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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조경환
ㆍ작성일	2019-03-01 (금)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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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봄
고향의 봄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조경환

내가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울굿볼굿 꽃 대궐 차린 동네/그곳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이원수 작 '고향의 봄'-

해마다 고향의 봄은 찾아오고 있다. 찾아오는 봄의 소리를 듣고 본다. 올해는 겨울답지 않게 눈도 많이 내리지 않은 따뜻한 날씨였다. 어린 시절에는 삼한사온 三寒四溫 이 뚜렷했었다. 추위는 훨씬 더 혹독했었다.

아침 밖에 나가 세수하고 방문을 열고 문고리를 잡으면 물 묻은 손이 쩍쩍 달라붙었다. 아침이면 세수하기 싫어 식구들 몰래 물 묻은 수건으로 얼굴만 닦을 때가 많았다. 문풍지 사이로 스며드는 황소바람은 방안을 냉기로 가득차게 했다. 커어튼도 없는 때라 아버지의 두루마기·옷가지 등을 걸어 바람막이를 했다. 그나마 화롯불이 있어 시린 손을 어루만저 주었다. 밖에 널어놓은 빨래는 장작개비 마냥 꽁꽁 얼어붙었다.

날씨가 추우면 물이 가득 찬 논바닥이 꽁꽁 얼어 썰매타기에 아주 좋았다. 흥이 나서 오랜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고 썰매를 타고 있었으니 손가락이 꽁꽁 얼어 부었다. 부기를 빼지 않고 오래 두면 손가락을 잘라 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깜짝 놀라 바로 콩주머니를 만들어 주셨다. 잠잘 때도 콩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자도록 엄하게 타일렀다. 밤낮으로 콩주머니에 손을 넣은 지 5일이 지나면서 얼어붙은 손가락 등이 가려우면서 허물이 벗겨지며 나았다. 그때 어머니의 놀란 표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며칠 뒤 진눈깨비가 펑펑 쏟아지는 밤이었다. 지붕에 쌓인 눈이 마당으로 우르르 쾅쾅 소리를 내며 떨어져 잠을 설쳤다. 그렇게 아끼든 살구나무 가지가 우지끈 부러지는 소리는 매우 듣기 싫었다.

추녀의 수정 고드름이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다가 낙수가 되어 떨어진다. 봄이 온다는 신호로 들렸다. 들리는 낙수소리는 왜 그리 맑고 경쾌하게 들리는지, 매섭던 겨울을 몰아내는 소리로만 들렸다.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봄인지라 나무들은 꽃과 잎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집안의 개나리 가지를 살펴봤다. 벌써 가지는 미끈미끈 윤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땅속에서 겨울잠에 들어간 알뿌리들은 흙을 머리에 이고 나올려고 새싹들이 발버둥 치는 모양이 뚜렷했다. 얼음장 밑을 재잘거리며 흘러가는 물을 보면 반가운 마음 뿐이었다. 잘 흘러가도록 얼음장을 하나둘 깨버렸다.

이미 남쪽에서는 매화와 진달래의 꽃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 곁을 스쳐 가는 남풍도 봄소식을 전해주고 있지 않은가? 봄은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를 맞이하는 날, 반가운 봄비가 촉촉이 내렸다. 이 비로 만물이 생동하는 새싹들은 반갑다고 야단이다.

봄소식을 알리는 꽃들은 잎보다 먼저 피는 경우가 많다.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는 나무에는 매화·개나리·진달래·살구나무·배나무·사과나무. 자두나무·벚나무·수양버들·능수버들·조팝나무 등을 볼 수 있다. 봄꽃을 피우는 것은 한 해를 시작한다는 뜻을 드러내는 생태인지 사람들도 봄에 피는 꽃을 보면서 농사일을 시작한다.

특히 이른 봄꽃은 노란색 옷을 입고 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봄이 시작되는 제주도 산방산 배경으로 유채꽃 노란 물결이 파도처럼 북상하기 시작한다. TV화면을 본 나는 꽃밭을 누비며 구경하고 있는 한복 입은 신혼부부를 보며 움직이는 꽃같이 더욱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진풍경을 본다. 관광객들의 밝은 웃음은 시청자들에게 더불어 봄을 만끽하는 순간이 아닌가?

진눈깨비에 가지가 부러진 역경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울 준비를 하는 살구나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해마다 때가 되면 꽃을 피우고 때가 되면 잎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자연의 순리에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화사하게 핀 분홍색 살구꽃은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꽃으로 지금도 눈에 선하다. 뒤질세라 따라 피우는 벚꽃들과 어울려 온 세상이 꽃잎으로 뒤덮인 진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겐 큰 선물이었다. 집집이 살구나무가 있기에 '고향의 봄'이란 노래를 가족끼리도 자주 불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구나 이 노래를 잘 부른다. 이산가족 상봉 시는 빼놓지 않고 합창을 하며 고향생각에 눈물바다로 얼룩지고 만다. 산수傘壽가 지난 초등학교 동창생 모임에서도 해어지기 섭섭할 때 부르는 노래로 지정곡이 되었다.

마당 앞에 있는 살구나무는 꽃이 지고 그 자리에 아름다운 잎이 돋아나 햇살속에 그늘을 만들어 가족과 새들에게 휴식 공간을 만들어 준다. 새들이 그 속에서 노래하는 동안 살구 열매는 스스로 분홍색으로 익어 간다. 살구는 처음에는 파랗게 열매를 맺어 점차 연분홍색·오랜지색· 살구색으로 익어간다. 다 익은 살구는 껍질이 부드러워 먹기에 참 좋다. 살구를 많이 먹는 날은 점심을 대신할 때도 있었다.

살구나무 밑에는 통나무로 만든 이동식 의자가 놓여있어 가족끼리 시간만 나면 모여앉아 정담을 나누는 장소가 됐다. 큰형이 동화책 <팔려간 당나귀> 이야기를 들려준 기억이 새롭다. 이야기를 들은 어린 마음에도 어찌 다른 사람들의 말만 듣고 그런 비웃음을 당했을까 싶었다. 비가 오려면 살구나무에서 청개구리가 개굴개굴 운다는 이야기는 <팔려간 당나귀> 와는 달리 무슨 말이든지 반대로만 하는 말썽꾸러기 청개구리의 참회를 알 수 있었다. 살구나무에 올라가 살구를 따는데 친구의 잘못으로 살구나무 가지에 긁혀 무릎에 상처를 입었다.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을 때 살구씨를 깨뜨려 씨앗에서 나온 물기를 발라 주었다. 염기를 제거한다며 괜찮아 곧 나을 거야 참고 기다리자고 하신 할아버지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친구는 학교에 다녀오면 정성을 다하여 그 날 배운 내용을 알려 주었다. 내가 상처 입은 아픔보다 그 친구의 죄책감을 덜어주려고 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마음뿐이었다. 지금도 그 친구를 만나면 옛날이야기로 정을 나눌 때 고향 생각이 절로 난다. 살구씨(㕿仁) 몇 알씩 먹으면 천식이나 기관지염·급성간염·인후염· 장염치료·피부미용·염증제거에도 좋은 것인 줄 알게 됐다. 이같이 좋은 살구나무가 집 안에 있으니 내 마음 더욱 든든했다. 이제 겨우내 웅크렸던 마음을 봄이 오는 3월 길목에서 '고향의 봄'을 부르며 꽃 천국을 향해 손짓과 미소로 봄을 맞이해야겠다.

(2019.2.28.)