지구촌 곳곳에서 전례 없던 대 지진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과 재산을 잃었고, 아이슬란드의 화산재 분출은 유럽 전역은 물론 아시아권 일부까지 하늘을 뒤 덮으면서 여러 나라의 항공노선이 상당기간동안 발이 묶이는 사태가 벌어졌다. 또 집중 호우나 토네이도 같은 강력한 돌풍으로 인하여 역시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외에도 전 세계를 휩쓴 신종 플루의 만연, 돼지와 소 등 가축에 나타나는 구제역을 비롯한 가축의 질병이 국경 없이 넘나들고 있다. 미국에서의 총기난사, 중국에서의 무차별적인 칼질 등 사건사고도 줄을 잇는다. 국내에서도 초계중이던 군함 천안함의 침몰로 아까운 46명의 해군용사가 안타깝게도 고귀한 목숨을 잃었다. 나라안팎으로 어수선하고 뒤숭숭한 차에 날씨까지도 철을 모르고 변덕을 부리고 있으니 참으로 심란하다.
봄은 봄에 걸맞은 날씨가 있어야 봄다운 봄이다. 봄에는 새싹과 새순이 돋아나야 하고 꽃이 피어야 한다.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멀쩡한 봄철인데 겨울에 있어야할 것들이 있으니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삼동(三冬)을 견디며 기다려 왔는데 봄 같은 봄은 아직 오지 않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봄이 다 가는데 아직도 봄이 멀리 있는가 보다. 지난날의 봄 같은 봄은 정령 오지 않으려는 것인가? 어릴 적 추억의 그 봄이 그리워진다.
< 2010. 4.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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