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의 문학기행
추억 속의 문학기행
전주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윤석조
행촌수필문학회 회원들이 여수로 봄철 문학기행을 가는 날이다. 어제 경남 고성의 공룡박물관과 남해의 다랭이 마을에 다녀온 여독을 풀지 못한 채, 집을 나섰지만 여수의 추억은 새록새록 이어졌다.
살기가 어려웠던 때 신랑 하나 믿고 결혼하였다는 아내는 신혼여행은커녕 부엌문도 없는 단칸방을 빌려 전남 고흥에서 어렵게 신접살림을 시작하였다. 낯선 곳에서 아옹다옹 살다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대가족 큰며느리인 아내는 여전히 고생이 많았다.
아내를 위로(慰勞))해 주고 싶었다. 결혼 20주년이 되는 해부터 섣달 그믐날이 되면, 예고도 없이 아내와 함께 무조건 집을 나섰다. 온천이나 관광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집으로 돌아 왔다. 그런 일은 거의 십여 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어느 해에는 새해 아침을 제주도에서 맞고 싶어 여행사에 의뢰하였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더니 섣달그믐 무렵 눈이 많이 내려 여행이 취소된 적도 있었다. 그냥 말 수 없어 섣달 그믐날 아침 여수행 특별열차를 탔다.
식당 주인의 안내로 돌산 향일암이 좋다는 것과, 도착즉시 잠잘 곳을 구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직행버스로 돌산대교를 건넜다. 꼬불꼬불한 해안도로를 40여분 달려 종점에 도착하였다. 넓고 푸른 바다와 금오산 절벽 위의 향일암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은 잠시, 묵을 곳을 구하려는 사람들처럼 상가를 몇 차례 오르내렸으나 방을 구하지 못하니 초조(焦燥)할 뿐이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난방이 안 되어 남이 버리고 가버린 방을 얻어 놓고, “해를 향한 암자”란 향일암을 답사하였다. 두툼한 이부자리 속에서 떨며 겨울밤을 보냈다. 컴컴한 새벽 6시 일출을 보러 올라가는 사람들 틈에 끼어, 밀려가듯 향일암으로 올라갔다.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절 담벼락에 붙어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것을 막아내며, 바다위에 구름 한 점 없는 새 해의 일출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때의 황홀(恍惚)함을 잊을 수 없어서, 기회가 되면 다시 찾아보는 곳이 되었다.
작년 말 일요일 오후였다. 막내아들 내외가 오더니 가까운 곳에 가서 바람이나 쐬고, 저녁을 먹고 들어오자 하였다. 아내가 장소를 정하라고 조르는 바람에, 노을 진 향일암이 더 보고 싶었다.
관광객으로 북적대던 널찍한 빈 주차장을 뒤로하고 상가의 해변에서 하차하여 향일암으로 올라갔다. 돌로 조각하여 만든 석물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고, 길도 돌계단으로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로 구분하였다. 암자 입구에서 한 사람만 겨우 지날 수 있는 바위 절벽을 통과하여, 절 마당에서 함께 사방을 둘러보았다. 처음으로 와 본다는 아들과 며느리가 더 좋아하였다. 관광객들을 따라 바위절벽 사이로 몸을 이리저리 기울이며 절 뒤에 새로 지은 관음전을 보고 어둑어둑한 길로 내려왔다. 한가한 상가(商街)를 지나 바다가 보이는 음식점에 들러 배고픔을 달랬다. 일렁이는 물가에서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둥근 달과, 바다에서 출렁이는 달을 번갈아 보고 있으니 또 하나의 아름다움이 펼쳐지고 있었다. 모두들 좋아하여 안내한 보람이 있었다. 네비게이션이 호남 고속도로로 안내하여, 광주를 거쳐 집에 왔을 때는 포근한 겨울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늦게 행촌수필문학회(지도교수 김학) 회원이 되어서 행사에 결석할 수 없었다. 우리 안골수필반에서도 많은 문우들이 참가하여 더욱 좋았다. 차가 여수 시내에 들어서자 약속된 문화관광해설사가 동승하여 여수 시내를 안내하며 제일 먼저 오동도를 찾았다. 여수에서 전주까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1주일에 한 번씩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을 찾아다니며 공부하는 송민석 퇴직교장선생님도 우리와 함께 하였다. 교수님이 더 돋보였고 우리도 자랑스러웠다. 동백나무와 신우대가 무성한 숲 사이로 오동도 정상에 올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등대의 전망대에 올라가 남해와 광양만의 너른 바다와 주변을 살펴보았다.
여수반도와 돌산도를 이어주는 돌산대교는 국내 최대의 사장교로 아름다운 해상풍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다도해와 여수항이 바라보이는 돌산공원에 처음 올랐다. 돌산대교를 바라보니 정면에 놓여 있고 왼쪽으로 여수 앞바다가 펼쳐졌다. 왼쪽 아래로는 여객선 선착장이 있어 인근 도서지역으로 오가는 배와 유람선들이 들랑거리고 있었다. 그 옆에는 거북선 모형이 바다에 떠있어 이순신 장군과 여수시가 인연이 많았음을 알려주었다.
주차장에서 버스를 바람막이 삼아 한 잔 술과 더불어 점심식사를 마치고서 보물찾기에 나섰다.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빈손으로 주차장으로 왔더니, L문우가 다시 찾아보자며 함께 찾아 나섰다. 큼직한 돌을 밀치고 숨겨진 보물번호를 찾았다. 생전 처음으로 보물을 찾은 것이다. 앞으로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았다.
향일암 주차장에 관광차와 관광객들이 가득하였다. 문우들과 어울려 향일암에 올라가서 변함없는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추억에 젖었다. 내 젊은 날을 되찾아볼 수 있었다. 교수님과 내려오다 문우들과 함께 자리를 같이하였다. S문우님이 따라주는 동동주 한 잔을 들며 수필 이야기가 그칠 줄을 모르는데, 교수님을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대구수필문학회 회원들이 우리 교수님을 기다리며 우리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한 것도, 행촌수필문학회의 위상을 돋보이게 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더구나 문학기행을 잘 할 수 있도록 추진한 김정길 회장을 비롯한 운영진이 더욱 고마웠다.
봄빛이 온 천지에 가득한데 교수님의 지도를 받고 있는 문우들이 함께한 좋은 하루였다. 세계박람회(2012년)를 앞두고 희망찬 여수에서 새로 만난 문우들과 어울리고, 새록새록 생각나는 추억 속의 젊은 날도 찾았다. 버스 안에서 문우들이 부르는 흥겨운 노래를 듣고 있으려니 마음은 덩달아 춤을 추고 있었다.
(2009.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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