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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오지숙
ㆍ작성일	2009-06-25 (목)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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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아침
산사의 아침

서울 오지숙

일요일 아침 5시면 자리에서 일어나 산에 갈 채비를 한다. 사람들은 꼭두새벽에 산에 가는 나를 별종 보듯 한다. 잠도 없냐며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기 일쑤다. 나도 처음부터 산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 그야말로 산을 먼 산 바라보듯 했다. 아는 지인이 새벽 산행을 한다는 얘길 듣고 어느 날부터 나도 합류하게 된 것이다. 일행이 모두 직장주부들이다 보니 새벽 시간을 활용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다. 새벽 산행의 매력을 알고부터는 누가 늦은 산행을 하자고 하면 고개부터 흔든다.

산 입구에 들어서니 새벽안개가 자욱하다. 항상 메말랐던 계곡에서는 어제 내린 비로 폭포 같은 물줄기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요란한 소리로 우리를 맞이한다. 몇 걸음 더 오르자 얌체같이 생긴 산 버찌가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나무에 열린 열매는 먹는 즐거움보다는 바라보는 재미가 더 쏠쏠한 것 같다. 초록으로 우거진 나무는 신의 조화인지, 우주만물의 영물인지 열매와 너무 잘 어울린다.
꽃피는 봄이 오면 꽃비를 맞는 호사도 누린다. 하얗게 부서지는 꽃길을 걸으면 그 순간만큼은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눈 내리는 겨울이면,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에 젖어 눈길을 걷곤 한다. 매번 산에 오르면서 생각하지만 좀 더 가까이 자연과 악수하는 기분이다.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은 물질이라고 하지만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이렇듯 이른 새벽에 만나는 눈부시게 푸른 나무와, 뿌옇게 펼쳐지는 운무 같은 안개,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 하나까지 이 모든 것이 내게 생활의 변화를 가져다주곤 한다.
한 주 동안 미워했던 사람도 산에 오르면 용서가 되고, 나 또한 용서받고 싶어지는 아침이다.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이 후회가 되고, 다시 시작하는 한 주에 희망을 걸어보고 싶어지는 아침이다.
성의 없이 차려준 밥상에도 불평 한 마디 없이 먹어준 가족에게도 감사하고, 귀찮다 생각안하고 매주 나를 태우러 오는 산 친구 형님에게도 감사하다. 연주대에 오르면 아침식사를 한다. 연주암 식사는 1년 365일 똑같은 메뉴다. 짠지 몇 개와 양배추 채 썬 것, 김치 몇 조각 그리고 고추장이 전부인 비빔밥을 사람들은 황제밥상이 부럽지 않은 듯 달게 먹는다. 그야말로 산사의 아침처럼 맑고 청빈한 식사다.
철이 없을 때는 참기름 등을 가져와 냄새를 풍기며 넣어 비벼먹곤 했는데 보시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주는 대로 먹고, 적응하는 것 또한 겸손을 배우는 일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식사를 끝내고 마루에 앉아 산행의 최대 행복이자 기쁨을 만끽하는 차를 마시며 한 주간의 수고로움을 털어낸다. 고요한 산사의 아침은 목탁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불자는 아니지만 부처의 마음으로 돌아가 숙연해진다. 종교를 초월한 산사의 아침은 사람을 평온하게 한다.

같이 산에 오르는 지인은 불심이 깊은 사람이라 늘 부처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그래서일까. 늘 부처 같은 얼굴이다. 바위에 걸쳐놓은 듯 위태해 보이는 연주암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지인 따라 호기심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부처 앞에 혼신을 다해 두 손을 모으는 지인을 말없이 바라본다. 종교는 누구에게나 신성하고 믿는 마음은 아름다운 법이다. 짙은 안개 속에 묻힌 관악산 풍경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이른 아침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장관이다. 옆에 있는 지인은 글로 이 멋진 그림을 표현해보라며 성화다. 하지만 글이나 말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서로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담긴 대화가 아닐까. 오늘도 아낌없이 골고루 자신이 가진 것 전부를 내어주는 대 자연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법을 배운다. 나를 새벽 산행으로 이끌어 준 산 친구 형님이 오늘따라 한없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