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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김선순
ㆍ작성일	2010-03-21 (일)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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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울 타 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김 선 순

봄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폭설이 내리고, 또다시 비가 올 채비를 한다. 연일 흐린 날씨에다 황사까지 동반한 세찬 바람으로 마음은 물에 젖은 솜이불마냥 무겁고 축 늘어진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내일은 아침 일찍부터 교회에 나가 밀린 인터넷 수업을 듣고, 수필창작반 강의안도 인쇄소에 넘겨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기를 불과 몇 시간, 누웠다 일어나니 갈등이 생긴다. 날씨도 도와주지 않고 몸도 마음도 무거운데 그냥 집에 있다가 저녁 기도시간에나 나갈까 하는 생각이 큰 바위가 되어 나를 유혹했다. 오늘이 화요일만 아니라면 그래도 되겠는데 내일 아침에 사용할 강의안이라서 저녁 늦게 자료를 보내면 인쇄소 사장님께 불편을 줄 것 같았다. 30분 동안이나 무거운 마음과 씨름을 하다가 교회로 갔다.

자가용도 없어 대중교통을 이용하여야 하는데 이 우중충한 날씨에 교회까지 나가야 하는 이유는 우리집에 인터넷이 없기 때문이다. 10년이 넘게 사용하던 인터넷을 3월초에 교회로 옮겨 놓았다. 이전까지는 주로 아이들이 사용하고 나는 별로 사용할 일이 없어서 그 편리함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수필창작반에 등록을 하면서 인터넷은 나에게 필수가 되었다. 그런데 집에 인터넷이 없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래도 나는 이 불편을 감수하려고 한다. 딸아이를 위해 어렵게 결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딸아이는 지적욕구가 강한 아이다. 책을 좋아하고 많은 상식과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이런저런 일들로 힘든 일이 생기면 아무말 없이 책속에 빠져들거나 어떤 정보를 찾아 나선다. 자연히 인터넷과도 가까워지게 되였다. 문제는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 처음에는 필요해서 찾던 것이, 점점 그 자체에 빠져 찾게 되고, 나중에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그것이 자신을 끌고가려는 데까지 이르렀다. 사람이 술을 마시다가 술이 술을 마시게 되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격이다. 너무 지나친 행동으로 자신의 울타리를 지키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절제가 필요하다 싶어 딸아이와 상의끝에 잠시동안 다른 장소에 옮겨두기로 하여 교회로 옮겨 놓았던 것이다.

우리는 많은 문명의 이기들 속에서 그 편리함과 즐거움을 누리며 산다. 그러나 그것들이 꼭 유익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편리함과 즐거움에 젖어들어 자신의 울타리를 지키지 못할 때는 오히려 우리를 더 힘들게 하기도 하고 무기력한 사람으로 만들기도 한다. 사람마다 제각각 자신의 울타리가 있다고 한다. 건강한 사람은 그 울타리가 잘 처져 있다고 하였다. '지나침은 병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부모자식 간의 사랑도 지나치면 병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보약도 지나치게 먹으면 몸을 해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람과 사물과의 관계에서 그 울타리가 무너져 버린 것, 그것이 지나친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가까울수록, 더 친할수록 서로의 울타리를 헐어 버리려고 한다. 상대의 자리까지 침범하여 내 것인 양 누리려고 한다. 특히 가족끼리는 더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적당한 울타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나는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고 있다. 많은 정보와 편익을 동시에 제공해 주는 인터넷을 대신할만한 게 없어서다. 문명의 이기들이 많기에 현대인의 생활은 풍족해지고 시간도 절약되지만 사람들은 더 공허하고 바쁜 것 같다. 편안하게 살고 있으면서도 없으면 안될 것 같은 불안이 있다. 단순히 편리에만 길들여져 그 여유를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 편리해서 찾은 문명의 이기들이 제 주인을 노예로 삼지나 않을까 염려가 된다. 모든 것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내 울타리를 단단히 정리해야겠다.

(2010.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