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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최윤
ㆍ작성일	2010-02-07 (일)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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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온다
봄날은 온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최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남자 주인공의 할머니가 부르는 노래이다. 나는 봄기운이 느껴지면 이 노래가 떠오르곤 한다. 주인공의 할머니는 치매에 걸렸다. 할머니는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봄날이었던 시절, 할아버지에게 사랑을 받던 그 시절에 기억이 머물러 있다. 훗날 남편이 바람나서 자신을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한때 사랑받았던 시절에 기억이 머물러 있는 것이다.

아직 추운 겨울이지만 가끔 봄기운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시간은 어스름이 질 무렵,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변할 때다. 그땐 모든 공기가 정지한 듯하고 왠지 마음이 답답해지는 기분과 마음이 설레기도 한 복잡한 마음이 교차할 때다.

내겐 봄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거짓말 같이 나는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이며 나이, 생김새 등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봄이 되면 그 사람이 떠오른다. 그 사람과의 기억 중 유일한 것은 영화 ‘봄날은 간다’ 를 함께 봤다는 사실이다. 이 영화는 허진호 감독의 수작이지만 내게는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의 영화다. 난 영화를 보면서 이기적이고 변덕 심한 사랑을 하는 여자 주인공이 그 사람을 닮았다고 생각 했다. 상대방 남자 주인공은 나 같았다. 왜 그런 이기적이고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영화를 보는 건지 내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영화의 가장 하이라이트 대사인,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고 말하는 장면과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봄날은 간다’ 노래를 부를 때, 나 역시 이 사람과의 봄날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사람을 원래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연인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냥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그 사람과는 연락하지 않았고 지금은 거짓말 같이 이름조차 희미해져 버렸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난, 어스름이 지는 봄 저녁의 하늘을 바라보며 ‘사랑’ 이란 것에 대해 생각했다. 사랑은 어쩔 수 없이 변하기 마련이고 그것을 막을 재주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봄날 같이 따스하고 아름답던 사랑이 한 순간에 변하고 증오가 되어버리는 것인지 그때의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주일 전, 남편이 장미꽃을 사들고 와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우리가 만난 지 딱 5년이 되는 날이라고 했다. 남편과 봄을 보낸 다섯 해 동안은 암담함보다는 설렘이 더 많던 봄날들이었다. 함께 데이트하던 생각, 내가 직행 버스를 타고 군산에 찾아가 벚꽃을 구경하던 일 등이 떠올랐다. 남편은 내가 봄의 암담함에 힘들 때면 기댈 수 있는 쉼터였다. 남편도 봄날의 암담함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아무리 서로 다투고 사이가 소원해지더라도 봄날은 나와 함께 보내고 싶다고 했다. 남편과 함께 보낸 5년간의 봄은 참으로 행복했고 즐거웠다. 만약, 남편과 함께 ‘봄날은 간다’를 보았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마도 나는 사랑은 변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픈 채로 영화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 열정적인 사랑이 식은 후에도 남아 있는 또 다른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득 찬 채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요즘도 간혹 다투긴 하지만 갈수록 이 사람과의 봄날은 계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리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은은하고 따스한 봄날 같은 사랑이 계속되리라는 믿음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 주인공 남자가 여자를 만나러 서울에서 강원도로 새벽에 갑자기 찾아가는 장면이 있다. 두 사람은 너무나 행복하고 반가워서 달려와 얼싸안는다. 요즘 난 친정에서 저녁을 먹고, 남편 퇴근 시간이 되면 중간에서 만나서 함께 집으로 돌아가곤 한다. 저 멀리 어두운 곳에서도 남편의 모습은 알아볼 수 있다. 둘 다 무뚝뚝한 성격이라 영화 주인공들처럼 달려와 얼싸 안지는 않지만 우린 반가운 마음을 느끼면서 손을 잡고 집으로 향한다.
봄이 오면 남편과 함께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싶다. 비록 지금은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버려 할 말은 많지 않아도, 그저 따스한 봄날을 느끼며 함께 하고 싶다. 비록 영화 속 봄날은 갔지만 내겐 설레고 즐거울 봄날이 오고 있는 것을 느낀다.

(20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